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얼굴은 금방 눈에 들어온다. 빛바랜 단체 사진 속에서도 바로 찾을 수 있다. 나는 사물을 다루면서 사실은 사람에게 눈이 가 있다. 형태는 색으로 환원되고 색은 빛이라는 현상의 인식, 결국 그것을 인식하는 나에게, 나아가 인간 일반에게로 돌아간다는 게 거칠게 정리한 나의 회화론이다. 나의 관심사, 나의 즐거움, 사람과 미술의 만남에 관한 이야기다.
이우환의 예술론을 만남의 미학이라 한다. 그는 미술가로서 자신의 개입을 최소화하면서 사물과 사물, 사물과 공간 사이의 관계를 맺어주는 '관계 맺기'를 통해 미술한다. 이우환은 그야말로 간결하다고 할 그 최소한의 행위로 미술이 된다는 걸 보여준다. 그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바위를 바위 그 자체로, 있는 그대로의 물성을 온전히 느끼게 된다. 이는 미술이 만남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미술하기'로 증명해 보인 하나의 사례다.
만남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미술로 삶을 살아가는 나에게 잊을 수 없는 사람, 고(故)박남희 교수님이다. 박 교수님은 대학 은사다. 내가 작가 생활하다가 갑자기 2013년에 교육학 박사 과정을 밟겠다고 했을 때 교수님은 그래 잘 생각했다, 하고 말씀하셨다. 가족의 반대, 주변의 의문, 특히 나 자신의 불안을 모두 해결해준 그 어떤 말보다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다. 늘 제자의 학문적 관심과 흥미를 존중해준 박 교수님께 감사한다.
나는 경북대 대학원 미술학과를 졸업한 뒤, 교환유학생 때 공부한 지역에 밀착한 현대미술 연구를 더 이어가고 싶어서 2002년에 나가사키대학 대학원 교육학연구과에 진학했다. 그렇게 해서 미술학과 교육학, 2가지 석사학위를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한동안은 일할 데가 없었다. 그러다가 기회는 박 교수님을 통해 찾아왔다. 2005년 1학기부터 나는 3학년 조형기법 수업의 팀티칭 강사로 일했다. 이때 나는 고전 유화기법 그리자유(grisaille, 회색 단색 기법)를 가르쳤다. 누구든 첫 일자리, 첫 수업은 각별하게 생각되지 않을까.
처음으로 맡게 된 일을 잘하고 싶은 마음으로, 나는 그리자유 기법을 가르치기 전에 목재부터 가공해서 캔버스를 제작하는 수업을 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톱질, 대패질을 학생들과 함께했다. 나무틀뿐만 아니라 광목에 아교를 먹이는 바탕지 준비과정도 가르쳤다. 기성의 캔버스가 아닌 자기 손으로 직접 캔버스를 만들어 사용하는 수업을 시도했다. 그림을 그리는 행위만큼 사전 준비가 교육적으로 의미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의 학생들이 멋 모르고 열정만 넘치는 강사를 참 잘 따라주었던 것 같다. 그해 1년 동안 공부한 결과는 한기숙갤러리에서 전시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나는 가르치는 일을 사랑한다. 그런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은 미술을 매개로 한 만남 덕분이다. 우연히 경북대에 진학했고 박 교수님을 만났다. 경북대와 자매결연이 맺어진 나가사키대학에서 교육학을 만나게 됐다. 그리고 경북대에서 뒤늦게 시작한 교육학 공부는 화가인 나의 삶을 지탱해주고 있다. 앞으로 미술이 나에게 어떤 만남을 안겨다 줄지 정말 궁금하다. 미술을 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우연이 만들어 낸 필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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