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소원

최윤정 대덕문화전당 공연전시기획담당 주무관

최윤정 대덕문화전당 공연전시기획담당 주무관
최윤정 대덕문화전당 공연전시기획담당 주무관

주말을 맞아 전날 내린 비를 머금은 앞산을 산책했다. 어린 시절 아빠 손을 잡고 자주 오르던 길이었다. 피톤치드가 녹아든 산림을 즐기던 중 필자의 시야에 쓰러질 듯 쓰러지지 않는 아슬한 돌탑이 들어왔다. 소원을 빌며 돌을 얹을 때 돌탑이 무너지지 않으면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 했던 아빠의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재생됐다. 재미 삼아 돌 하나 올려보는 어린 고사리 손에서부터 간절함을 한껏 담은 누군가의 손길까지. 그 소원들은 어디로 흩어졌을까?

'크루셜 스타'라는 힙합 뮤지션의 곡 중 'Fontana di Trevi(트레비 분수)'라는 곡이 있다.

이 곡은 이태리 로마에 있는 '트레비 분수'의 시점에서 자신에게 소원을 빌며 동전을 던지는 사람들에 대한 독백이 담겨있다.

"나에게 동전 한 닢을 던져/ 그리고 너의 소원을 빌어줘/ 내게서 아무 대답이 없어도/ 그저 희망을 품고 살아줘"라고 '트레비 분수'는 노래한다.

어떤 사람들은 '트레비 분수'를 뒤에 두고 기념사진을 찍고 어떤 사람들은 동전을 던지며 소원을 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딴 미신을 믿냐며 비웃기도 한다. 필자는 동전을 던지며 소원을 비는 사람에 속한다 하겠다.

소원. '어떤 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람, 또는 그런 일'.

필자에게 갑자기 램프의 지니가 나타나 3가지의 소원을 빌라고 한다면 무엇부터 빌어야 할까? 로또 당첨? 되돌리고 싶은 과거로의 복고(復古)? 아프지 않고 건강한 삶? 글쎄, 막상 소원을 빌라고 하면 아무것도 못 빌 것 같기도 하다. 물론 램프의 지니가 실제로 나타날 일도 없다.

소원을 비는 행위는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다. 우리가 기록물로 확인하는 고대 시대 이전에도 인류는 수없이 소원을 빌고 신에게 제를 올렸을 것으로 추측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인류는 왜 소원을 비는가?

그 이유의 답은 단 하나다. 행복하고 싶으니까. 인간으로서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권리, 우리 헌법에서도 이를 '행복추구권'으로 명명하고 있다. 그렇다. '소원을 비는' 행위는 행복하고 싶은 인간이기 때문에, 그 권리를 누리고 싶기 때문에 우러나오는 행동인 것이다.

'크루셜 스타'의 'Fontana di Trevi'로 돌아가 보자. "난 그저 성당 앞의 분수일 뿐/ 줄 수 있는 건 동전만 한 작은 희망과 믿음일 뿐/ 너는 그 동전조차 던지길 망설였지만/ 내게 속삭인 그 꿈을 기억할게"

동전을 던지며, 돌탑을 쌓으며 속삭였던 모두의 소원이 비록 현실이 되지 않고 기억에서 사라질지언정 소원을 비는 그 순간만큼은 진심이었기에, 그 동전 한 닢과 돌 하나로 잠시나마 행복을 꿈꿀 수 있기에 오늘도 필자는 앞산의 돌탑 위에 또 하나의 소원을 얹고 돌아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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