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욕해 줘" 비좁은 집에서 수십년간 지적장애 자녀들 돌봐…고독한 사투 언제 끝날지

가정 소홀한 남편 대신 모든 생계 책임…뒤늦게 아들·딸 정신 온전치 못한 것 알아
장애 정도 심한 아들은 밤만 되면 '괴물환자'에 시달려…딸도 극심한 스트레스
여든 바라보는 유일한 보호자, 건강도 갈수록 나빠져…미래 생각하면 숨 막혀

11평짜리 임대주택에서 세 식구가 생활하고 있는 백자경(가명·77) 씨네. 왼쪽부터 아들 함현덕(가명·47) 씨와 자경 씨, 딸 함부용(가명·43) 씨. 현덕 씨와 부용 씨는 모두 지적장애가 있다. 윤정훈 기자
11평짜리 임대주택에서 세 식구가 생활하고 있는 백자경(가명·77) 씨네. 왼쪽부터 아들 함현덕(가명·47) 씨와 자경 씨, 딸 함부용(가명·43) 씨. 현덕 씨와 부용 씨는 모두 지적장애가 있다. 윤정훈 기자

"욕해 줘! 욕해 줘! 욕해 줘!"

오늘 밤도 아들의 고독한 사투가 시작됐다. 자려고 누웠던 백자경(가명·77) 씨는 힘겹게 몸을 일으켜 세웠다. 바닥에 누워있는 딸을 밟지 않기 위해 조심조심 걸어 아들의 방에 도착했다. 거구의 아들은 비좁은 침대에 드러누운 채 '괴물환자'에게 저항하고 있었다. 괴물환자는 아들이 하는 말을 따라 하며 아들을 괴롭히는 몹쓸 녀석이다. 아들은 늘 자경 씨에게 자기 대신 괴물환자를 욕해달라고 부탁했다. 욕보다 더 한 것도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자경 씨는 괴물환자를 볼 수도, 그 목소릴 들을 수도 없었다. 겨우 아들을 달래고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오늘도 잠들기는 글렀다. 서랍에서 화엄경 한문 사경 제17권을 꺼냈다.

사각… 사각…

앉은뱅이 밥상에 거의 달라붙을 기세로 글을 써 내려가는 자경 씨. 그 모습은 탑을 깎는 석공에 가까웠다. 심 끝이 종이에 머무는 순간만큼은 생각을 멈출 수 있었다. 그렇게 자경 씨의 고독한 사투는 밤새도록 이어지고, 또 이어졌다.

◆폭력 경험 뒤 은둔 생활 중인 지적장애 아들딸… 40년간 이어진 '육아'

자경 씨 남편은 네 식구의 가장이었지만, 늘 원인을 알 수 없는 통증을 호소하며 일은 내팽개치고 밖을 나돌아 다녔다. 가정에 소홀한 남편 대신 자경 씨가 가족의 모든 생계를 책임졌다. 이 집 저 집 다니며 파출부로 일하고, 파출부 일이 없을 때 틈틈이 식당 설거지, 아파트 청소 일 등을 하며 하루 종일을 일만 하며 보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동생 4명을 키워야 했던 상황이 또다시 반복됐다.

그러느라 아이들을 제대로 돌볼 시간이 없었다. 아들과 딸이 보통의 아이들과 다르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게 됐다. 단순히 공부에 흥미가 없는 아이라 생각했던 아들 함현덕(가명·47) 씨는 중학교 입학 이후 본격적으로 따돌림을 당하기 시작했다. 같은 학교 학생이나 동네 깡패들에게 맞고 다니는 것이 일상이고, 한쪽 다리 전체가 새파랗게 물들어 돌아온 적도 있다. 결국 현덕 씨는 중학교를 중퇴했다. 딸 함부용(가명·43) 씨 또한 비슷한 이유로 6학년 때 국민학교를 그만뒀다. 같은 아파트 동에 딸보다 대여섯 살 정도 많은 여자애가 살았는데 정신이 좀 이상한 아이였다. 그 애는 자경 씨가 일하러 간 사이 문고리를 부수고 침입해 집에 혼자 있던 딸을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이유 없이 폭행했다.

