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건표의 인세이셔블 연극리뷰] 김기덕 감독 영화처럼 불편하면서도 그 불편함을 위한 연극 <어느 여름날의 오후>

김건표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어느 여름날의 오후. 프로젝트 아일랜드 남동진 제공
어느 여름날의 오후. 프로젝트 아일랜드 남동진 제공
김건표 대경대 교수(연극 평론가)
김건표 대경대 교수(연극 평론가)

한국연극이 여성, 젠더, 몸, 배리어프리, 기후, 장애·비장애 등 '소재주의'로 방향을 잡을 때 극단 프로젝트 아일랜드는 묵직한 희곡과 연극적인 재현성의 미학을 추구하는 극단이면서도 현대적인 연극성을 강하게 들어내고 있는 극단이다. 창단공연<아일랜드>(2012)의 성공으로 초심(初心)의 '연극정신'을 잊지 않으려고 극단 문패도 작품과 동일하게 했을 정도다. <일상 광기의 이야기>(2018)로 동아연극상 작품상과 유인촌 신인연기상(남동진)을 수상했다. 이 작품은 인간의 광기 현상에 대한 연극으로 정상과 비정상 경계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인간의 내면을 상실·고독·불안·우울 등으로 불안전한 내면의 광기를 무대전경으로 섬세하게 들어내면서 연출의 대표작이 되었다. 이후, <고독한 목욕>(국립극단, 2019)으로 '인혁당(인민혁명당) 사건' 이야기를 다루면서 서지혜는 두 작품으로 연출 감각을 확실하게 인정받게 된다.

다른 작품의 한 장면을 떠올려 보자. 1960, 70년대 인혁당 당원으로 누명을 쓰고 대법원에서 사형선고가 내려진 '인혁당(인민혁명당) 사건' 피해자가 고문으로 고통받은 아버지를 떠올리며 대를 이은 시대의 상처를 목욕물로 닦아 치유하는 장면은 작품 의도를 명확하게 드러냈을 정도로 미장센으로 은유된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올해 초 공연한 <장녀들>(2023)은 초고령화 사회 치매와 중증 노인질환으로 부모를 부양(扶養)하며 살아가는 장녀들의 삶을 다루었다. 노인 돌봄 사회복지 제도와 가부장제도 사회문제를 1, 2부로 다루면서 섬세한 연출과 배우들의 앙상블이 조화(造化)를 이루고 있는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작품은 초고령화 사회 일본의 노인 돌봄 사회제도와 대를 잇는 장녀들의 현실적인 삶의 무게감을 무대로 다루었다. 일본의 대표적인 개호소설로 읽히고 있는 소설을 연극적인 시공간으로 감각적으로 배치해 노인 돌봄의 사회문제를 담론으로 던지고 있는 작품이다. 이번 작품 <어느 여름날의 오후>( 작, 볼프강 바우어, 선돌극장, 공동창작 각색 연출) 은 신입 단원 역량 강화 프로그램 일환으로 무대화된 워크숍 작품이면서도 충격적인 소재의 희곡과 날것의 연기로 정규공연 이상의 강렬함을 준 작품으로 김기덕 감독의 영화처럼 불편하면서도 그 불편함을 위한 연극이다.

◆ 불편함을 위한 연극 <어느 여름날의 오후>

한국 사회는 더 이상 마약, 프로포폴, 대마의 청정지대가 아닐 만큼 국민 6명 중 1명꼴로 마약류 경험이 있는 것으로 문제가 심각하다. <어느 여름날의 오후>는 섹스, 마약, 폭력, 불안과 광기, 분노와 묻지마 살인을 다루고 있는 사회 현상들로 특정 20대들의 이야기다. 작가 이야기를 들어보자. "오늘날 젊은이들과 예술가들이 마약과 섹스로 파멸의 결과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작품으로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관객 내면에 내재해 있는 비사회적인 충동을 일깨워주고 싶었다." 그래서일까. 작가의 이야기(희곡)가 퇴폐적인 광기의 현상들을 연극적으로 들어내는 것도 충격적이면서도 극 중 인물들이 무대로 살아가는 표현방식도 마치 김기덕 감독의 영화처럼 불편하면서도 강렬하고, 그 강렬함 사이의 불편함으로 관객은 작가의 이야기 방식에 지각(知覺)하게 된다. 섹스, 마약, 폭력 등 무대로 펼쳐지는 표현들이 섬세하고 적나라한 광기의 현상을 마주하게 된다. '연기를 재현 하는 것' 처럼 이 아닌 '삶과 인생의 극중인물로 현존하는 날것의 연기' 가 거칠면서도 과감하다.

