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봄이면 백초로 청을 담는 지인이 있다. 백 가지 식물 중 독초가 있을지 아느냐는 내 우려에 새순은 독성이 강하지 않을뿐더러 종류가 많지 않고, 여러 성분이 섞이면 독을 희석하니 괜찮다고 한다. 백초라 하지만 사실 백 가지에는 못 미치고 종류가 많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용량이 약과 독을 결정한다. 비상(砒霜)은 한약재이면서 동시에 사약의 재료이기도 한데 사용량에 따라 생과 사가 달라진다니 그 경계가 섬뜩하다. 우암 송시열 선생이 건강을 위해 오랫동안 동뇨(어린아이 오줌)를 마셨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정량이 있을 터인데 너무 오래 먹어 오히려 병이 났다니 과유불급이다.
너무 과해도 문제지만 너무 미치지 못하는 것도 문제이기는 마찬가지다. 우암 선생이 미수 선생에게 약방문을 부탁했다. 서인과 남인의 수장으로 평생의 정적이었지만, 그 실력은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암 선생의 아들은 약방문에 비상이 들어있는 것을 보고 의심해 처방의 반만 넣었고 결국, 선생의 병은 완쾌되지 못하였다.
오랜 앙숙이고 신념이 다르니 젊은 아들은 믿기 어려웠으리라. 믿음은 신뢰가 쌓여야만 가능한 일이다. 고수는 서로 알아보는 법이라 우암은 미수를 믿었겠지만, 아들은 아버지를 걱정하는 마음이 앞서 의심을 풀지 못하였을 터이다. 평범한 약이라도 미심쩍을 판에 하물며 독이라니 놀랐을 아들의 마음이 이해된다. 하수는 역시 하수끼리 통하는 법인가보다.
말에도 독이 있다. 가시 돋친 말을 들으면 마음이 상해 덩달아 독한 말을 되돌려 주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뒷맛은 씁쓸해지고 말 것이다. 확신에 찬 거친 말과 눈빛은 너무 견고해서 적을 만들기 십상이다. 말이 날카로워질 때는 잠시 입을 다물고, 눈빛이 사나워질 때면 잠시 눈을 돌려 나무를 바라볼 일이다. 독설도 적당하게 희석해 받아들이면 약이 되지 않겠는가.
인생의 멘토로 삼고 있는 어른이 계신다. 그분의 언어는 늘 부드럽고 눈빛은 온화하다. 젊은 시절에도 그랬는지 알 수는 없으나 참 닮고 싶은 노년의 품성이다. 한그루의 고고한 노송 같은 모습이라 할까. 언젠가 관계에 대해 고민하는 내게 주신 처방으로 가장 마음에 새긴 선생의 말씀이 있다.
"다른 사람 마음을 어떻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니 나를 가꾸는 스승으로 삼으시게."
모든 독초는 주로 그늘에서 자란다고 한다.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으나 독이 되는 말이나 사상이나 종교는 음지에서 자라나는 것이 자명하다. 비밀이라고 속삭이는 말 역시 음지에서 연기처럼 번져나간다. 음지의 독도 양지로 끌어내 준다면 누군가에게 약이 될 수도 있을 터이다.
지인이 삼 년 묵었다는 백초청을 희석해 건넨다. 달콤한 맛이 입안에 가득하다. 독성도, 풋향기도 서로 더불어 잘 숙성된 덕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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