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문을 닫아 역사 속으로 사라진 초등학교 학부모들과 교사들의 각별한 우정이 15일 스승의 날을 맞아 화제를 모으고 있다. 당시 교사들의 열정을 기억하며 오랜 세월 만남을 이어가고 있는 학부모회는 "그때 그 시절, 선생님들이 너무 고생 많았다"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대구 달성군 구지면 '구남초등학교'는 지난 1992년 학생 수 감소로 문을 닫았다. 인근 구지초등학교 흡수 통합과 함께 학교는 사라졌지만 구남초 학부모회는 계속됐다. 이들은 폐교 이후로도 구남초 스승의 날 행사를 이어갔다. 구남초를 거쳐간 교사들을 초청해 식사를 대접하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세월이 흘러 교사들이 연로해지면서 스승의날 행사는 중단됐지만, 남아있는 26명의 학부모들은 꾸준히 만나고 있다. 지난 3월 3일 열린 학부모회에는 전체 인원의 절반이 넘는 17명이 모였다. 다가오는 7월에는 연락이 닿는 전임 교사들을 다시 초청해 만남의 장을 마련할 예정이다. 스승의 날을 이틀 앞둔 지난 13일에는 40년 만에 일부 교사와 제자들이 회포를 풀기도 했다.
이들이 모인 자리에는 어김없이 옛날 학교에 얽힌 추억으로 수다 꽃이 핀다.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도 학부모들과 교사들은 두런두런 옛이야기를 꺼냈다. 40년 전 구남초 학부모였던 김창호(70) 씨는 1987년 만난 이동철 교장을 가장 먼저 떠올렸다.
이 교장은 '공부할 필요 없다'며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던 '은희(가명)네'를 매일 찾아가 결국 부모의 마음을 돌렸다. 이 교장이 온갖 수모에도 아침마다 왕복 한 시간 거리를 걸어 은희네를 찾은 덕분에 은희는 초등학교 6학년 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졸업할 수 있었다.
김 씨는 "우리 딸도 아침잠이 많아 매번 지각해서 걱정이 많았는데 화를 내는 대신 애정으로 아이들을 지도했다"며 "이제 딸은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마치고 돌아와 대학 강사로 일하며 어엿하고 성실한 사회 일원이 됐다. 중요한 시기에 교육에 힘 써준 선생님께 참 감사하다"고 말했다.
1983년 초임 교사였던 김명배(64) 교사는 달리기를 좋아했던 5학년 병선이와의 추억을 회상했다. 그해 병선이는 800m 육상 대회를 준비했는데, 학교 운동장 직선거리는 100m가 채 되지 않았다. 제대로 된 기록조차 잴 수 없는 상황에서 김 교사는 병선이의 손을 잡고 학교 뒷산으로 향했다. 선생님의 특급처방 덕분이었을까. 병선이는 달성군 대회에서 1위를 차지해 도 대회까지 출전하는 쾌거를 거뒀다.
교사들이 교육자로서 책임을 다하는 동안,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스승'을 존경하는 전통이 자연스레 생겨났다. 동네에서 우연히 만나더라도 깍듯하게 예의를 갖췄다. 1984년 9월 폭우로 달성군 다사면 낙동강 제방이 무너져 교사들이 지내던 사택이 물에 잠기는 일이 발생하자 당시 농사를 짓던 학부모들은 하던 일도 멈추고 자발적으로 모여 사택 복구에 나서기도 했다.
김명배 교사는 "동네에 배추 농사를 하는 집이 많아 학교 일과가 끝나면 가서 도와드렸고 그러다보면 저녁을 같이 먹는 일도 다반사였다"며 "혼자 사는 총각이라고 마을 주민들이 이것저것 많이 챙겨주셨다"고 회상했다.
김상태 구남초 학부모 회장은 "요즘은 교사와 학부모 간의 애틋한 정을 찾아보기 어려워진 것 같아 아쉽다"면서 "시대를 막론하고 학부모는 매일 같이 자식 공부시키는 선생님한테 잘하고, 선생님들 역시 학부모에게 감사하고 베푸는 마음이 서로 오가면 자연스레 잘 지낼 수 있다. 예전처럼 교사와 학부모가 화합하는 모습으로 나아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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