무대로 돌아가 보자. 20대 중후반 이들이 살아가는 집 창문은 '어느 여름날 오후' 강렬한 인생의 햇빛이 방으로 스며들 수 없는 반지하 방이다. 방안 구조는 이렇다. 무대 오른쪽은 시나리오 작가의 공간이다. 넓은 책상에 컴퓨터와 어지럽혀 있는 종이와 양주, 와인, 맥주병들이 어지럽게 보인다. 방 한쪽에는 널찍한 침대용 매트리스가 보이고 그 옆으로는 작은 소파가 보인다. 방 주변은 폐품 창고처럼 어수선하다. 방 오른편 화장실이 보이고 반대편으로 대형거울과 출입문 공간이다. 청년들이 살아가는 방 한 칸의 원룸을 상상하면 될 것 같다. 소나기가 내리고 천둥이 요동치는 갠 하늘도 여름날 오후처럼 창문 밖만 화창할 뿐이다. 조명처리가 감각적이었는데, 방 구조의 습함과 대비시키는 창문과 화장실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빛은 극 중 인물들의 삶과 대비적으로 조명(김성태)의 미장센으로 배치하며 공간의 메시지를 들어내고 있다. 광란의 여름날 오후를 벗어날 수 없는 극 중 인물의 인생을 빛으로 투사 한다. 이들의 삶과 몸을 적시는 것은 습하고 절망만이 숨 쉬는 여름날 오후의 온기다. 절망의 태양만 작동되는 삶이다. 극 중 인물의 인생은 희망의 바람이 작동될 수 없는 습한 인생의 공기만 마시고 살아갈 뿐이다. 선풍기 한 대만 돌아가고 넓은 매트리스는 두 사람의 성적인 욕망만 채울 수 있다. 삶의 욕망을 느낄 수 없는 폐쇄적인 인생들이다.

동거하며 살아가는 재필(박현우 분)은 시나리오 작가이고 여자친구 지수(이상은 분)는 오디션을 볼 정도로 배우가 꿈인 인생이다. 여기까지 인물 캐릭터로는 평범해 보인다. 극 초반 동거하는 재필과 지수의 일상적인 대화로 채워진다. 담배를 피워대며 배우로 영화 오디션을 준비하는 이야기가 쏟아지고 '넷플릭스'에 가입하라는 말에 재필은 "돈 없어"라고 받아치면서도 시나리오 작가로 인생 역전을 할 수 있는 작품을 쓰고 싶은 재필이다. 휴대전화로 게임을 하고 거울 앞에서 서고, 앉고, 몸을 구부리며 가슴을 쓸어 올리고 내리며 육감적인 몸매를 드러내는 지수와 '씨팔' 거리며 툭툭 뱉어대는 무료(無聊)한 일상은 욕으로 채워진다. 남녀의 강렬한 애정 싸움, 담배, 술, 섹스, 반복되는 공원 걷기 등 더는 희망의 통로가 없는 삶들로 보인다. 그래도 재필은 지수를 향해 "상실의 시대나 끝까지 읽어봐"라고 권하고 지수는 "그거 너무 지루해"라고 잘라 말한다. 이들에게 지식은 더 이상 삶의 통로를 연결할 수 없는 인생에 죽은 지식이다. 이들 삶은 광란의 음악을 듣고 컴퓨터 게임을 즐기며 시나리오가 되는 자판을 두드리는 반복적인 일상이다. '삶이란 담배와 같은 습관'이라고 말하면서도 '게으름은 이 세상의 원동력이다'라는 자신의 삶과 동일화된 영화 제목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인생이다. 두 사람의 동거 분위기는 극 초반 싸우고 헤어지고를 반복하는 일탈적인 애정 수준 정도로만 그려지다가 섹스를 원하는 재필의 얼굴을 지수가 할퀴면서 분위기는 애정에서 대립으로 남자의 폭력성이 강렬해지고 무대는 뜨겁고 격렬하게 전환된다.

