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 공설 도축장 운영 중단 검토…도매시장·농가 "물량 소화 안 돼" 반발

"12만 어미돼지 다 죽이는 셈" vs 市 "경북·경남 시설로 대체 가능"
양돈업계 "생산 기반 붕괴"…90kg∼200kg 모돈 소화 불가
대구시 "조만간 입장 발표"…고령군과 설비 확장 협의중, 김해 도축장도 이용 가능해

10일 대구 북구 검단동 축산물 도매시장 내 도축장에서 관계자들이 도축된 소를 납품하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10일 대구 북구 검단동 축산물 도매시장 내 도축장에서 관계자들이 도축된 소를 납품하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대구시가 이르면 내년 3월 북구 검단동 도축장 운영 중단을 검토하고 나서자 시설을 위탁 운영하는 도매시장법인과 경북 양돈농가를 중심으로 반발이 터져 나오고 있다.

쟁점은 대구 도축장을 대체할 시설이 있는지 여부다. 축산물 이동 권역은 크게 경기강원·충청·전라·경상·제주 등 5개 권역, 작게는 경기·강원·충북·충남·전북·전남·경북·경남·제주 등 9개 권역으로 묶여 있고 방역 상황에 따라 이동제한 조치가 내려진다.

대구시는 도축장을 폐장할 경우 농가들이 경북이나 경남에 있는 도축장을 이용하면 된다는 입장이지만 양돈 업계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반박한다. 이들 시설로는 대구 도축장이 처리해 오던 덩치 큰 어미돼지(모돈) 물량을 소화할 수 없어서다.

◆ 양돈농가 "대구 도축장 대안 없다"

대구 도축장이 처리하는 축산물 95%는 돼지다. 대구 축산물 도매시장·도축장을 위탁 운영 중인 도매시장법인 '신흥산업'에 따르면 대구 도축장은 지난해 돼지 17만7천마리를 생산했다. 이 가운데 6만2천122마리는 무게 70kg~90kg인 규격돈, 나머지(11만5천611마리)는 이보다 가볍거나 무거운 비규격돈이다.

비규격돈에 속하는 모돈은 5만5천118마리로 비규격돈의 47.6%, 전체 돼지의 31.1%를 차지했다. 모돈의 경우 90kg을 넘어가고 더 클 경우에는 200kg까지 나가 별도의 설비가 필요한데, 대구로 고기를 공급하는 농가가 이용할 만한 경북 중남부 도축장 4곳(경산시, 고령군, 군위군, 영천시) 가운데 현재 모돈 도축이 가능한 곳은 고령군뿐이다. 대부분 도축장이 구이와 찌개 등 용도로 유통하는 규격돈 중심으로 설계돼 있기 때문이다.

육가공 시설이 충분해 규격돈 중심으로 작업하는 다른 도축장과 달리 대구 도축장은 규격돈 출하가 적은 대신 햄, 소시지와 같은 가공육 원재료로 쓰이는 비규격돈 출하에 특화돼 있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신흥산업 관계자는 "대구 도축장이 없어질 경우 비규격돈 도축, 유통이 어려워져 양돈농가 생산 기반이 무너진다. 규격돈 공급만 늘어 시장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면서 "무엇보다 양돈농가와 종사자에 피해를 주면서까지 도축장을 급하게 폐쇄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 지역 모돈 14만마리… 대량 매립 우려

대구시는 고령군과 안동시 도축장을 대안으로 내놓았다. 고령군에서 모돈 작업이 가능하고 안동시에도 조만간 새 도축장이 문을 연다는 것이다.

안동봉화축협은 서후면에 축산물종합유통센터를 짓고 있다. 건립 마무리 단계로 오는 7월부터 1달 동안 시범 운영한 뒤 정식 운영에 돌입한다. 연면적 1만9천732㎡ 규모로 이곳에서 하루 소 200마리, 돼지 2천마리를 도축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모돈이다. 경북도에 따르면 안동 축산물종합유통센터는 현재 설계상 모돈을 도축할 수 없다. 또 고령군 도축장은 모돈 도축이 가능하지만 다른 도축장과 유사하게 규격돈 위주로 작업하고, 모돈 도축두수는 1일 최대 40마리에 불과하다. 연간 처리 물량은 대구 16.1% 수준인 8천890마리에 그친다.

