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심백강의 한국고대사] 동양고전으로 다시 찾는 발해조선의 역사 (9)

황폐한 조선성, 왜 천년 전 노룡현에 남아있었나
모택동 휴가철 수영 즐겼던 북대하…태평환우기 '북대하 인근 유적' 기록
조선현 통폐합 최초 설치한 노룡현…조선현→신창현→노룡현 명칭 개정
결국 이름만 바뀌고 지역은 그대로…뿌리 찾아보면 고조선 이념 맞닿아

북대하의 아름다운 풍경.
북대하의 아름다운 풍경.

◆전 중국에서 가장 매력적인 곳 북대하北戴河

북대하는 중국의 4대 피서 승지 중 하나로서 하북성 동북쪽, 진황도시 동남쪽에 있다.
발해 해변에 있는 북대하는 미국의 하와이 같은 느낌이 드는 곳이다. 그 아름다운 경관이 가위 중국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혹자는 해남도가 아름답다고 말하지만, 필자는 중국의 많은 곳을 답사했는데 전 중국에서 가장 매력적인 곳 한 군데를 꼽으라면 북대하를 들고 싶다.

북대하의 연평균 기온은 12℃이다. 겨울에 영하10도 이하로 내려가는 일이 드물고 무더운 여름철도 섭씨 30도를 넘지 않는다. 여름철의 평균 기온은 24℃이다. 일 년 사계절 모두 휴식하기에 적합한 해변휴양지이다.

북대하의 15킬로미터에 이르는 해안선은 모래는 부드럽고 물결은 잔잔하다. 해수욕과 사욕沙浴과 일광욕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이상적인 천연의 낙원이다. 그러므로 중국 공산당 간부들은 여름철이면 아예 집무실을 이곳으로 옮겨와 업무도 처리하고 휴식도 즐긴다.
모택동 주석은 여름철이면 북대하를 찾아 수영을 즐겼는데 1954년에는 북대하에 머물면서 '낭도사 북대하浪淘沙 北戴河'라는 명작을 남기기도 했다.

북대하는 북대하구 경내를 흐르는 강물 이름으로 고대에는 유수渝水라 고 불렸다. 청나라 때 북대하로 바뀌었고 오늘날은 이 지역을 가리키는 지명이 되었다.

◆'태평환우기太平寰宇記', 북대하 인근 노룡현에 조선성朝鮮城이 있다

북대하 표지석.
북대하 표지석.

송나라때 4대 사서중의 하나인 태평환우기.
송나라때 4대 사서중의 하나인 태평환우기.

현재 중국 하북성 진황도시는 산하에 북대하구를 비롯하여 노룡현盧龍縣, 창려현, 청룡만족자치현 등 4개 현급 행정구역을 관할하고 있다. 노룡현은 바로 전 중국에서 풍경이 가장 수려한 북대하와 이웃한 지역인데 이곳에 조선성이 있다는 기록이 '태평환우기' 권70 하북도 평주平州 노룡현 조항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고죽성孤竹城:오늘의 현縣 동쪽에 있다. 은나라의 제후인 백이 숙제의 나라이다.···(孤竹城 在今縣東 殷之諸侯 即伯夷叔齊之國···)
조선성朝鮮城 :바로 기자가 봉함을 받은 지역이다. 지금 황폐한 성이 남아 있다. (朝鮮城 即箕子受封之地 今有廢城)
요서성遼西城:한나라 때 여기에 군을 설치했다. 황폐한 성이 지금 군의 동쪽에 있다. (遼西城 漢為郡於此 廢城在今郡東)"

우리는 그동안 조선이라 하면 이성계가 세운 한양 조선이나 대동강 유역의 평양 조선을 연상하기 일쑤였다. 그런데 천 년 전 중국 송나라 때 문헌인 '태평환우기'에서 하북도 평주 노룡현 즉 발해유역 북대하 부근에 조선성 유적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이는 실로 우리의 역사상식을 송두리째 뒤집는 깜짝 놀랄 일이 아닐 수 없다. 반도사학은 물론 말할 것도 없지만 '조선왕조실록', '고려사', '삼국유사', '삼국사기' 어디에서도 하북도 평주 노룡현에 조선성이 있다고 언급한 기록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태평환우기'의 평주 노룡현과 현재의 하북성 노룡현은 동일한 지역인가

풍광이 수려한 노룡현의 봉황산주변, 조선성은 어디쯤에 있었을까.
풍광이 수려한 노룡현의 봉황산주변, 조선성은 어디쯤에 있었을까.

지금 하북성 진황도시 관할하에 북대하구와 함께 노룡현이 소속되어 있다. 문제는 태평환우기'에서 말한 송나라 때의 하북도 평주平州 노룡현이 과연 오늘날의 하북성 진황도시 북대하 부근에 있는 노룡현과 같은 지역인가 하는 것이다.