어느 여름날의 오후. 프로젝트 아일랜드 남동진 제공
어느 여름날의 오후. 프로젝트 아일랜드 남동진 제공

◆ 인생 막장의 끝판을 들어내는 무대 전경

지수와 재필은 폭력적으로 싸우면서 심리적인 화해는 노골적인 섹스로 채워진다. 이들에게 섹스는 삶의 위로다.. 연극은 재필이의 친구 상준( 한인덕 분)이 등장하면서 극 중 인물들의 막장 인생의 원인을 사회제도로 돌린다. 집값이 고공 행진을 하는 한국 사회 아파트 한 채 값은 벽을 넘어설 수 없는 절망의 사회이다. 비트코인과 영끌 주식투자, 인터넷 도박으로 한탕주의 로또의 희망만을 안겨주는 삶이다.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는 웹툰 같은 시대이고 '톨스토이'는 장난감 '토이'로 조롱 된다. 이들 삶의 지식은 현실을 비껴가는 성공 할 수 없는 특정 집단의 사회다. 이들의 희망은 하루하루 채워지는 시간으로 쾌락의 광기는 집단성으로 드러나는데 다음 장면부터 충격적이다.

재필과 지수가 강렬하게 애정 싸움을 한 뒤 매트리스가 깔린 방에 망사스타킹을 신은 써니가 등장하고 상준이가 뒤이어 들어온다. 상준( 한인덕 분)은 써니(엄윤지 분)를 향해 "상실의 시대, 야인시대, 소녀시대, 좆선시대 지금은 좆같은 시대야"라며 "대가리가 비어있는 새(허 새)"라고 대사를 날리고 써니는 "상준의 뺨을 거칠게 내려치며 과감한 포즈로 "덮쳐봐, 덮치고 싶지 않아?"라며 목을 조르고, 가슴을 꼬집고 비틀며 자극적인 애정을 드러낸다. 광란의 성적 욕망을 대범하게 무대로 그려내는 장면은 충격적이다. 마조히스트와 사디스트 같은 폭력적인 행위로 성적 쾌락을 즐긴다. 찢고, 때리고, 폭력적인 가학성의 행위들을 연극적으로 표현하고 과격한 남자 행동으로 써니의 코뼈가 피범벅 되어 함몰된다. 옷과 바닥은 붉은 피로 물들어 있다. 이 정도의 과감한 노출 장면에서 관객은 "어, 어, 연극인데 저 정도로 사실적으로 표현해도 돼"라고, 생각하게 될 정도로 과격하면서도 리얼하다, 119에 실려 간 써니는 성형수술 비용으로 천만 원을 요구하는데 상준은 "이년이 나한테 수술 비용으로 천만 원을 요구하잖아"라는 말에 씁쓸한 웃음이 터지고 가해의 책임은 이기적인 욕망으로만 버티는 인생이 무섭게 다가오면서 "비사회적인 충동을 일깨워주고 싶다"라는 작가 의도가 떠오른다. 연출도 작가보다 표현방식을 한발더 들어간다. 무대는 배우들의 과감한 날것들로 강렬한 감각적인 장면으로 채워지고 마지막 장면은 미래가 없는 일탈 막장의 끝판이다.

