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가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침대 속에서 한 마리의 흉측한 갑충으로 변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7쪽) 이 문장은 20세기 이후 발표된 전 세계 소설 도입부 중에서도 유명하다. 사람이 벌레로 변하다니? 공포를 느낀다. 대뜸 던져놓고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 어떻게 변신이 이루어졌는지 알 수도 없다.
카프카의 가정환경과 출신배경은 그의 작품세계에서 혼재되어 나타난다. 법조인이 되어 신분상승을 원하는 아버지에게 글쓰기에만 집중하는 카프카는 언제나 못마땅했다. 카프카는 이해받기는 커녕 평생을 아버지의 파괴적인 비판 속에서 죄의식을 느끼며 살았다. 스스로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굴레에서 빠져나오지를 못한다.
이런 환경에서 '변신'은 현대사회에서의 인간의 고독과 고립, 개인의 무력감을 시사한다. 가족 구성원에게 철저히 무시당하고 버림받는 상황을 전제하고 가족에게 소외당하는 개인의 존엄성 사이에서 갈등을 다룬다. 어쩌면 그레고르가 카프카일지도 모른다.
그레고르의 아버지 잠자 씨는 사업을 실패하고 5년 동안 무기력하게 안락의자만 지키고 있다.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자기 대신 가장의 역할을 해온 아들 그레고르가 갑충으로 변한 뒤에는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낸다. 경제권에 의해 아들과 아버지의 위치가 방 안과 방 밖으로 재배치된다.
그레고르는 자신의 상황에 대해 가족과의 소통을 시도한다. 벌레로서의 삶에 적응하려고도 노력한다. 하지만 가족은 그의 변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를 배척한다. 그는 가족의 폭력과 갑질에 시달리며 살아간다. 가족은 그를 공포의 대상으로 치부한다. 하지만 그는 가족의 배척과 폭력에 괴로움을 느끼면서도 자신의 사라져버린 존엄성을 되찾으려고 노력한다.
소설은 이분법적 상황으로 전개된다. 그레고르는 스스로를 일벌레라 생각한다. 힘든 직업을 선택한 자신을 탓한다. 그러니 일벌레의 삶은 불행하다. 그러나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는 자부심은 있다. 갑충이 되어 일벌레에서 벗어났지만 가족에게는 거추장스러운 밥벌레가 되어 버린다.
그러고 보니 '변신'은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질문을 던지는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모두 상징적인 것일 뿐이고 진정한 삶의 의미는 내면에 있을지도 모른다.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가. 그렇다면 그레고르에게 물어봐야 한다. 진정한 삶의 이유와 존재의 목적에 대하여 새로운 질문을 계속해야 한다. 어영부영하다 자칫 그레고르처럼 일벌레나 밥벌레로 양극단(兩極端)에서 끝장날지도 모른다.
백무연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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