이 일들이 있고 난 뒤 두 자녀를 근처 정신병원에 데려갔다. 그곳에서 현덕 씨는 지적장애 구 2급, 부용 씨는 3급 판정을 받았다. 입퇴원을 반복하며 치료를 계속해봤지만, 상태는 크게 호전되지 않았다. 사람에 대한 공포심으로 마음의 문을 닫은 현덕 씨와 부용 씨는 학교 중퇴 후부터 지금까지 그 어떤 사회생활도 하지 않고 은둔형 외톨이로 지내고 있다.

◆11평짜리 주택에 갇혀 사는 삶… 유일한 보호자인데 건강은 점점 나빠져 가

그러면서 자경 씨의 육아 생활은 4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개인 공간이 온전히 분리되지 않은 비좁은 집에서 지적장애 자녀 2명을 키우는 일은 쉬운 게 아니었다. 30년 동안 살고 있는 11평 남짓한 임대주택은 방 하나, 화장실, 그리고 부엌 겸 거실로 구성돼 있다. 남편이 지난 2018년 병으로 눈을 감은 이후 하나 있는 방은 아들이 쓰고, 나머지 부엌 겸 거실에 침대를 두고 자경 씨와 부용 씨가 생활하고 있다. 방이 좁아 큰 침대를 놓을 수 없어 딸은 바닥에 이불을 깔아서 잔다. 평범한 사람 3명이 살기에도 열악한 환경인데, 지적장애 자녀 2명과 함께 지내기엔 더더욱 버거운 곳이 지금의 집이었다.

장애 정도가 특히 심한 현덕 씨는 집에서 하루 종일 아무 의미 없이 소리를 지르고, 환청에 의해 이상한 행동을 했다. 집안 곳곳에 대소변 실수를 해놓기도 했다. 오빠의 이러한 행동들로 인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부용 씨는 침대를 내리치거나 자기 가슴을 두드리는 행동을 한다. 이런 두 자녀를 진정시키는 일은 모두 자경 씨의 몫이다. 최근 들어 이러한 상태가 더 심해진 바람에 자경 씨는 하루라도 깊게 잠들어 본 적이 없다.

서로 분리가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선 보다 넓은 집이 필요했다. 하지만 기초생활수급가정으로 주거급여 3만7천원 등을 포함해 한달 약 120만원으로 생활하고 있는 상황에 '넓은 집'은 그림의 떡이다. 식비 포함 생활비 40만원, 주거비와 공과금으로 18만7천원, 외래통원비 약 30만원 등이 주기적으로 나가 남는 게 거의 없다. 그래도 지금보다는 더 큰 평수로 옮기고 싶어 지난해 1월 19평짜리 임대주택에 입주 신청을 넣어 입주가 확정됐지만, 대기가 길어 아직 입주일은 요원하다.

무엇보다 가장 큰 걱정은 두 자녀의 유일한 보호자인 자경 씨 본인의 건강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곧 여든을 바라보고 있는 자경 씨는 고혈압, 요통, 좌측 고관절 골절 후유증, 요실금, 관절염 등 여러 병을 달고 사는 중이다. 지난 2019년 허리 수술, 지난해 10월 두 쪽 무릎에 인공관절치환 수술을 받았음에도 보행보조기 없이는 밖에 나갈 수 없는 몸이 됐다. 10년 전에는 백내장 수술을 했는데 최근 위아래 눈꺼풀 협착이 심해져 사물을 제대로 보는 것조차 힘들어졌다. 글씨도 제대로 못 쓸 정도로 생활에 지장이 크지만 관련 수술은 의료 목적이 아닌 '성형'으로 분류돼 보험 적용을 받을 수 없다고 해 수술은 꿈도 못 꾼다.

자녀들 역시 나이를 먹어가면서 건강에 하나둘 이상이 생기고 있다. 딸 부용 씨는 지난 2021년 당뇨합병증으로 풍이 와서 오른쪽 손과 엉덩이에 문제가 생겼다. 손으로 무언갈 제대로 잡지를 못해 계속 물건을 떨어뜨리고 걸을 때마다 엉덩이에 통증을 느껴 제대로 걷지도 못한다. 아들 또한 최근 상동증(의미 없는 행동을 반복하는 증상)이 더 심해지는 등 정신 건강이 안 좋아지고 있다.

