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관용 "반일·혐한 넘어설 때…12년 만에 온 기회 잡아야"

한일관계 개선에 재일동포들 안도감…日 정치권도 반색
수백년간 역사·문화 공유한 日, 관계 단절할 수 없어
북핵 위협도 한일관계 복원 변수…반일·혐한 넘어서야

김관용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지난달 28일 오후 매일신문사에서 인터뷰에서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12년 만에 찾아온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김관용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지난달 28일 오후 매일신문사에서 인터뷰에서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12년 만에 찾아온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12년 만에 온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치면 안 됩니다."

김관용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이하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은 변곡점을 넘고 있는 한일관계 속에서 양국을 이어주는 '전령사'를 자처하고 있다. 김 수석부의장은 4월 20일 오사카를 시작으로 7박 8일 간 일본 곳곳을 찾아 80만 재일동포의 목소리를 들었다. 현지에서 피부로 감지한 것은 변화의 조짐이었다. 그는 4월 28일 매일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일관계가 조금씩 개선되는 움직임에 동포들은 들떠 있다. 일본 정치권에서도 냉각기를 벗어나고 있는 분위기를 반기고 있다"고 전했다.

◆재일동포들 안도감…日 정치권도 반색

'현장에 답이 있다'는 소신으로 구미시장과 경북도지사 등 40여 년간 공직생활을 이어온 그는 지난해 10월부터 민주평통의 실질적 수장을 맡았다. 대통령 직속 헌법 자문기구인 민주평통은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 기조를 바탕으로 대북정책 및 통일 관련 국내외 여론을 수렴하는 구심점 역할을 한다. 현재 제20기 민주평통 자문위원은 총 2만 명 규모로 국내 16만여 명, 해외에는 131개국 재외동포대표로 구성된 3천900명이 활동하고 있다.

이번 방일 일정은 지난 3월 한일정상회담 전후로 강제징용 배상 해법이 논의되는 등 양국 간 달라진 기류를 현지에서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추진됐다. 윤석열 정부의 통일·대북 정책 로드맵인 '담대한 구상'에 담긴 뜻을 일본 정치권에 전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김 수석부의장은 "현지에 거주하는 재일동포들은 한일관계에 지대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지난 2011년 12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방일 이후로 '셔틀외교'가 중단되면서 양국이 등 돌리고 지낸 지 12년째"라며 "양국관계가 경색되면 재일동포들은 가슴을 졸이며 지내고, '반일', '혐한' 이야기만 나와도 등골이 오싹할 정도라고 한다. 최근 한일관계가 나아질 조짐이 보이니 재일동포들은 긴장하며 살아왔던 세월도 끝날 것 같다며 안도감을 표했다"고 말했다.

일본 정치권도 달라진 국면을 반색하고 있다. 김 수석부의장은 이번 방일 일정에서 사카키바라 사다유키(榊原定征) 전 일본 전경련(경단련) 회장을 비롯해 카와무라 타케오(河村建夫) 전 문부과학성 장관·관방장관, 총무성 장관을 역임한 자민당 소속 다케다 료타(武田良太) 의원 등 일본 정·재계의 고위급 인사들을 면담했다. 이들은 과거 역사에 대한 반성의 뜻이 담긴 '김대중-오부치 공동 선언'의 중요성을 언급하면서 우리 정부의 한일관계 개선 의지를 높이 평가했다.

그는 "일본의 정·재계 인사들을 만나 북한의 핵위협과 관련해 한일 양국 간의 경제·안보 협력이 가장 긴요한 시기라고 강조했다"며 "또 한일관계 개선이라는 우리 정부의 담대한 결단에 일본도 속도감 있는 호응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본 정계에서도 한일관계 개선의 필요성과 미래지향적 한일관계에 대해 공감하는 분위기임을 충분히 감지할 수 있었다"며 "다케다 료타 의원과의 면담에서 '속도 좀 냅시다'라고 촉구하자 다케다 의원도 '기시다 총리에게 '빨리 한국을 방문해서 양국 셔틀외교를 시작해야 한다'고 건의까지 했다'고 화답했다. 또 '경제·문화교류 등을 확대해 친목과 신뢰를 증진하는 식으로 양국관계를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다"고 덧붙였다.