경북도는 고령군, 안동시를 포함해 지역 내 도축장에 모돈 도축용 설비 확충을 요청하고 있지만 결정된 건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대체 시설을 마련하더라도 모돈을 도축하려면 계류, 냉장을 위한 부대시설과 인력 확충도 필요해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양돈 업계는 대안 없이 대구 도축장을 폐쇄할 경우 지역 농가가 보유한 모돈을 대량 매립하는 사태까지 우려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도축과 육가공을 거쳐 고기를 출하하는 농가 입장에서는 도축장이 출하처인 만큼 도축장이 사라지면 생산 자체를 포기할 수 있다는 의미다.

대구, 경북에서 사육 중인 모돈 수는 전체 돼지 약 140만마리 중 10%인 14만마리 정도로 추산된다. 이 중 대구 도축장에 도축·경매를 수탁하는 농가가 보유한 모돈은 12만마리 정도다.

대구 북구 검단동 축산물 도매시장. 대구시는 2001년부터 현 위치에서 운영해 온 축산물 도매시장과 도축장 운영 방향을 결정 짓는 연구용역을 다음 달까지 진행할 예정이다. 정은빈 기자
대구 북구 검단동 축산물 도매시장. 대구시는 2001년부터 현 위치에서 운영해 온 축산물 도매시장과 도축장 운영 방향을 결정 짓는 연구용역을 다음 달까지 진행할 예정이다. 정은빈 기자

◆ "대안 마련 때까지 폐장 유예" 목소리

대구 도축장 이용 농가 대부분을 관할하는 경북도도 대책 마련이 시급해졌다. 작년 경북 양돈농가의 모돈 도축두수 약 5만마리 중 대구 도축장을 거친 물량은 4만1천마리(82%)다.

경북도는 최근 "대구 도축장 운영 중단 시 도축 물량을 소화할 시설이 부족한 실정이다. 비규격돈 도축·가공 시설 구축을 포함해 대책을 수립할 예정이니 국비 지원을 검토해 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농림축산식품부로 보냈다.

경북도와 양돈 업계는 대체 시설을 마련할 때까지 대구 도축장 폐장 시기를 늦춰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대한한돈협회도 반발에 가세하면서 논란이 커질 조짐도 보인다. 한돈협회는 양돈농가 의견을 수렴해 대응 방향을 정하고 행정 당국과 의견 조율에 나설 계획이다.

한돈협회는 최근 대구시와 경북도로 보낸 공문에서 "대구 도축장을 폐쇄할 경우 한돈 농가가 모돈, 비규격돈을 거래하는 데 심각한 혼란을 겪을 것으로 우려된다. 축산물·부산물 상가의 정상적인 운영도 불가능해져 시장 상인들도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구 도축장 운영을 연장해 줄 것을 요청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 시 "상황 인지…폐쇄 여부·시기 검토"

대구시는 고령군에서 모돈을 하루 100마리 이상 도축하도록 설비 확장을 협의 중이고, 대체 시설을 마련하기 전까지 김해시에 있는 도축장도 이용할 수 있도록 이동 권역 조정, 비용 지원 등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해시 부경축산물공판장에서는 모돈을 하루 300마리까지 도축할 수 있다. 다만 한돈협회는 부산, 울산, 경남 도축 물량을 고려하면 김해시 도축장에서도 대구, 경북 물량을 수용하기는 힘들 거라고 본다.

조숙현 대구시 농산유통과장은 "도축장 폐장을 늦춰 달라는 의견을 인지하고 있다. 폐쇄 여부와 시기는 아직 검토 중인 사항이고 조만간 입장 발표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11일 '축산물도매시장 및 도축장 운영방안 연구용역' 중간보고회 자리에서 기본적인 방향을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신흥산업은 그동안 대구시가 축산물도매시장 시설 현대화를 추진하다가 갑자기 운영을 중단하게 되면 '혈세 낭비' 정도도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앞서 2020년 대구시는 '축산물도매시장 시설 현대화 및 유통 활성화' 계획을 세웠다. 현재 대구정책연구원과 경북연구원으로 갈라진 대구경북연구원 연구용역 결과에 따라서다.

대구경북연구원은 연구용역 보고서에서 "대구 축산물도매시장은 전국에서 유일한 지자체 소유 축산물도매시장으로서 안정적인 축산물 공급 기능을 수행한다. 고품질 축산물을 안전하게 공급하기 위해서는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북구 검단동에 조성하는 금호워터폴리스와 연계해 축산물도매시장을 먹거리타운으로 조성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이에 대해 대구시는 계획 단계에서 그친 사업이라고 설명했다. 조숙현 과장은 "용역만 진행하고 실제로 사업을 진행하지는 못했다. 당시에도 이 시설을 언제까지 운영할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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