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있지만 정작 대구경북 사람들은 잘 모르는 '세계적인 곳'이 대구에 있다. 대구에 본부 터를 잡은지도 벌써 60년이 됐다. '한국SOS어린이마을'이다. 부모를 잃었거나 부모 품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부모 대신 품어온 이 곳은 시설이 아니라 가정을 모델로 삼아 지난 60년 세월을 이어왔다. 대구경북 사회복지의 큰 기둥 역할을 해온 천주교 대구대교구(교구장 조환길 타대오 대주교)가 설립 때부터 지금까지 이 곳의 운영을 맡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교회 밖에서도 실천하고 있는 한국SOS어린이마을 신영규(베드로) 대표이사 신부를 지난 3일 대구 동구 검사동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 SOS라는 이름이 붙어있는데 그 뜻 얘기부터 해보자.
▶구조신호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다. 그런 뜻이 아니고 SOS는 라틴어로 'Societas Socialis'(소키에타스 소키알리스)다. 뜻풀이를 하면 사회적인 책임을 지는 사회라는 의미다. 어려운 상황에 놓인 어린이들을 책임진다는 것이다. 출발은 유럽이었다. 2차대전 종전 직후인 1949년, 러시아 군인으로 전쟁에 참전해 참혹한 전쟁터를 목격한 오스트리아 출신 헤르만 그마이너 박사가 "전쟁 고아가 된 아이들을 사회가 돌봐야한다"며 오스트리아 티롤 지방 임스트에 SOS어린이마을을 설립, 이후 전세계 138개국으로 널리 퍼져 500여곳의 마을이 생겨났다.

- 유럽에서 시작된 SOS어린이마을이 한국에는 어떻게 들어오게됐나?
▶1959년 선교사로 한국에 들어온 오스트리아 출신 하 마리아(Maria Hessenberger) 여사가 당시 천주교 대구대교구 교구장이었던 서정길 사도 요한 대주교의 지시로 대구 중구 삼덕동에 가톨릭 근로소년원을 세웠다. 6.25 전쟁 직후 대구에는 구두닦이, 넝마주이 소년들이 많았는데 이들을 모아 근로소년단을 조직, 자활을 도운 것이다. 그러던중 마리아 여사가 1962년,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친동생의 사제 서품식에 갔다가 SOS어린이마을 창설자인 그마이너 박사를 만나게됐고 한국에 SOS어린이마을 설립을 요청했다. 이 요청을 받은 그마이너는 한국에서 쌀이 차지하는 비중에 착안, 대구의 구두닦이 소년들에게 부탁해 한줌의 쌀이 담긴 주머니를 모아오도록 부탁했고 이 주머니를 오스트리아로 가져갔다. 그리고 유럽 각국에서 "쌀 한 톨에 기부하면 한국의 어린이를 도울 수 있다"는 캠페인을 진행했다. 엄청난 호응이 나타나 큰 기금이 마련됐고 비유럽권 국가 최초로 1963년 대구 동구 현재 터에 한국SOS어린이마을이 설립됐고 한국본부를 대구에 두게 됐다.

- 대구가 시초이고 본부인데 다른 곳에도 있나?
▶대구에 이어 1981년 순천에, 1982년 서울에 SOS어린이마을이 생겼다. 대구에 원생이 50여명이 있는 것을 비롯해 전국 3개 마을에서 150여명의 아이들이 자라고 있다.
- SOS어린이마을은 어떤 지향점을 갖고 아이들을 돌보고 있나?
▶SOS어린이마을은 부모, 형제, 가정, 집이라는 개념을 두고 아이들을 기른다. 일반 가정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것과 같은 환경을 지향한다. 단독주택 형태 집에 어머니가 있고, 연령대가 다른 5, 6명의 아이들이 형제·자매처럼 한지붕 아래에서 생활하는 구조다. 집단 양육의 형태가 아니라 따뜻한 가정에서 바르게 자라도록 하는 것이 우리들의 지향점이다. 집단 양육은 수용이라고 봐야한다. 수용 형태라면 인격적으로 아이들이 바르게 자라기 힘들고, 결국 정체성 위기로도 이어진다.

