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동네 책방과 평산책방

김교영 논설위원
김교영 논설위원

초등학교 단짝 친구가 술자리에서 "훗날 퇴직하면 뭘 할 거냐"고 물었다. "글쎄, 딱히 준비하는 게 없지만 동네 책방을 했으면 좋겠어"라고 했다. "그건 안 된다. 먹고살기 힘들다." 외식업과 부동산 중개업에서 잔뼈가 굵은 친구다. 세상살이에 촉 좋은 친구의 말이 내 말을 덮는다. 나도 안다. 동네 책방 절반이 2, 3년 내에 망한다는 사실을. 내가 사는 동네의 책방도 몇 년 버티다 문을 닫았다.

동네 책방은 돈벌이에 취약하다. 한 책방 주인은 먹고살 만하냐는 질문에 "먹고살 수는 있는데, 먹고 싶은 것은 못 먹는다"고 한다. 동네 책방이 방방곡곡 생겨나고 있다. 험한 세상에 다리라도 되려는 듯. 책방 주인이 책과 사람을 사랑하기에 가능하다. 동네 책방 하면 떠오르는 셀럽(celebrity)이 있다. 가수이며 작가인 요조(본명 신수진)다. 그는 제주에서 7년째 '책방무사'를 운영하고 있다.

경주 황리단길의 동네 책방은 '어디에나 있는 서점, 어디에도 없는 서점'을 표방한다. 이 책방은 책을 '읽는약'이란 처방전 봉투에 담아준다. 대구 동구 신천동의 동네 책방은 고양이와 다양한 포스터를 구경할 수 있다. 커피는 물론 칵테일도 판다. 중구 교동시장 인근 책방은 책들이 빽빽한 서가가 자랑이다. 작은 출판사가 펴낸 책이 대부분이다. 이곳은 책 만들기 수업도 진행한다.

동네 책방은 책과 삶을 잇는 곳이다. 평범한 작가와 소박한 주민들의 공간이다. 지역 커뮤니티 역할도 한다. 온라인, 효율성, 편의성이 대세인 시대에 동네 책방의 존재 이유이다. 동네 책방, 특히 독립 서점은 작은 출판사의 책이나, 동네 사람들이 지은 책을 판다. 동네 책방은 자본과 시장 논리의 영향을 받는 베스트셀러 구조에서 벗어나 있다. 대형마트가 있다면 구멍가게도 필요하다.

대박을 터뜨린 동네 책방이 있다. 남쪽 동네에 문을 연 문재인 전 대통령의 '평산책방'이다. 이 책방은 3일 "개점 후 일주일 동안 책 5천582권을 팔았다. 방문객은 1만 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책방 수익금은 공익사업에 쓸 예정이란다. 달빛이 모든 강을 비추듯(月印千江), 가난한 동네 책방에도 스몄으면 좋겠다. "여기선 책 구경만 하시고, 여러분이 사시는 동네 책방에서 책을 사주세요." 이런 이벤트, 평산책방에 기대해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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