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요일 아침] 2·28과 5·18, 민주주의의 횃불과 십자가

김태일 전 장안대 총장

김태일 전 장안대 총장
김태일 전 장안대 총장

올해도 각계각층의 시민들이 5·18 기념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대구에서 광주로 간다. 해마다 가는 길이지만 여느 해와는 좀 다른 느낌이다. 5·18 해석을 둘러싼 한바탕 소동이 정리된 후라 비 온 뒤의 무지개처럼 5월 하늘이 더 아름다워 보인다.

대구와 광주, 두 도시가 민주주의라는 역사적 계기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은 정말 아름답다. 대구는 1960년 2·28민주운동으로, 광주는 1980년 5·18민주항쟁으로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를 함께 썼다. 대구 2·28은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횃불'이고, 광주 5·18은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십자가'다. 횃불은 '예언자적 선도성'을 말하고, 십자가는 '처절한 희생과 부활'을 뜻한다.

1960년 식민 지배, 분단, 전쟁을 거치면서 누구도 엄두 낼 수 없었던 '체념적 순종' 상황에서 대구의 고등학생들이 들고일어난 것이 2·28이었다. 그들의 용기는 결연했다. 그것은 4월 혁명의 출발이었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저항 시위였다. 그것은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흐름을 가장 앞서 열었다는 점에서 예언자적 선도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2·28을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횃불이라 부른다.

1980년 봄, 민주화의 열망을 짓밟은 신군부의 재집권에 저항하여 목숨으로 민주주의를 지키려고 한 것이 5·18이었다. 군부의 폭력에 죽음으로 맞선 처절한 저항은, 피가 떨어진 자리마다 민주주의의 싹이 자라 거대한 숲을 이루었다. 장갑차 캐터필러 소리가 다가오는 도청의 새벽을 지키던 소년은 하늘의 별이 되어 민주주의의 여정을 안내하고 있다. 5·18을 처절한 희생과 부활을 상징하는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십자가라고 하는 까닭이다.

두 도시의 시인이 전하는 역사의 현장은 아직도 우리의 애간장을 저민다. 광주 5·18 김준태는 〈광주여 무등산이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로 우리를 전율하게 만들고, 대구 2·28 김윤식은 〈아직도 체념할 수 없는 까닭〉으로 우리를 절규하게 한다.

이제 우리는 민주주의의 횃불과 십자가를 상징하는 두 도시가 '달빛동맹'이라는 이름에 값하여 이 나라 민주주의의 미래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우리나라 민주주의는 억압의 이완, 자유화, 민주화 단계를 거쳐 '민주주의의 공고화' 단계로 이행하고 있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라는 말이 그것이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과제가 있지만 두 도시가 손잡고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은 '지역 분권과 국민 통합'이다.

첫째, 지역 분권은 대구와 광주가 연대를 튼튼히 해야 실낱 같은 희망이라도 만들 수 있다. 나라 전체가 밑바닥에서 꼭대기까지 하나의 소용돌이를 이루고 있는 우리나라의 중앙집권체제는 더욱 심해지고 있다. 권력은 여전히 꼭대기에 집중해 있고 권력이 있는 곳에 자원이 집적되고 있다. 역대 정부가 권력과 자원을 나누어 준다고 했으나 해갈은커녕 감질만 난다. 이제는 중앙의 시혜가 아니라 지역이 나서 '쟁취'해야 한다. 그리고 그 선두에 대구와 광주가 서야 한다.

둘째, 국민 통합도 마찬가지다. 영호남 지역 통합이 국민 통합의 고갱이다. 우리 사회의 주요 갈등이 종국에는 지역갈등으로 귀결되고 지역갈등이 모든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지역갈등은 두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나라 전체의 문제다. 대구와 광주가 지역 통합을 통한 국민 통합에 핵심 역할을 해야 하는 이유이다. 계층, 세대, 성별 모순과 견주자면 지역 모순은 주요 모순으로 여러 모순을 증폭시킨다. 따라서 그 문제 해결에 대구와 광주가 앞장서는 일은 역사적 필연이라고 하겠다.

한 가지 환기하고 싶은 것은 이 문제 해결에 두 도시의 '시민'이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부연할 필요도 없다. 한 걸음 나가는 듯하다가 두 걸음 퇴행하게 만드는 것이 그간 정치인들이 해 온 일이기 때문이다. 지역 분권과 국민 통합은 지리산 자락을 사이에 둔 두 도시의 시민들이 담대하게 그리고 꾸준하게 해야 이룰 수 있다. 5·18 기념행사에 가는 시민들께 들러볼 곳을 하나 추천한다. 광주에는 '대구시민의 숲'이 있다.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여명을 밝혔던 '횃불' 2·28의 시민이 죽음과 부활로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십자가' 5·18의 시민과 함께 여기에 지역 분권과 국민 통합의 씨앗 하나 심고 돌아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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