'태평환우기'에는 조선성이 있던 노룡현이 하북도 평주에 소속되어 있는데 한국인들은 평주가 어딘지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 것이다. 현재 중국 지도상에 평주라는 지명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태평환우기'에서 평주의 연혁에 대해 설명한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평주는 순舜임금이 중국을 12주로 나누었을 때는 영주營州 지역이고, 하夏나라의 우왕禹王시대에는 기주冀州 지역이며, 주周나라시대에는 유주幽州지역이고, 춘추시대에는 산융족山戎族의 고죽국孤竹國, 백적족白狄族의 비자국肥子國 지역이다.
전국시대에는 연燕나라 지역이고, 진시황제가 천하를 통일한 이후에는 우북평군右北平郡 요서군遼西郡 지역이었으며 한漢나라시대에는 요서군 지역이고 후한말에는 공손도公孫度가 차지하여 평주목平州牧이라 했다.

진晉나라와 북위시대에는 요서군에 소속되었고 수隋나라 때는 우북평군, 당나라 무덕武德 2년에는 평주로 되었다가 천보天寶 원년에 북평군으로 개정했으며 건원乾元 원년에는 다시 평주로 되었다. 노룡현,석성현石城縣,마성현馬城縣 3개 현을 담당하고 있다."
노룡현은 1,400여 년 전 수隋나라 개황開皇 18년(598)에 신창현新昌縣을 개정하여 최초로 설치되었고 그 후 당, 송, 원, 명, 청 등을 거치면서 북평군, 평주, 요서군, 영평로永平路, 영평부 등으로 소속은 여러 차례 바뀌었지만 노룡현이라는 명칭에는 변경이 없었으며, 1985년 하북성 진황도시 관할이 되었다.

송나라 때 하북도 평주는 지금의 하북성 동쪽 진황도시 당산시唐山市 천안시遷安市 일대였고 노룡현,석성현, 마성현 3개 현을 관할하고 있었다. '태평환우기'에 나오는 하북도 평주의 노룡현과 현재의 하북성 진황도시 노룡현은 평주와 진황도시로 소속은 바뀌었지만, 그 지역은 같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천 년 전 조선성이 왜 오늘날의 하북성 노룡현에 있었는가

노룡현 영평부 유적, 조선성, 고죽성, 요서성이 이부근에 있었다.
노룡현 영평부 유적, 조선성, 고죽성, 요서성이 이부근에 있었다.

한국인 중에 중국 북경의 자금성은 알아도 노룡현의 조선성을 아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우리는 여기서 천 년 전 어째서 지금의 하북성 진황도시 북대하 근처 노룡현에 황폐한 조선성이 남아 있었던 것일까 하는 의문에 직면하게 된다.

그에 대한 해답은 '수서隋書' 북평군 노룡현 조항에서 찾을 수 있다.
"노룡현盧龍縣: 옛적에는 북평군을 설치하고 신창현과 조선현 두 현을 관할했다. 후제後齊시기에 조선현을 감축시켜 신창현에 편입시켰다.··· 개황開皇 18년에 노룡현으로 명칭을 바꾸었다.(盧龍 舊置北平郡 領新昌朝鮮二縣 後齊省朝鮮入新昌··· 開皇十八年改名盧龍)".

'수서'의 기록에 따르면 북평군에서 조선현, 신창현 두 현을 관할했는데 후제시기에 조선현을 폐지하고 신창현에 편입시켰다. 여기서 말하는 후제란 북제北齊의 다른 이름이다. 고양高洋이 동위東魏를 대체하여 황제라 칭하고 국호를 제齊라 하였는데 역사상에서는 이를 북제 또는 후제라고 호칭한다.

위는 중국 북조시대 위나라 평주지도, 조선이란 두글자가 보인다. 아래는 수나라시대 북평군 지도. 조선이 노룡으로 바뀌었다.
위는 중국 북조시대 위나라 평주지도, 조선이란 두글자가 보인다. 아래는 수나라시대 북평군 지도. 조선이 노룡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수나라 개황開皇 18년(598)에 이르러서 조선현을 통폐합한 신창현을 노룡현으로 명칭을 개정했다. 조선현이 신창현으로 신창현이 다시 노룡현으로 명칭이 바뀌었으니 알고 보면 노룡현은 사실 조선현인 셈이다.
수나라에서 조선현을 통폐합해 최초로 설치한 노룡현은 그 이후 당나라를 거쳐 송나라시대까지 행정구역의 큰 조정이나 명칭 상의 변동 없이 그대로 존속되었다.
명칭은 노룡현으로 바뀌었지만, 그 지역은 본래 조선현이 있던 지역이므로 '태평환우기'의 노룡현 조항에 '조선성'이 거기 나오게 된 것이다.

노룡현은 주나라 이전에는 고조선의 도성이 있었고 춘추시대에는 고죽국의 국도였으며 한나라 시기에는 요서군 땅이었고 한무제 이후에는 낙랑군 조선현이 되었다. 북제시기에 조선현이 신창현으로 통폐합되었고 수나라때 노룡현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하북성 노룡현은 뿌리를 더듬어 올라가면 홍익인간을 이념으로 건국한 우리 한민족의 성스러운 나라 고조선과 만난다. 그래서 거기에 천 년 전 송나라 때까지 조선성 유적이 남아서 여기가 조선인의 요람이라고 발해조선의 역사를 증언했던 것이며, 그것이 오늘날 한민족의 새로운 웅비시대를 맞아 필자에 의해서 세상에 공개되게 된 것이다.

역사학박사·민족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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