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 행복이 이렇게 사소해도 되는가

강진이 지음/수오서재 펴냄

월트 디즈니 영화 인사이드아웃 포토. 네이버 영화
월트 디즈니 영화 인사이드아웃 포토. 네이버 영화
강진이 지음/수오서재 펴냄
강진이 지음/수오서재 펴냄

모든 사람의 머릿속에 있는 감정 컨트롤 본부. 여기에는 기쁨이, 슬픔이, 버럭이, 까칠이, 소심이 다섯 감정이 있다. 미국 미네소타에서 살던 라일리네 가족은 샌프란시스코로 이사 가게 된다. 다섯 가지 감정은 라일리가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도록 감정 신호를 보내지만 호락호락하진 않다. 라일리는 방황하는데 게다가 우연한 실수로 기쁨이와 슬픔이가 감정 컨트롤 본부를 이탈해 수많은 기억이 저장된 머릿속 세계로 이탈하는데….

8년 전 신박한 아이디어로 큰 인기를 끌었던 월트디즈니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의 줄거리다.

조금 더 스토리를 따라가 보자면 감정 컨트롤 본부를 이탈해 기억 저장소로 간 기쁨이와 슬픔이가 본 건 라일리의 여러 감정이 담겨 생성된 '기억 구슬'이다. 기억 구슬은 매일 밤 장기 기억 보관소로 옮겨지고, 라일리의 인생에서 중요한 순간이 담긴 기억 구슬은 핵심 기억이 돼 라일리의 인격을 형성하는 하나의 섬이 된다.

영화적 상상이지만, 수만 개의 기억 구슬 중 라일리가 성장하면서 절대 잊지 않는 핵심 기억이 되는 구슬이 있다는 게 꽤 신선한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기자 역시 자라면서 숱한 경험과 시간을 보냈지만 모두 기억할 리는 없고 그중에 특별히 마음속에 남아있는 핵심 기억들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핵심 기억은 기자를 수놓은 삶의 작은 장면들인 셈이었다.

인사이드아웃이 '나를 수놓은 삶의 작은 장면'을 영화적 상상을 듬뿍 가미해 재밌게 표현했다면 책 '행복이 이렇게 사소해도 되는가'는 상상 대신 작가의 삶 중 진짜 귀하고 행복한 작은 장면들을 그림과 함께 담았다.

강진이 작가는 떠올리는 것만으로 마음이 환해지는 기억을 붙잡아 수십 년간 빼곡히 일기를 써왔다. 자신을 수놓은 삶의 작은 장면들을 놓치지 않고 붙잡아 기록한 셈이다. 삶이 전부 행복으로 채워져 있는 건 아니었지만 기억 속 행복한 시간을 그려나갈수록 강 작가는 행복이 얼마나 자주 곁에 머물렀는지 알 수 있었다. 행복은 실은 우리 삶을 무수히 수놓은 사소한 순간이었다.

책은 그렇게 작가의 그림일기 형식으로 모두 구성돼 있는데, 따라 읽다 보면 그 장면과 비슷한 내 삶의 핵심 기억들이 마구 겹친다. 그렇게 행복이 얼마나 자주 곁에 왔는지 느끼며 사소한 순간들이 큰 감정을 만들어 내며 삶을 살아갈 힘을 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된다.

이 책의 소개는 두 문단으로 충분할 듯하다.

아래는 인상 깊었던 강 작가의 기억 속 행복한 시간과, 그와 비슷했던 감정이 들었던 기자의 마음에 녹아있는 행복한 시간에 대한 회고다. 이렇게 내 감정을 써보는 것도 이 책을 읽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도 있겠다.

p153. 옆에 와서 꼭 살을 대고 엎드려 앉는 달님이(작가의 반려견)를 보며 위로받고 위로하는 법을 배운다. 각박한 세상, 외로운 사람들에게 서로를 보듬으라며, 안아주라며, 그렇게 사랑하는 법을 알려주는 고마운 존재, 우리 달님이 – 사랑하는 법 中

=말썽꾸러기 견생 5개월 차 우리 집 반려견 대박이가 대뜸 소파 위에 앉은 나 옆에 나란히 앉는다. 이 녀석 이렇게 얌전하게 앉아 있을 리가 없는데. 녀석은 조금 피곤했는지 내 팔에 슬며시 머리를 맞대 금세 곯아떨어진다. 네 침대에서 편하게 자면 되지 굳이 내 옆에 와서 그 자그마한 머리를 꼭 팔에 맞댄다고? 귀여워서 웃음이 피식 나다 금세 뭉클해진다. 나를 이만큼이나 의지하고 있구나. 그런 너에게 나의 팔, 나의 체취가 네 잠을 편안하게 만들었으면. 그날 우린 그저 맞닿아있었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더할 나위 없는 힘이 돼주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능력 밖의 일이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집에 모셔져 있는 십자고상 앞에 무릎을 꿇고 도움을 청한다.…저의 이런 염려와 기도로 아이들이 세상에 필요한 소금 같은 사람으로 잘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 간절한 기도 中

=우리 엄마도 매일 새벽마다 안방에 놓인 작은 성모상 앞에서 두 눈 질끈 감고, 두 손 꼭 모으고 기도한다. 무얼 그리 기도하나. 종교에 큰 뜻이 없던 나는 그런 엄마가 이해가 안 될 때도 많았다. 그렇게까지 기도 하는 이유가 뭔지 물었다. 돌아온 대답. 스무 살, 엄마 품을 떠나 타지에서 생활하던 아들, 딸을 지켜줄 유일한 방법이란다. 곁에서 직접 못 돌봐줘 이렇게라도 종교의 힘을 빌린다고. 그날 이후로 엄마의 모든 행위를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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