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광장] 한·미 정상회담과 ‘아메리칸 파이’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공연문화전문가)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공연문화전문가)

미국 백악관 국빈 만찬장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애창곡 돈 맥클린의 '아메리칸 파이'를 불렀고 바이든 미 대통령은 환호했다. 한국인들도 즐겨 부르던 올드 팝송을 백악관 무대에서 처음 부른 한국 대통령이 되었고, 바이든 대통령의 건배사는 "한국과 미국이 함께 만들어갈 미래를 위해, 향후 170년 동안 함께하길"이었다. 두 대통령의 분위기로는 한미동맹 70주년은 굳건해 보였다. 후렴구 가사 '바이 바이 미스 아메리칸 파이'(bye bye miss American pie)는 암울한 과거와 결별을 통해 희망의 시대를 염원하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노래 선곡이 절묘했다. 마치 한미동맹 관계를 새로운 시대로 전환하자는 의미로도 들렸고, '워싱턴 회담'에서는 양국이 핵 관련 논의를 특화한 '핵 협의 그룹'(NCG) 설치에 합의하면서 미국의 강력한 핵 자산을 한국도 공유하게 되었다. 현지 미국 언론도 한국이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는 대가로 미국의 핵 사용 결정 과정에 역할을 하게 됐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미군이 한반도에 전개하겠다고 밝힌 전략핵잠수함(SSBN)의 위력은 핵탄두를 최대 80개 탑재가 가능하다. 탄두당 파괴력은 100~475킬로톤이다. 엄청난 위력이다. 탄도미사일을 언제 어디서든 발사할 수 있고 초고도화되는 북한 핵 위협을 견제할 수 있는 강력한 핵잠수함이다. 워싱턴 회담과 국빈 방문의 핵심은 북한의 핵 확장 억제력을 미국 전략 핵무기로 동맹 관계를 한층 더 강화하자는 것이다. 이번 워싱턴 회담으로 핵우산 정책과는 확연하게 다른 전략 핵무기를 한국 손으로 쥐고 있는 듯한 강화된 한미동맹으로 한국의 핵 억제력 수확(收穫)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전쟁 같은 한반도 분위기를 좋아할 국민은 없을 것이다. 햇볕정책으로 북한과의 관계가 유연했던 시절이 있었다. 도보다리 평화회담과 판문점 선언으로 한때는 한미 연합훈련도 상공을 날지 않았고, 국민은 종전 선언 기대로 평화로운 한반도를 상상했다. 그러나 북한은 베트남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핵 개발을 공개적으로 나서고 있다. 한쪽은 핵무기로, 다른 한쪽은 평화 해법을 들고 달려간 한반도 긴장 완화 정책으로 돌아온 것은 초고도화되는 북한의 핵 개발뿐이었다. 핵무기 공유는 전쟁하자는 것보다 강 대 강 대응으로 평화 해법을 찾을 수 있다. 협상은 상대와의 무게 균형에서 진전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한 손으로는 핵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러시아와 중국의 관계를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한국 기업들을 쪼이고, 각종 수출 규제를 통해 한국 경제를 압박할 것이다. 그만큼 한반도 핵 문제는 북한과 한국 사회 문제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수출의 25% 교역국이 중국이고, 천연가스와 에너지 수입 비중이 큰 나라가 러시아다. 워싱턴 선언으로 핵 위협의 안전장치는 강력하게 얻었으면서도 동북아 지형상 중국과 러시아를 빼고 안전한 안보 협력이 어렵고 경제협력 관계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얻은 만큼 경제적으로 잃을 게 많다는 얘기다.

외교의 핵심은 관계다. 한미동맹을 강화하면서도 주변국과 유연한 관계는 필수다. 관계를 자극하지 않는 전략적 모호성 외교로 국가 간의 외교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관된 입장이다. 러시아는 한국 정부의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 방향을 민감하게 바라보고 있고, 중국은 북한과 대만을 사이에 두고 연일 험한 말들을 쏟아내고 있다. 이번 워싱턴 회담으로 주변국들을 외교적으로 어떻게 풀어갈지는 앞으로 한국 정부의 숙제로 남았다. NCG 설치 합의는 자국 안보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외교적으로 어떻게 이해시키고 접근할 것인가는 어찌 보면 핵 억제력보다 어려운 숙제일 수 있다. 정부의 균형 외교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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