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할머니가 평생 처음으로 은행에서 자신의 이름을 썼다고 기뻐하시길래 할머니를 안고 펑펑 울었습니다."
경북 칠곡군 '성인문해교실' 장혜원 교사는 '까막눈'이었던 할머니들이 스스로 글을 읽고 쓰며 새롭게 세상을 바라보는 순간을 잊지 못한다.
스승의 날(15일)을 앞둔 14일, 할머니들이 글을 깨치는 데 도움을 준 칠곡 성인문해교실 교사들에게 직접 만든 카네이션을 달아주며 '스승의 은혜'에 감사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성인문해교실 할머니들의 평균 연령 85세. 대부분 일제 강점기와 가난으로 한글을 깨치지 못하고 한평생을 살다가 늦은 나이에 한글에 눈을 뜨게 한 교사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한 것이다.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할머니들을 가르치는 건 녹록지 않았다. 한 교사는 "애써 가르쳤는데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통에 한 글자를 하루에 100번씩 쓰라고도 했다. 하지만 다음날이면 모르겠다고 하신다"며 "늦은 나이에 배움에 나선 분들이어서 이해했고, 그러니 정도 들고 어느새 딸이 됐다 며느리가 됐다한다"고 했다.
할머니들은 밭일을 하다 급한 마음에 연필 대신 호미를 들고 수업에 참여하기도 하고, 쑥떡이며 고구마 등을 쪄온 날엔 수다를 떨다 수업이 끝나기도 한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숙면을 방해할까 봐 휴대전화기 조명으로 글을 익히고 전단이나 신문 등의 여백에 글을 쓰며 배움의 즐거움에 빠진 할머니들을 볼 때면 교사들은 더욱 열심히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조임선(86·왜관8리 달오학당) 할머니는 "기억력이 나쁘고 변덕이 심한 할머니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려면 오장육부가 다 녹아내려야 한다"며 "멀리 있는 자식보다 꼬박꼬박 찾아오는 선생님이 더 좋다"고 말했다.
성인문해교육 조준달(52) 교사는 "이곳 교사들은 할머니를 가르치며 행복해 많은 것을 포기하고 살고 있다"며 "할머니들의 마지막 항해를 밝게 비추는 등대가 된다는 사명감으로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각오를 밝혔다.
칠곡군은 2006년 2개 마을에서 시작해 현재는 23개 마을에서 할머니 220명을 대상으로 성인문해교육 '찾아가는 늘배움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교사는 23명으로 이들은 대부분 칠곡군이 운영하는 평생학습대학에서 '외국어로서의 한국어학'과 '성인문해 양성과정'을 전공한 40~50대 여성들이다.
3월부터 12월까지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오후에 수업이 있어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짧게는 3년, 길게는 15년 동안 열정적으로 할머니들을 가르치며 배움의 한을 풀어 주고 있다.
여느 학교처럼 교사들은 숙제를 내고, 매년 10월이면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학예회를 열어 할머니들을 무대의 주인공으로 만든다.
윤석열 대통령의 연하장 글씨체로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칠곡할매글꼴', 잔잔한 감동을 일깨운 '시 쓰는 할머니들'은 이런 교사들의 노력과 할머니들의 열정이 더해져 만들어졌다.
여든이 넘은 할머니들은 딸이며 손녀 같은 교사들에게 진정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매일매일 사제지간의 정을 이어가고 있다.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정진호의 매일내일(每日來日)] 3·1절에 돌아보는 극우 기독교 출현 연대기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김세환 "아들 잘 부탁"…선관위, 면접위원까지 교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