◆수백 년간 역사·문화 공유한 日, 관계 단절할 수 없어

현지 분위기를 확인한 김 수석부의장은 한일관계가 탈출구를 찾으려면 이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일본과는 여러 외교적인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켜 있지만 종국엔 안보·경제·국제외교 면에서 협력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수백 년간 이웃 나라로 역사와 문화를 공유해 온 점도 일본과의 외교를 단절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다.

그는 "일본은 이웃 국가이지만, 흔히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도 한다. 역사, 독도 등 복잡한 문제들이 얽혀 있기 때문에 멀게 느낄 수밖에 없다"며 "하지만 언제까지 끌고 갈 수도 없고, 언젠가는 넘어야 할 산이 한일관계 개선이다. 대통령의 담대한 결단으로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을 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김 수석부의장은 "조선통신사가 일본에 파견되고 나서 200년가량 양국이 문화를 교류했다. 당시 글과 시, 예술품 분야에서 양국의 문화가 함께 꽃피었다"며 "장구한 역사와 문화를 공유한 일본과 관계를 무 썰듯이 할 수 없으며 함부로 끊어서도 안 된다. 여러 역사를 공유하고 있는 만큼 설령 단절된다고 하더라도 (단절이) 오래가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강제징용 배상 문제를 '제3자 변제' 방식으로 진행해 반발이 제기되는 것에 대해서도 대승적인 결단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일본과의 역사 갈등을 현안별로 해결하려는 것보다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총체적으로 결단을 내리는 것이 한국에도 이득이 될 것이라는 판단이다.

김 수석부의장은 "일본과의 역사 갈등을 하나씩 현안별로 풀고 가면 진행 속도가 더딜 것이다. 언젠가는 한일 양국이 서로 이해하는 시점이 올 것이다. 지금 당장은 굴욕적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전체적인 역사 관점에서 보면 우리에게도 분명 이득이 있다"며 "우리 민족은 역사적으로 1천 번 넘는 외세 침략을 받았지만, 그 어려움을 딛고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다. 일본과의 외교 갈등도 약소국의 시각을 벗어나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끝없이 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핵 위협도 한일 관계 복원 변수…반일·혐한 넘어서야

나날이 고도화되는 북핵 위협도 한일 양국이 손을 맞잡아야 하는 주요 변수다. 김 수석부의장은 한일관계 개선이 한미일 동맹 공고화로 향하는 교두보라고 주장한다. 북·중·러 관계가 공고해지는 상황에서 한·미동맹은 물론, 한·미·일 동맹까지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특히 일본과 관계 정상화를 넘어서서 동맹 강화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제일 민감한 시기는 곧 제일 중요한 시기다. 북한 핵위협, 미사일 위협 수준이 극에 달하고 있고 나라의 존망과 국민의 생명이 달린 문제"라며 "한국과 일본이 기술과 자본이 없어서 핵을 못 만드는 것이 아니다. 국제사회의 비핵화 기조에 따라 기술이 있더라고 평화의 균형을 맞추는 데 동참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국제적으로 비핵화 약속이 있기 때문에 핵 자체 무장은 어려울 것이다. 우리가 자체적으로 핵을 무장할 수 없다면 강력한 동맹 강화로 북핵 위협에 대응해야 한다"며 "일본은 2차 세계대전 당시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로 핵에 대한 공포가 아직 남아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해 일본에 북핵 공동대응을 하자고 요구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일관계가 여론 분열이나 정쟁의 소재로 활용되는 것에 대해 아쉬움을 드러냈다. 갈등과 분열에 익숙한 인식이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고,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는 데 발목을 잡는다는 것이다.

김 수석부의장은 "갈등이 발전의 동력이 될 수 있지만 갈등에 빠져 있으면 안 된다"며 "역사에 함몰되지 않아야 한다. 역사를 명확하게 아는 것은 중요하지만 현재에서 미래로 나가가기 위해서 역사 공부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난날 우리 선조들에게 아픔이 있었던 것은 가슴에 안고 갈 필요가 있다. 반일과 혐한으로 구분지어서는 끝이 없다. 강제징용 배상 해법에 대한 결단은 역사가 평가할 것"이라며 "향후 한국과 일본은 더욱 동반자적인 관계로 자리매김할 것이고, 특히 국제사회의 패권다툼에서 일본과의 관계는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12년 만에 온 이 기회를 절대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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