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함재봉 칼럼] 생계형 정치인과 부패

함재봉 '한국 사람 만들기' 저자

함재봉
함재봉 '한국 사람 만들기'의 저자

요즘 젊은 야당 정치인의 코인 거래 사건으로 시끄럽다. 한국 정치의 고질적인 부패 문제가 다시 도졌다. 액수도 액수지만 국회 대정부 질의 도중에도 코인 거래를 했다고 한다. 본분인 국정보다 돈을 버는 것이 더 중요했다.

돈을 버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먹고사는 문제, 가족의 생계를 해결하지 못하고는 정치든 뭐든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개인이 돈을 버는 것을 적극적으로 권장한다. 문제는 정치를 통해서 생계를 해결하고자 하는 경우다.

경제는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다. 정치는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다. 따라서 경제와 정치는 동시에 할 수 없다. 경제와 정치가 철저히 분리되어야 하는 이유다.

'민주주의'를 발명한 고대 그리스인들은 생계 문제를 해결한 사람만이 정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코노미(economy), 즉 '경제'의 어원은 그리스 말 '이코스'(oikos)다. 이코스는 '집안' '가계'(家計)를 뜻한다. 이코노미는 '집안에서 하는 일'이다. 전근대사회, 농업사회에서는 집안 식구들이 농사를 짓고, 옷을 짓고, 집을 지으면서 생계를 이어갔다. 모든 경제행위는 집안에서 이루어졌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열심히 일하면서 경제를 잘 운영하여 '잉여'를 창출한다. '잉여'가 생기면 그만큼 일을 안 해도 먹고살 수 있게 된다. 일하지 않아도 먹고살 수 있게 되면 '여가'(leisure·레저)가 생긴다. 일 안 해도 생계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만큼 '잉여'와 '여가'가 가능한 사람, 개인의 이익을 더 이상 추구하지 않아도 먹고살 수 있게 된 사람은 이제 공동체의 이익을 추구하는 '정치'를 할 수 있다.

'폴리틱스'(politics)의 어원은 '폴리스'(polis)다. 폴리스는 '도시국가'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이 있는 '아크로폴리스'는 '높은 곳에 있는 도시국가'를 뜻한다. '이코노믹스'가 '이코스'에서 하는 것이라면 '폴리틱스'는 '폴리스'에서 하는 것이다. 정치는 경제 문제를 해결한 사람들이 더 이상 사익을 추구할 필요 없이 공동체의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다.

문제는 생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공동체의 이익을 추구하는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정치를 통해서 경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공공의 이익을 추구해야 하는 정치의 장에서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경제행위를 한다. 이것이 부패다.

영어로 부패를 뜻하는 'corruption'의 라틴어 어원은 'corrumpere'다. Corrumpere는 '함께'를 뜻하는 'com'과 '산산조각 내다'를 뜻하는 'rumpere'의 합성어다. 부패란 정치의 영역과 경제의 영역을 혼돈해서 파괴시키는 행위다. 생계형 정치인은 태생적으로 부패할 수밖에 없다. 정치가 생계형이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정치인들의 임기 제한이 있는 이유도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미국에서는 캘리포니아주를 포함한 28개 주의 주지사가 연임만 할 수 있다. 16개 주의회는 주의원들의 임기도 제한하고 있다. 4년 임기인 대통령도 연임만 가능하다. 5년이 임기인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한 번밖에 못 한다. 정치를 생계를 해결하는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 즉 부패를 방지하기 위한 장치다.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는 정치를 하다 보면 경제활동을 못 하기 때문에 경제적 잉여와 여가가 사라진다. 임기를 제한하는 것은 정치를 그만두고 다시 생계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전념하라는 뜻이다.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세금을 낸 사람들에게만 투표권을 주었다. 세금을 낼 수 있을 정도의 재산이 있는 사람들만이 사적인 이익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공적인 이익을 추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상원은 백만장자들이 즐비하다. 돈 걱정 없이 정치를 해야 부정부패의 유혹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케네디, 부시 같은 정치 명문가가 생기는 것은 대대손손 생계를 걱정하지 않고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재산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들은 정치인들이 '청렴결백'하길 바란다. 그러나 아무리 청렴하려고 해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경제력이 없으면 부패하기 마련이다. 생계형 정치인이 사라져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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