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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198>서울이 선(善)의 우두머리

미술사 연구자

김정호(1804?-1866?),
김정호(1804?-1866?), '수선전도(首善全圖)', 종이에 목판 인쇄, 101.5×74.1㎝,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서울의 옛 지도인 '수선전도'다. 나무판에 새겨 찍어낸 이 대형 지도를 처음 보았을 때 '수선(首善)'이 무슨 뜻인지 의아했다. 수도를 가리키는 말이고, 왕과 조정이 있는 서울이 선(善)을 먼저 실천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지도층의 책임의식을 말해주는 이 별칭이 감명 깊었다.

보통은 도성도, 경조도라 하고 조선시대 서울지도를 한성도라고 했다. 수선은 '사기·유림열전'에 "건수선(建首善) 자경사시(自京師始) 유내급외(由內及外)"로 나온다. 청나라 때 북경지도를 수선전도라고 했다.

제목 바로 아래 세 개의 봉우리로 또렷하게 부각시킨 산은 북한산(삼각산)이다. 한 지역에 궁극적 권위를 부여하고, 지역민에게 안정감을 주는 것은 자연물인 산이었다. 산은 심리적, 경제적, 군사적 보호막이었다. 조선시대엔 군현 단위에 이르기까지 진산(鎭山)이 정해져 있었다. 북한산 왼쪽으로는 북한산성 성가퀴가, 오른쪽으로는 '도봉'산이 그려져 있다.

둥글넓적한 '수선전도' 위쪽은 모두 산이다. 멀리 있는 산은 꺾쇠 모양을 중첩해 산줄기로 나타냈고, 남쪽은 한강으로 둘러놓은 배산임수의 상서로운 지형이다. 먼 산은 직선으로 뾰족하고 도성을 둘러싼 백악산(북악산), 타락산(낙산), 목멱산(남산), 인왕산 등 내사산(內四山)은 둥근 산봉우리인 골격에 나무를 점으로 표시해 가까운 산임을 나타냈다.

'수선전도'는 내사산 능선을 활용해 지형과 한 몸으로 축조한 성곽 안쪽의 도성이 자세하고, 도성 주변으로 성저십리(城底十里)까지 요약해 한성부 관할지역이 한눈에 효율적으로 파악된다. 동서를 가로지르는 한가운데 직선은 흥인문(동대문)에서 경희궁을 잇는 종로다.

도로는 선으로 표시했고, 주요 도로는 굵게 강조했다. 두 겹의 선은 물길이다. 단선인 길과 쌍선인 물길이 만나는 다리는 '☐'로 표시했고 이름을 써놓기도 했다. 궁궐, 문, 관청, 고개, 동리 등의 이름이 460여 곳에 있다.

'수선전도'는 고산자(古山子) 김정호가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김정호는 지도를 그린 지도제작자였고, 목판에 옮겨 새겨낸 각수(刻手)였으며, 찍어내는 일까지 직접 했다. 우리나라 고지도의 대명사인 '대동여지도'(1861년)를 비롯해 김정호가 만든 지도의 높은 완성도는 그래서 가능했다.

'이향견문록'(1862년경)에 김정호가 "그림을 잘 그리고 판각도 잘하여 이를 인쇄해 세상에 내놓았는데, 상세하고 정밀하기가 고금에 견줄 것이 없었다"라고 했다. 김정호는 위대한 지리학자이자 지도제작자다.

'수선전도'는 한양도성 안팎의 공간 구조를 일목요연하게 개념적으로 정리한 실용적인 19세기 서울지도인 동시에 감상용으로 손색없는 아름다운 목판화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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