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과 전망] 정치의 국민에 대한 예의

송신용 서울지사장
송신용 서울지사장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일 검찰에 나왔다가 발길을 돌리는 장면은 한 편의 블랙 코미디였다. 얼마나 절박했으면 저럴까 싶으면서도 민주당이 보여주고 있는 태도에 생각이 미치면 분노한 국민이 적지 않았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송 전 대표가 귀국하던 당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는 이재명 대표 등 8명이 참석했지만 누구 하나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러니 당 차원의 입장이나 방침 같은 논의가 이루어질 리 없었다. 오히려 어느 최고위원은 "국민의힘 전 의원이 공천 대가로 돈 봉투를 받았다는 보도가 있다"고 맞불을 놨다.

앞서 송 전 대표가 탈당과 즉시 귀국을 결정하자 박지원 상임고문은 페이스북에 "역시 큰 그릇 송영길"이라며 "자생당생(自生黨生·자신도 살고 당도 살다)했다"고 띄웠다. 김민석 정책위의장도 "저와 마찬가지로 아직 집이 없는 드문 동 세대 정치인이다. 물욕이 적은 사람임은 보증한다"고 감쌌다. 당의 기류가 이렇다 보니 모든 민주당 의원의 '진실 고백'을 제안한 목소리는 묻혔다. 신정훈 의원은 페이스북에 "민주당 의원 169명 모두 저처럼 결백한지 죄가 있는지 고백문을 발표하자"고 했지만 공허한 메아리가 됐다.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정치권 격언도 옛말이 된 모양이다. 대표 경선에서 적나라한 분열상을 보여준 국민의힘은 김기현 대표 체제 두 달이 되는데도 지리멸렬하기 짝이 없다. 의석수가 100석을 겨우 넘는데도 일사불란은 고사하고, 잇단 설화(舌禍)로 국민 피로지수를 높이고 있다. 김재원 최고위원은 '전광훈 목사 우파 천하통일' '제주 4·3은 격이 낮은 기념일' 등 논란성 발언을 반복해 징계를 받을 처지다. '제주 4·3은 북한 김일성의 지시'라는 등의 언급으로 논란의 중심에 선 태영호 최고위원도 마찬가지다.

의정(議政)이라도 낙제점을 면했으면 하련만 여야는 바닥을 드러낸 지 오래다. 거야(巨野)의 입법 폭주 끝에 처리된 간호법 제정안과 쌍특검(대장동 '50억 클럽' 특검·김건희 여사 특검) 법안의 신속처리안건 지정으로 정국은 꽁꽁 얼어붙었다. 민주당은 수적인 힘으로 밀어붙이는 데 골몰했고, 국민의힘은 합의안 도출에 아무런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러는 사이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는 오간 데 없이 사라졌다. 간호법 후폭풍으로 의료 대란이라도 일어나면 그 피해와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이 떠안게 생겼다.

야당 원내사령탑 얼굴이 바뀐 지금이 정치 복원의 골든타임이다. 여야의 정쟁과 충돌은 신물 나게 지켜봤다. 대화와 협상, 양보, 타협, 절충 같은 주고받기로 상생과 공존을 모색하지 않고는 성난 민심이 임계점을 넘을 것이다. 선거구제 개편 등의 정치개혁을 외면한 채 절대 지지층 구애와 편가르기에 다 걸기하고 있는 판이니 이런 무책임, 몰염치가 없다. 민생 문제만 하더라도 전세 사기 대책 마련이 발등에 불이고, 세수 감소로 곳간이 텅텅 빌 지경 아닌가.

대통령실의 발상의 전환도 절실하다. 안 그래도 한미 정상회담 결과물을 밑천 삼아 후속 조치를 만들어야 할 때다. 국정 운영의 최종 책임은 대통령과 여권에 있는 만큼 윤석열 대통령이 적극 나섰으면 한다. 역대 대통령처럼 정상회담 성과를 설명하는 형식의 야당 지도부와 만남이 지름길이다. 대통령이 먼저 손을 내미는 '담대한 결단' 없이는 정상회담 성과가 퇴색되고, 안보 위기 타개나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민생을 푸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정치권은 이제라도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도리를 보여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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