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공평한 세상에서 너희는

박경혜 수필가

박경혜 수필가
박경혜 수필가

"불공평해!"

놀이터 근처에서 친구를 기다리며 생각에 잠겨있던 내 귀에 날카로운 소리가 들린다. 무슨 일인가 하고 돌아보니 시소를 타는 아이들이 있다. 대여섯 살쯤 돼보이는 아이 중 여자아이 얼굴이 뾰로통하다. 소리의 주인공인가 보다.

어린아이가 불공평이라는 단어를 쓰는 게 놀라워 한발 다가선다. 얼핏 보기에도 상대편에 앉은 남자아이 몸무게가 월등히 무거워 보인다. 덩치가 큰 남자아이는 여자아이의 사정에는 아랑곳없이 무게를 실어 시소를 굴러댄다. 여자아이의 몸이 들까부를수록 더 신나는 듯 소리까지 지르며 발을 구른다.

아이는 알고 있을까. 세상은 애초에 기울어져 있다는 걸. 기울기의 이쪽과 저쪽 사이에 공평은 없다는 것을. 힘이건 권력이건 명예건 무게를 가진 쪽은 절대 나누려 하지 않는 법이다. 세상의 시소야 작동하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다. 불공평한 세상의 이치를 이해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만들어주는 건 순전히 어른들의 몫이다. 하지만 그런 노력은 미미해서 잘 드러나지 않는다. 목소리 크고 액션이 화려한 쪽이 더 주목 받기 때문이다.

오월, 가정의 달이고 어린이의 나날이다. 불평등해서 불행한 아이들이, 불공평해서 슬픈 아이들이 없는 달이면 좋겠다. 공평하고 평등한 세상에서 아이들이 마음 놓고 자랄 수 있다면 저들이 기성세대가 됐을 때는 좀 더 나은 시대가 될 수 있을 터다. 저 아이들이 도저히 균형을 잡을 수 없는 기울기의 무게를 알 필요가 없다면, 그런 세상을 만날 수 있다면 좋겠다.

아이들의 대화를 듣고 있노라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유연하다. 저 자그마한 머리에서 어떻게 저런 기특하고 기발한 생각들을 조합해 내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꼭 그렇지는 않겠지만, 어른의 개입이 적을수록 아이의 창의력이 높아질 확률이 크다고 한다. 어른의 고정관념으로 한계를 짓고 억압하면 아이는 거기까지밖에 성장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벼룩은 자기 키의 200배까지 높이 뛰어오를 수 있다. 그런데 작은 상자를 엎어 놓았다가 치우면 그 상자 높이만큼밖에 뛰어오르지 못한다고 한다. 코이라는 물고기도 마찬가지다. 강이나 못에서 키우면 50cm도 더 자라지만, 작은 어항에서 키우면 5cm 정도까지밖에 자라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계를 정해주면 대부분 그 한계 미만으로밖에 성장하지 못한다니 어른의 섣부른 개입이 아이의 무한한 가능성을 박제해 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이스라엘의 어린이 교육은 남다르다고 알려져 있다. 개개인이 잘하는 걸 인정하고 칭찬할 뿐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는 따지지 않는다. 비교 당하는 비참을 애초에 예방하는 교육이지 않은가. 우정과 관계를 중시하니 인성은 따로 교육하지 않아도 저절로 쑥쑥 잘 자라겠다.

휴대전화에 정신이 팔려있던 아이 엄마가 다가가 손으로 슬쩍슬쩍 무게를 실어주자 시소는 균형을 되찾는다. 여자아이 얼굴에 금세 맑은 웃음이 번진다. 저 순수, 지켜주고 싶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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