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N번방'사건은 성 착취물을 제작하고 유포한 디지털 성범죄의 끝판이었다. 조주빈의 대담한 행동에 한국사회는 충격에 휩싸여야 했다. '박사방' 운영자는 징역 42년형을 선거 받고 대법원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했다. 침대 수납장에 카메라를 숨겨 놓고 아내의 모습을 몰카로 찍은 남편은 아내 추궁에 "촬영 테스트였다"고 둘러댄 사연이 온라인 뉴스로 전파를 탄적이 있다. 불법영상은 '소라넷'과 같은 사이트를 통해 공유된다. 1999년부터 불법 공유하는 통로로 이용되면서 2016년 서버가 폐쇄됐다. 당시 소라넷 운영자는 개인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소라넷을 운영해 불법 음란물 제작 및 공유배포를 방조한 혐의로 처벌받았다. 스마트폰, 첨단 몰카 장비로 촬영되고 있는 낯 뜨거운 디지털 성범죄는 여전히 실시간으로 공유(共有)되고 있다. K아트플랫닛이 기획하고 있는 연극<4분12초>(서울연극제, 대학로극장 쿼드, 번역 · 드라마터그 마정화, 극단 적)는 N번방처럼 노골적인 디지털 성범죄 현상을 다루지 않으면서도 반사회적인 가해의 책임을 쫓아간다.
◆ 4분12초 성범죄 악마의 비밀
로드 FC 격투기 구조처럼 무대는 정사각형 구조로 배우들의 등 퇴장이 개방적이다. 상단 테두리를 네온으로 처리해 지붕 구조를 만들고 하단 무대와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구조에서 살아가는 극 중 인물들은 네온 빛 처럼 디지털 사회를 미니멀하게 구조화하고 있다. 무대는 데이빗과 다이의 집, 닉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장소로 극 중 인물의 심리와 대사(언어)로만 진행된다. 거추장스러운 장면의 구조물도 상황을 유추할 수 있는 소품도 배치하지 않는다. 마지막 장면에서 의자 몇 개 정도가 연극구조 전체다. 연극은 피가 묻은 아들 잭의 셔츠를 발견하는 대화로부터 시작된다. 작품의 구성은 이렇다. 작가(제임스 프리츠)는 4분 12초의 성범죄 동영상 하나를 설정한다. 영상에 등장하는 사람은 두 사람이다. 남자는 다이(곽지숙 분)와 데이빗(남수현 분)의 열일곱 고등학생 아들 잭이고 여자친구는 같은 학교에 다니는 카라(박수빈 분)다.
잭은 특정 장소에서 카라의 입을 막고 강압적인 성범죄 장면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했다. 마치 몰카 영상처럼. 영상은 상상할 수 있는 장면으로 추측할 수 있다. 파일은 온라인 공유사이트에 유출되면서 50만 유저가 잭과 카라의 자극적인 영상을 보게 된다. 작품은 영상유출자를 추적하는 진실게임에서 성범죄 사건과 가해 아들을 바라보는 부모의 변화가 흥미롭다. '우리 아들은 절대로 그런 애가 아닐 것'이라는 절대적인 모성애는 시간이 지날수록 사건을 은폐하면서도 진실일 것이라는 믿음으로 변해간다. 진실의 오류가 피해자로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다이는 잭의 친구 닉(성근창 분)과 카라를 시간을 두고 교차적으로 만나면서 온라인 유포자를 추격하고 연극<4분 12초>은 성범죄 사건을 파헤치는 드라마에서 충격적인 사건을 대하는 엄마의 이야기로 전환된다. 다이와 친구 닉, 카라, 남편 데이빗과의 대화 장면들이 긴장감 있게 전환되고 작가는 충격적인 사실을 극 후반 쯤 숨이 '턱' 막히는 반전을 설정한다. 온라인 유포자는 아들 컴퓨터에서 그날의 영상을 우연히 본 데이빗이 공유사이트에 올린 것으로 밝혀지면서 충격을 준다. 연극은 동영상을 촬영한 아들, 그것을 유포한 데이빗, 아들을 필사적으로 보호하려는 다이와 닉과 카라를 중심으로 사건을 해결해 가는 과정을 흥미롭게 배치한다.
작품에서는 아들'잭'은 등장하지 않는다. 동영상의 가해자는 잭이면서도 부재해 있다. 눈치를 챘겠지만, 작가는 극중인물 전체를 피해자로 규정하는 것 같다. 가해자와 피해자는 서로 톱니바퀴처럼 연결되어 있고 종착점은 특정 한 사람을 지목할 수없는 것 처럼 사건을 마주하는 모두가 가해자이면서도 피해자가 되는 것이다. 잭은 아빠와 엄마의 피해자이고, 카라는 잭, 닉은 자신이 좋아하는 카라와 사귀는 모범생 잭으로부터 열등적인 피해의식을 보인다. 다이는 남편과의 갈등과 아들의 문제를 해결해 가는 방식의 차이를 겪는다. 남편 데이빗은 직장과 사회로부터 피해자다. 디지털 성범죄의 괴물을 키우고 있는 것은 어찌보면, 변태적인 성적 욕망을 보이는 데이빗과 '우리 아들은 아닐 것'이라는 절대적인 엄마의 사랑이 열일곱 아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부모와 기성세대들의 폐쇄적인 시선들이 디지털 성범죄에 무감각한 악마를 우리가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카라가 다이를 향해 던진 말(대사)이다. "정말 알고 싶어요? 아줌마 아들이 어떤 앤지 알고 싶어요?" 연출은 촘촘한 희곡을 배우들의 심리적인 연기로 승부를 걸며 90분을 긴장감 있게 몰고 가는 작품이다. 2014년도에 영국에서 초연되어 지난해 공유소극장에서 공연을 소개하면서 관심을 끌었고 작품을 보완해 올해 서울연극제 공식 참가작으로 선정되었다. 이곤 연출은 <해주미용실>,<단편소설집>, <햄릿의 비극>,<말피>,<복수자의 비극>,<마리아와 함께 아아아아아> 등의 작품으로 섬세한 연출을 해오고 있다.
김건표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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