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을 마친 동주는 '다음 도착하여야 할 시대의 정거장'을 찾아 조선은행 앞에 내린다. 거기서 정병욱과 함께 본정 일대의 서점가를 누빈다. 지성당, 일한서방, 마루젠, 군서당 등 신구 서점들을 두루 돌아다니고 나서는 후유노야도나 남풍장이란 음악 다방에도 들렀다. 고전 음악 애호가들과 문학청년들이 자주 들르는 곳이다. 이따금 명치좌에서 영화를 보기도 했다. 극장을 들르지 않을 때에는 다시 종로 쪽으로 걸음을 옮겨 관훈동의 헌책방을 순례했고, 거기서 다시 적선동으로 가 유길서점을 마지막으로 들른다."
윤동주가 연희전문 2년 후배 정병욱과 함께 다닌 거리의 풍경이 마치 영상처럼 생생히 머릿속에 그려진다.
이어지는 다음 영상. 저녁을 먹고 난 동주는 혼자 근처 수성동 언덕을 올라, 일제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서울을 내려다본다. 밤하늘에 하얗게 돋아난 별 하나하나에 동주는 제 마음을 새겼다. 추억과, 사랑과, 쓸쓸함과, 동경과, 시와, 어머니. 그리고 제가 아는 무수한 이들의 이름도.
소설가 김남일이 근대 문학의 흔적을 따라 걸으며 길어올린 얘기를 담아 '서울 이야기'를 펴냈다. 구보 씨가 돌아다녔던 종로와 청계천, 조선인 징병을 외친 이광수가 살던 북악의 산자락 등 교과서 속 수많은 작가의 황홀한 꿈과 절박한 한숨이 빚어낸 문학 속 서울의 풍경이 펼쳐진다.
'서울 이야기'는 그가 '한국 근대 문학 기행'을 주제로 평안도 이야기, 함경도 이야기, 도쿄 이야기와 함께 펴낸 4부작 중 하나다.
40년 넘게 소설을 써온 김남일은 "등단 이래 수많은 외국 작품을 읽어왔으면서도 정작 우리 문학은 중·고등학교 시절 교과서에서 배운 것들 말고는 딱히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읽은 기억이 없다"고 반성하며 '한국 근대 문학 기행' 시리즈를 썼다.
특히 이 시리즈는 한국의 근대 문학이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춘다. 처음부터 딱딱한 문학사론의 틀을 배제하고 문학 기행이라는 형식을 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독서에 있어 심각하리만큼 서구 편향적인 이 시대, 한국 근대 문학의 현장을 누비며 장면에 담긴 사람과 삶을 들여다보는 그의 생생한 문장들은 다시 우리 문학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 428쪽,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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