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인도 수교 50주년을 기념하여 박진 외교부 장관이 국빈으로 인도를 방문했다. 박 장관은 수브라마냠 자이샨카르 인도 외교장관과 함께 뉴델리에서 열린 한·인도 외교장관 회담에 참석했는데, 거기서 박 장관은 인도의 국정 언어인 힌디어로 1분 이상 인사말을 해 인도인들을 감동시켰다. 박 장관이 정확한 힌디어 발음으로 유창한 인사말을 나누는 장면은 인도 현지 언론에 보도되었고, 즉시 트위터, 페이스북과 인스타 등 소셜 미디어를 타고 전 인도에 퍼지면서 인도 국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수브라마냠 자이샨카르 인도 외교장관도 자기 트위터 계정에 힌디어로 "대한민국의 박진 외교장관과 깊은 정신적 교류를 나눴다"라며 "박 장관의 유창한 힌디어를 듣고 한국인의 언어 실력이 역시 춤 실력만큼 대단하네요"라고 극찬했다. 이에 대해서 박 장관은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힌디어는 어려웠지만 몇 마디 열심히 배웠다"고 밝혔다.
그는 또한 인도의 문화를 좋아해서 인도의 국정 언어인 힌디어를 주목하게 된 것이라 했다. 다시 말해, 박 장관은 이번 인도 방문에서 힌디어 사용을 통해 인도 국민의 사랑을 받게 되었으며, 이 사실이 한국 뉴스에도 보도되었다. 영어가 힌디어와 함께 공용어인 인도에서 박 장관은 왜 굳이 힌디어를 주목했을까 한 번쯤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문화적 다양성, 공용어만 22개
인도는 땅이 넓을 뿐만 아니라 각 지역마다 자기만의 독특한 풍경을 지니고 있으며, 언어의 종류 또한 매우 많다. 공용어만 해도 22개 언어가 있다. 이렇게 많은 종류의 언어를 사용하는 나라는 지구상에서 인도밖에 없을 것이다. 인도인들은 각양각색의 문화 속에서 다양한 언어를 접하며 살아왔다. 인도인들은 자연스럽게 일상생활에서 두 가지 내지 세 가지 언어를 구사하게 된다. 공용어가 많이 지정된 이유는 다름 아닌, 각 지역의 특정 언어들이 자기 나름대로의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도 정부가 그 어떤 언어의 위상을 함부로 낮추거나 높이지 못하게 된다.
영국의 식민지에서 벗어난 후 인도 정부는 여러 차례에 걸쳐 국어를 지정하려 했으나, 지역어를 모어로 하는 국민들의 의견이 달라 끝내 국어 지정은 실패하게 되었다. 그 대안으로 인도 정부는 전 인도에서 가장 많은 사용자의 언어인 힌디어를 국정 언어로 지정하게 되었다.
국정 언어란 정부 기관에서 업무를 수행할 때 중점적으로 사용하는 언어, 그리고 정치계에서 정치인들에 의해서 가장 많이 구사되는 언어를 의미한다. 인도의 발리우드 영화들은 바로 이 국정 언어인 힌디어로 제작된 것으로 전 인도에서 많은 인기와 사랑을 받고 있다. 박 장관이 이 사실들을 인식하고 이번 인도 방문에서 힌디어의 가치에 주목한 것으로 보인다. 영어가 유창한 박 장관은 탈(脫)중국 시대에 한국과 중국 못지않게 많은 인구와 큰 땅을 보유한 인도와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고자 한 것이다.
힌디어는 현재 영어, 중국어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언어다. 2011년 인도 정부의 통계조사에 따르면 40% 이상의 국민이 힌디어를 모어로 사용하고 있으며, 나머지 60%는 의사소통을 할 때 힌디어를 원활하게 구사할 수 있다. 힌디어 외에 우르두어라는 매우 중요한 공용어도 있다. 우르두어는 인도의 일부 지역과 파키스탄에서 중점적으로 사용되는 언어인데, 철자의 글쓰기 부분에서만 힌디어와 차이가 있을 뿐 발음상 두 언어는 거의 같다.
