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걸 칼럼] 국빈 방문과 한미 정상회담의 이해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이 화제다. 취임 직후 마침 아시아 순방길에 오른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방한해 정상회담을 가진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년 가까이 지났다.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12년 만의 국빈 방문이고, 그에 따라 미 의회에서의 공식 연설을 비롯한 다양한 행사가 잇따르면서 평가도 다양하다.
우선 이번 국빈 방문은 두 가지 기본 축이 있다. 하나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비롯한 주요 이슈에서 한국이 동맹으로서 보다 적극적 역할을 수행해 달라는 미국 측의 강력한 요구다. 이는 초강대국이면서 동시에 동맹 파트너의 요구로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다. 윤 대통령은 방문 전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민간인 대량 희생이라는 조건을 달았지만 우크라아나 전쟁에의 개입 가능성과 대만 문제를 언급했다. 이는 지금까지 한국 정부의 공식적 입장이었던 '전략적 모호성'을 버리고 패권국가 미국 뒤에 줄을 서겠다는 노선 변경을 의미한다.
러시아와 중국이 발끈해 경고하고 나선 것은 당연하다. 이를 두고 진보적 인사들은 윤 대통령이 미국 편만 든다며 비난하고 나섰다. 과연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 정부가 러시아와 중국이 크게 반발하고 향후 우리의 막대한 수출 시장인 두 나라와의 관계 악화와 경제적 불이익이 클 것을 몰랐을까. 필자는 정부가 이 시점에 전략적 모호성을 포기하고 선명한 자유주의 연대를 선택한 것은 그만한 이유와 필요성이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국빈 방문을 이해하는 또 다른 축은 한미 관계이다. 이는 다시 안보와 경제 두 분야로 나누어 봐야 한다. 안보적 측면에서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을 억제할 무기가 우리에게는 없고 향후에도 획득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국내에서는 자체 핵무장을 요구하는 여론이 높아가고 있고, 기술적 혹은 재정적 측면에서 핵무기 개발과 보유는 마음만 먹으면 시간문제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의 자체 핵무기 보유는 견뎌내기 힘든 희생을 감내해야 하고 원하는 기대 효과를 얻을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만일 유사시 미국의 확장억제력을 공식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면 가장 싼 값에 확실한 대북 메시지를 줄 수 있다. 사실 이번 국빈 방문의 가장 중요한 이슈는 바로 이것이다. 이미 탄두 소형화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고체연료 탄도미사일 등 북한의 전술핵 능력이 확실해진 상황에서 만일 이를 사용한다면 그 결과가 무엇이라는 것을 명확히 인식시키는 것이 이번 방문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었고, 그것은 '워싱턴 선언'으로 나타났다.
경제적 측면에서 이번 국빈 방문은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에 따라 불이익을 받게 된 우리 기업들의 어려움을 완화시켜야 했다. 다양한 산업 이슈가 존재하기 때문에 이 분야의 성적표는 아직 불투명하고, 후속 논의가 필요한 분야도 많다. 그럼에도 몇 가지는 분명해졌다. 우선 미국의 차세대 반도체 공동연구 개발(NSTC)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고, 소형모듈원자료(SMR) 분야에서의 공동협력이 더욱 긴밀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이와 함께 현재 체코에서 진행 중인 한국형원자로(APR 1400) 수출과 관련해 웨스팅하우스가 제기한 특허 위반 소송 건도 정부 차원의 협의를 통한 조속한 해결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나 반도체과학법(Chips Act)에 의한 자동차, 배터리 등 핵심 분야에서 우리 기업들의 불이익과 중국 시장에 대한 반도체 수출 제한 등의 이슈도 남아 있다. 요컨대 경제 분야의 성과는 현재진행형이다.
더불어민주당의 입장에서 대통령의 방미 성과를 마냥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만은 없다는 것은 이해한다. 그러나 적어도 궤변은 늘어놓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통령도 하지 않아도 될 말을 굳이 함으로써 구설을 자초하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분명한 것은 대통령 나름대로의 유창한 영어 실력과 자신감 넘치는 태도가 돋보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번 국빈 방문의 핵심은 미중 패권경쟁 구조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동맹인 미국의 피할 수 없는 요구와 우리의 안보 및 경제적 이익을 어떻게 조화시켜 균형을 잡느냐였다는 점이다.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은 '워싱턴 선언'이 확장억제력을 명확히 했지만 우리의 안보를 지켜주는 것은 우리 자신이지 결코 미국과의 합의서가 아니라는 점이다.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