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우리들의 사모곡(思母曲)

박경혜 수필가

박경혜 수필가
박경혜 수필가

아내가 쓰러졌다. 뇌졸중은 순식간에 그녀를 궁지로 몰아넣었다. 젊은 시절 피아노를 가르쳤고, 제자 중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있어 그의 연주회에 다녀온 후였다. 어느 날 갑자기 걸음걸이가 비틀거리고 말이 어둔해지고 식사 중 음식을 흘리기도 했다.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휠체어가 집으로 들어오고 기저귀로 대소변을 받아내게 됐다. 아내의 자존심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우아하고 깔끔하던 그녀의 삶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린 것이다. 남편은 방문 간호사의 도움을 받긴 했으나 모든 상황을 홀로 감당하고 싶었다. 아내의 비참을 타인에게 보이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원하는 바이기도 했을 터이다.

혼자 감당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상황은 점점 나빠져 남편은 지쳐간다. 더는 어찌할 여력이 없어 아내의 존엄을 지켜주기로 마음을 굳힌다. 아내를 보내고 뒤따라 가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아무르'는 핵가족 시대의 노인 문제를 가장 잘 대변하는 우리 부모님의 이야기다.

슬픔은 살아있는 사람의 몫이다. 무남독녀인 딸은 감정을 추스르기 힘들어 보인다. 아버지를 원망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머니를 모시겠다고 선뜻 나서지도 못했으니까. 그 마음이 연로한 부모님을 둔 모든 자녀의 마음을 대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라 책임질 여력이 없는 건 우리 모두의 마음이 아닐는지.

중년이 넘어가니 모이면 자연스레 편찮으신 부모님 걱정을 하게 된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엄마의 손길만 있어도 가능하지만, 아픈 부모님을 돌보기 위해서는 온 가족의 손길이 필요하다. 서로 멀리 떨어져 살다 보니 함께 돌보기는 여의치 않은 게 현실이다.

여기저기가 아프다고 하소연하는 구순의 노모께 말했다. "구십 살쯤 되면 누구나 다 아파요. 엄마."

"구십이면 다 아프다고 누가 하더냐. 안 아픈 사람도 많더구먼." 어머니는 공감해주지 않는 딸에게 서운한 기색이 역력하다.

아차 했다. 깊은 밤에도 잠 못 이루며 앓는 소리 샐까 봐 멍이 들도록 입술 깨무는 당신이다. 바스라질 듯 앙상한 몸으로도 괜찮다, 괜찮다고 손사래 치는 어머니가 아닌가. 외로움에 사무쳐 어쩌다가 하는 하소연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맹랑하게 냉큼 되받아치고 말았다.

어머니의 세월이 저물어 간다. 한 몸 가누기도 힘든 기력으로 까무룩 하다 깨어날 때마다 자식 걱정을 하신다. 손이 차다고, 얼굴이 축났다고, 예쁘게 화장도 하고 다니라고. 움푹 꺼진 짓무른 눈에 안타까움이 고이면 나는 하릴없이 먼 데만 바라보며 눈을 끔뻑일밖에.

험한 세월을 힘겹게 건너오신 어머니, 존엄한 마지막을 잘 지켜드릴 수나 있으려는지. 구부러진 당신의 등허리만 자꾸 쓸어내리는 저녁이 붉게 저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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