힌디어와 우르두어, 이 두 가지 언어를 합해서 본다면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은 사용자 수를 확보한 언어가 '인도의 언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인도 정부가 우선적으로 힌디어를 국어로 지정하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힌디어를 사용하지 않는 지역에도 힌디어 보급을 위해서 전력을 다하고 있다. 또한, 해외에서도 힌디어의 영향력 확대를 위해 다방면으로 다양한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나오게 된다. 박 장관처럼 힌디어를 배워서 정치적인 친선 관계를 맺을 것도 아닌데도 한국인이 왜 인도말을 배우면 좋을까? 그 이유를 두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인도 정부가 식민자의 언어였던 영어보다 모어 교육을 중요시하고 있고 관련 정책을 마련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아시아에 관심이 많은 분들은 영어를 통해서라기보다 현지의 모어를 이용해 교류한다면 훨씬 더 많은 교류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인도말은 매우 다양한 발음(자음)을 지닌 언어이며, 문장의 구조 또한 한국어처럼 동사가 맨 뒤에 오기 때문이다.
인도인들은 다양한 자음의 언어를 쓰면서 아시아의 여느 나라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은 발음을 할 수 있어 언어적 소질이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가령 한국인들이 한국어와 같은 문장 구조를 지닌 인도말을 배운다면 언어 학습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심도 깊게 인도말을 학습한다면 감정의 측면뿐만 아니라 학습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세계 최대 인구의 나라
많은 전문가들이 인도가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통해 곧 세계 다섯 번째 경제 강국에서 G-2 강국으로 부상하게 될 것이라 예측하고 있다. 국제연합기구에 따르면 올해 인도가 중국을 추월하여 세계 최대 인구의 나라가 되었다. 지구인 6명 중 1명이 인도인이다. 인도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만든 다자 안보 협의단 '쿼드'(Quad)의 초대 회원국이다.
더군다나 과거에 중립국이었던 이력이 있어 한반도를 둘러싼 북한과 중국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용한 파트너가 될 수 있다. 인도는 또한 오늘날 농업, 이공계열 및 우주과학기술 분야에서 첨단기술을 보유하며 지속적으로 발전해 가고 있다. 이처럼 인도는 사상적으로 기술적으로 경제적으로 한국과 교류하면서 태평양 일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나갈 중요한 우방국이다.
따라서 앞으로는 인도말의 가치가 더 커질 전망이다. 상업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학습적으로든 인도에 진출하려면 인도말을 중요한 도구로 하여 접해야 할 것이다. 인도에 가장 많이 투자하는 나라인 미국의 경우, 대학마다 인도어 학부가 개설되어 있으며, 인도학 관련 연구소 또한 여러 군데 있다. 미국의 기관인 미국인도학연구소(AIIS)는 현재 인도의 문화 및 인도의 다양한 언어와 문학을 연구하는 미국인 대학원생들을 인도 내 20여 곳에 보내어 인도의 지역학을 배우게 하면서 인도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을 고려할 때 이제 한국도 지자체, 대학 차원에서 인도말이라는 언어적인 도구에서부터 시작하여 인도의 다양한 지식 및 정보를 정확하게 전수(傳授)하는 기관을 설립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한국 내에서 인도의 국정 언어인 힌디어를 가르치는 기관은 한국외국어대와 부산외국어대 등 2곳밖에 없다.
포스트 차이나 시대에 인도와 손을 잡으려면 적어도 각 대학에서 인도어 학과나 인도학 연구소를 개설해야 한다. 인도 공주와 결혼한 김수로왕의 고향인 김해, 그리고 6·25전쟁에서 인도인 대령이 순국하여 그의 안식처가 된 범어동이 위치한 대구, 인도를 의미하는 부처님 나라, 즉 불국(佛國) 사원인 불국사가 위치한 경주 등 경상도는 특히 인도와 깊은 관계를 지니고 있다. 한국 정부는 경상도 지역부터 시작해서 하루빨리 이 과제들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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