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라언덕] 법문정답 ‘법을 묻는데, 정치로 답한다’

A를 묻는데 B 답하는 스킬 “국민 울화통 치밀어”
이문열 소설가 ‘외눈박이 괴인(怪人) 같아’ 발언 떠올라

여론특집부 차장
여론특집부 차장

Q: "아침밥 먹었어?" A: "엄마랑 아빠랑 싸웠어." 대화가 헛돌 수밖에 없다. 유치원생들의 문답도 이렇지는 않을 터인데. 대한민국 정치판이 이 모양 이 꼴이다. 황당하기 그지없다. 본질은 법을 묻는데, 정치로 답하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뉴스를 통해 A를 묻는데, B로 답하는 행태를 본다. 이를 보면서 대화의 스킬을 배우기는커녕 울화통만 치민다. 더더욱 속 시원히 잘못을 인정하거나 반성·성찰하는 모습은 눈을 씻고 봐도 찾기 힘들다.

최근 들어 이런 동문서답 화법이 더 극성을 부리는 이유가 '돈 봉투' 사건에 대해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송영길 전 대표가 엉뚱한 화법으로 대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표는 지난달 25일 2021년 민주당 전당대회를 둘러싼 '돈 봉투 살포 의혹'과 이 사건에 연루된 윤관석·이성만 의원 자진 탈당 질문에 "박순자 전 의원(국민의힘) 수사는요?" "김현아 전 의원(국민의힘)은 어떻게 되어가느냐"고 반문했다. 심지어 3일에는 '두 의원이 자진 탈당한 게 맞느냐'고 묻자, "태영호 의원(국민의힘) 녹취 문제는 어떻게 되어 가느냐?"고 되물었다. 국민을 대신해 묻는 기자들은 한마디로 '똥(?) 질문'을 한 것이나 다름 아니다.

이재명 전 경기지사와 박순자 전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위원장이 국회 도서관에서 열린
이재명 전 경기지사와 박순자 전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위원장이 국회 도서관에서 열린 '2018 국회 철도 정책 세미나'에서 얘기하고 모습. 연합뉴스

백번 양보해 이 대표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언론의 포화 또는 화살이 자신에게 집중되는 것이 억울할 수도 있다. 정치 탄압이나 기획 수사로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대표가 항변하는 '검사 독재정권의 탄압 프레임'이 작동하고, 국민의 공감을 얻으려면 위법성이나 팩트를 묻는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변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아무리 복잡하고 큰 잘못이라도 시원하게 인정하면, 다음 스텝(절차)으로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 때부터 시작된 끝도 없는 내로남불은 국민을 둘(보수냐 진보냐)로 갈라치기해 위법 사안마저 조각(조작)하려 들고 있으니, 국민 피로도는 극에 달하고 있다. 이로 인해 더 큰 부작용은 계속해서 거짓말을 낳고, 또 다른 위법 사안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튀어나오는 것이다. 이 대표가 정치 탄압을 주장하려면, 어마어마한 각종 범죄의 정황에 대한 정확하고 화끈한 반격(반론)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2009년 송영길 전 대표의 레종 도뇌르(프랑스 최고훈장) 수상 장면. 출처=대한민국 한류문화원 갤러리
2009년 송영길 전 대표의 레종 도뇌르(프랑스 최고훈장) 수상 장면. 출처=대한민국 한류문화원 갤러리

송 전 대표 쪽으로 한번 가보자. 매일신문 기자 신분으로 단도직입적으로 묻습니다. "레종 도뇌르 상(프랑스 최고 훈장)을 두 번 받으면 돈 봉투 돌려도 됩니까?" 아마도 송 전 대표는 기자에게 이렇게 물을지도 모른다. "기자는 돈 봉투 받은 적 없습니까?" 말문이 턱턱 막힐 듯하다. 도리어 "죄송합니다. 앞으로 10원짜리 하나 받지 않겠습니다"라고 스스로를 돌아보며 반성해야 할 듯하다. 본인 말대로 '먼지털이식 별건수사'가 아니라 지난달 12일 1심에서 징역 4년 6개월을 선고받은 이정근 전 민주당 사무부총장의 녹취록에서 "영길이 형이 처리를 많이 했더라고"라고 언급됐다. 그렇다면 최소한 이 부분에 대해 "난 이래서 아니다"고 항변하며, 이 발언을 한 강래구 한국수자원공사 상임감사위원을 명예훼손으로 고발해야 마땅하다. 법은 절차도 따라야 한다. 그래서 법치주의다. 그럼에도 검찰과 조율 없이 마음대로 자진 출두해 '기자회견'을 하고, 하고 싶은 말만 했다. 법보다 정치가 앞서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지난해 초 TV매일신문 생방송
지난해 초 TV매일신문 생방송 '관풍루'에 출연해, 이재명 대표를 향해 "외눈박이 괴인 같아"라고 표현한 이문열 소설가. TV매일신문 캡처 화면

문득 TV매일신문 유튜브 생방송 '관풍루'에 출연한 이문열 소설가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당시 이 소설가는 이재명 대표를 향해 "외눈박이 괴인(怪人) 같아"라고 표현했다. 이 표현을 그대로 쓴 온라인 기사는 한국지방신문윤리위원회로부터 제목이 너무 자극적이라고 주의 조치를 받긴 했지만, 법 위에 노는 정치 행태를 보면 새삼 그 말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21년 기자 생활에 지천명(50세) 정도 인생을 살다 보니 제일 중요한 건 ①휴머니티, ②옳고 그름, ③가치 및 사상으로 여겨지는데, 민주당 전·현직 대표에게는 ③번이 ①, ②번을 다 덮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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