휘몰아치는 우울감, 무력감, 죄책감 등을 필경으로 다잡으려는 자경 씨. 하지만 연필을 쥔 손에 힘이 안 들어가고 눈이 침침해 글씨를 쓸 수가 없다. 연로한 육신이 유일한 구원마저 앗아갔다. 버거운 육체와 버거웠던 자신의 인생, 그리고 더욱더 버거울 자녀들 미래 생각에 숨이 막혀오는 자경 씨였다.

*매일신문 이웃사랑은 매주 여러분들이 보내주신 소중한 성금을 소개된 사연의 주인공에게 전액 그대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개별적으로 성금을 전달하고 싶은 분은 하단 기자의 이메일로 문의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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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성금내역]


◆비참한 결혼 생활 속에도 하나뿐인 딸 행복 바라며 버텼는데 딸 역시 가정폭력으로 이혼하고 우울증 극심한 딸 대신 고령의 나이에 손자 2명 키우는 전염선 씨에게 2,223만원 전달

가정폭력으로 이혼한 뒤 극심한 우울증을 겪는 딸을 대신해 고령의 나이에도 건강이 안 좋은 손자 2명을 홀로 키워야 하는 전염선(매일신문 4월 25일자 10면) 씨에게 2천223만3천680원을 전달했습니다. 성금을 보내 주신 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성금에는 ▷이연숙 10만원 ▷서석호 4만원 ▷김준홍 3만원 ▷신종욱 2만원 ▷이장윤 2만원 ▷성영아 1만원이 더해졌습니다. 성금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가정 소홀하고 생활비 제대로 안 주던 남편 간병하다 최근 세상 떠나고 딸 양육비, 남편 치료비 갚기, 밀린 월세 내기 막막한데 갑상선 기능 항진증으로 일자리 구하기 어려운 심기란 씨에게 2,608만원 성금

가정에 소홀하고 생활비도 제대로 안 챙겨줬던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딸 양육과 남편 치료비 갚기도 막막한데 갑상선 기능 항진증까지 앓고 있는 심기란(매일신문 5월 2일자 10면) 씨에게 50개 단체, 195명의 독자가 2천608만7천728원을 보내주셨습니다. 성금을 보내 주신 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피에이치씨큰나무복지재단 200만원 ▷건화문화장학재단 150만원 ▷(주)대구은행 100만원 ▷㈜세원정공물산 100만원 ▷다우약품 50만원 ▷신라공업 50만원 ▷한라하우젠트 50만원 ▷㈜태린(이동훈) 40만원 ▷최상규이비인후과 40만원 ▷삼성기공(장태종) 30만원 ▷㈜신행건설(정영화) 30만원 ▷한미병원(신홍관) 30만원 ▷(주)동아티오엘 25만원 ▷㈜백년가게국제의료기 25만원 ▷금강엘이디제작소(신철범) 20만원 ▷대백선교문화재단 20만원 ▷대창공업사 20만원 ▷대흥분쇄기(한미숙) 20만원 ▷(주)구마이엔씨(임창길) 10만원 ▷(주)삼이시스템 10만원 ▷(주)우주배관종합상사(김태룡) 10만원 ▷(주)이구팔육(김창화) 10만원 ▷경주천마운전전문학원 10만원 ▷김영준치과 10만원 ▷대구동양자동차운전전문학원(최우진) 10만원 ▷마린슐레 10만원 ▷세움종합건설(조득환) 10만원 ▷신성산업(김용환) 10만원 ▷우리들한의원(박원경) 10만원 ▷창성정공(허만우) 10만원 ▷건천제일약국 5만원 ▷메이연세치과(최윤희) 5만원 ▷명EFC(권기섭) 5만원 ▷베드로안경원 5만원 ▷선진건설(주)(류시장) 5만원 ▷세무사김기욱사무소 5만원 ▷이전호세무사 5만원 ▷전피부과의원(전의식) 5만원 ▷중앙안과의원(김일경) 5만원 ▷채성기약국(채성기) 5만원 ▷칠곡한빛치과의원(김형섭) 5만원 ▷프루스트(한유미) 5만원 ▷피플라이프(박태호) 5만원 ▷국선도풍각수련원 3만원 ▷동신통신㈜(김기원) 3만원 ▷매일신문구미형곡지국(방일철) 3만원 ▷청산(우창하) 3만원 ▷영천령취사 2만5천원 ▷사단법인대한민국힐링문화진흥원 1만원 ▷하나회(김미라)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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