어느 여름날의 오후. 프로젝트 아일랜드 남동진 제공
어느 여름날의 오후. 프로젝트 아일랜드 남동진 제공

◆섹스, 마약, 대마초로 혼탁해지는 반지하 방의 '광란'

한 장면이다. 빌라 반지하 방은 상준이가 가져온 대마초를 흡입하는 장소가 되고 두 사람의 환각 상태는 4차원 세계에 빠진 것처럼 벽면은 우주의 지면이 된다. 그 사이 이들의 일탈 행동은 한 발짝 더 들어간다. 환각 상태에 빠진 재필과 상준은 동성애적인 노골적인 키스를 즐기고 지수를 성폭행하려는 장면이 그려진다. 재필은 상준의 행동을 보고 "병신 새끼"라고 낄낄대며 사랑하는 여자 친구와 상준의 행동을 환각상태로 바라볼 뿐이다. 리얼한 장면으로 관객들도 "어, 어, 뭐지 장면은…." 할 때쯤 시선은 무대로 응집되고 긴장할 때쯤 지수는 날카로운 칼로 상준의 몸을 난도질하고 숨통을 끊어버린다. 누군가는 핏물로 죽어야 햇볕 한 줌 없는 방을 빠져나갈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방을 나가려는 지수를 붙잡고 가지 말라고 집착을 보이는 재필한테 지수는 " 난 정당방위야" 하며 원피스로 갈아입고 집을 나가 버리는 것이 마지막 장면이다. 연극은 환각 상태로 자기 목을 조르고 대마를 피우는 재필 사이로 창문 밖은 여전히 여름날 오후의 천둥과 번개가 내려치는 것으로 연극은 끝난다. 프로젝트 아일랜드 <어느 여름날의 오후>는 과감한 연기, 19금 이상의 연극적인 행위와 표현들, 노골적인 폭력성, 청춘들의 사실적인 환각 파티들이 과감하게 그려져 불편하고 불쾌할 수도 있으면서도 이 작품은 관객이 불편하고 충격으로 받아들일수록 연출과 작가 의도가 선명해지는 연극이다.

희망의 탈출구가 방으로 스며들지 않는 이들 인생의 절망은 그 어떤 것으로도 위안이 될 수 없는 분노와 불안, 폭력과 마약, 우발적인 살인의 범죄로 이어지는 막장 인생들이다. 우리 사회는 어찌 보면, 이들한테 타락과 광기의 욕망만을 선물해 막장 인생을 방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젊은 배우들의 연기역량을 극대화하기 위해 선택한 서지혜 예술감독의 희곡 선택이 극 중 인물의 연기가 아닌 배우들 나이에 맞는 인생으로 피부로 와닿을 수 있도록 장면을 섬세하게 표현한 것이 좋다. 배우의 감각을 생산적으로 확장할 수 있도록 희곡을 선택하고 연기로 확장한 것은 이번 작품공연에 의미가 있다. 그러나 과감하고 날것의 연기가 작품 의도를 노골적으로 살려내고 있음에도 탈출할 수 없는 막장의 현상만을 다룬 것은 아쉽다. A, B팀으로 무대에선 재필 (김정범, 박현우) 지수(차세인, 이상은) 상준(임경훈, 한인덕), 써니 (엄윤지) 신인배우들은 이번 작품이 소중한 연기 경험이고 배우 인생에 할 수 없는 극 중 인물일 수 있는 만큼 배우로 귀한 체험이다. <어느 여름날 오후>를 통해 느꼈을 배우의 감각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영화 색계에 비해서는 점잖고, 김기덕 감독 영화와 가깝다. 연기 코치는 배우 남동진이 했고 극단 프로젝트 아일랜드 작품과 <타자기 치는 남자>, <패션의 신> 등으로 무대에서 강한 인상을 심어주며 드라마에서도 좋은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 중견 배우 최무인이 진행을 맡았다. 올해 여름날 오후 여행은 취소해야 할 것 같다.

어느 여름날의 오후. 프로젝트 아일랜드 남동진 제공
어느 여름날의 오후. 프로젝트 아일랜드 남동진 제공

김건표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