- 가정의 틀을 만들고 어머니가 있다는 것이 굉장히 특이한데 운영상에 어려움은 없나?
▶이런 형태라야 제대로 기를 수 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직면하고 있는 난관도 많다. 어머니가 될 사람을 구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지원자가 있다 하더라도 주52시간 제도로 인해 어머니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가 힘들다. 어머니의 역할을 대신할 보조 양육자인 이모를 모셔와서 어머니의 빈자리를 메꾸고 있다. 시대가 변하고 있어 예전 우리의 지향점이었던 어머니의 역할을 만들어내기가 많이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가정의 형태에서 아이들을 길러야한다는 목표가 흔들리지는 않는다.
- 가정의 형태로 가는데 있어서 중앙·지방정부의 제도적 지원책은 충분히 이뤄지고 있나?
▶정부는 가정의 형태로 가라고 권고하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의 모습은 그렇지 못해 아쉽다. 예를 들어 우리 마을은 어머니가 장을 봐서 개별적으로 아이들 식사를 챙겨준다. 하지만 정부는 단체급식을 하라고 한다. 식자재 입찰을 하고, 공동구매를 하라는 식이다. 정부 보조금을 받아야하니 이를 따라야하는데 우리의 양육 방법과 충돌이 된다.

- 처음 설립때는 전쟁고아 등 부모가 없는 아이들이 많았을 것이고, 요즘은 아이들의 사연이 과거와 많이 달라지지 않았나?
▶SOS마을에서 자라는 아이들 중 부모가 있는 비율이 80%정도 된다. 키울 형편이 안되거나 학대가 이뤄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기 있다가 원가정으로 복귀해서 잘 자라는 사례도 찾기 어렵다. 때문에 이 곳에서 잘 키워야한다. 가정의 형태로 아이들을 잘 기르려고 하지만 아이들 입장에서는 집이라고 받아들이기 힘든 측면도 있다. 친구와 함께 하교해서 오다가 일부러 먼 곳에서 헤어져 혼자 터덜터덜 걸어오는 경우도 많이 봤다. 반듯하게 키우려고 노력하지만 아이들 입장에서는 마음 한구석이 비어있을 것이다. 이 곳의 구성원들이 더 노력해야한다.
- 사춘기 아이들도 많을 테고 아이들의 마음을 다잡아주는 것이 많이 힘들지 않은가?
▶마음을 보듬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심리 상담 지원이 꼭 필요하다. 심리 상담을 위한 비용이 꽤 들어가기에 마을을 운영하는데 큰 애로점으로 작용한다. 치과나 다른 진료과목은 봉사자가 적잖고 후원도 있어서 어려움이 적은데 아이들 마음을 잡아주는 심리 상담 부분에서 우리를 도와줄 사람들이 많지 않아 고민이 크다.
- 여러 어려움이 많지만 아이들이 자라서 사회로 진출한 모습을 보면 뿌듯하기도 할텐데?
▶물론이다. 우리 마을에서 자라 변호사가 된 사람도 있고, 공군 대령도 나왔다. 공무원도 많이 됐고, 수녀님이 된 분도 있다. 독신으로 살아온 우리 마을 어머니들을 찾아와 거꾸로 이제 그들을 돌봐주기도 한다. 안타까운 점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아이들의 숫자가 갈수록 줄어든다는 것이다. 마음 치료에 대해 강조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의식주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서 아이들이 바르게 자라는 것이 아니다. 정서적 안정, 마음의 평화를 찾아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 한국SOS어린이마을 60주년 행사를 오는 13일 오전 10시30분, 이 곳에서 갖는다는데?
▶대구에서 60년동안 큰 일을 이뤄오면서 세계의 주목을 끌어왔는데 우리 활동에 대해 정작 지역 사회의 관심이 너무 적었다. 그래서 오는 13일 60주년 행사 규모를 좀 키웠다. 해외에서도 많은 손님이 오고 대통령실에서도 찾겠다는 소식이 왔다. SOS어린이마을은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에 국제본부를 두고 있으며, 전 세계 137개의 회원국으로 구성된 세계적 NGO단체다. 최초 설립 이후 지난 70여년동안 SOS어린이마을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세계 약 400만 명의 어린이를 지원해오면서 지구적 울림을 만들어왔다. 우리 사회가 아이들을 위해 할일이 많고 우리가 외국의 도움을 받았듯이 우리도 이제 지구적 책임을 져야한다. 우크라이나를 비롯해 지금 전세계에 분쟁지역이 얼마나 많은가? 세상 모든 어린이는 우리 어린이라는 SOS어린이마을 정신을 우리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되새겨봐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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