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참극(慘劇)의 정치적 이용

정경훈 논설위원
정경훈 논설위원

현대 복지국가는 좌파 발명품이 아니다. 보수, 그것도 극보수라고 할 독일 총리 비스마르크가 창안했다. 1871년 독일 통일 후 산업재해보험, 1883년 공공 의료보험, 1889년 공공 연금을 도입했다. 그 목적은 선거에서 유권자의 다수를 차지하는 무산자(無産者)의 표를 얻는 것이었다. "(복지제도의 목적은) 연금 자격자들이 느끼는 보수적 심리 상태를 모든 무산자로부터 끌어내는 것이다."('금융의 지배', 니얼 퍼거슨)

바로 이런 이유로 당시 독일 사회주의자들은 처음에는 복지국가에 반대했다. 복지제도가 노동자들을 '매수'해서 노동자 혁명에 의한 자본주의 전복과 사회주의 건설을 방해한다는 것이었다. 뒤집어 말하면 사회주의 건설을 위해서는 무산자가 계속 무산자로 가난하고 고통스럽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좌파의 이런 계산은 이 땅에서도 확인된다.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을 설계했던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자기 책에서 "자가 소유자는 보수적 투표 성향을 보이며 그렇지 않은 경우는 진보적 성향이 있다"고 했다. 그 함의(含意)는 '진보·좌파가 집권하려면 무주택자가 많아야 한다'쯤 될 듯하다. 이런 논리는 이런 의문을 낳는다. '문재인 정권 5년간 내집 마련의 꿈을 좌절시킨 집값 폭등은 정책 실패인가 성공인가?'

좌파는 참극(慘劇)마저 정치적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러시아 공산주의 혁명을 이끈 레닌이 그랬다. 그는 22세 때 기근으로 죽어 가는 농민을 도우려고 모금을 하는 친구들을 설득해 그만두게 했다. "기아(飢餓)가 농민들로 하여금 자본주의 사회의 근본적 현실에 대해 숙고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모던 타임스 Ⅰ', 폴 존슨)

건설 공사 현장 5곳에서 공사를 방해하겠다는 취지로 협박해 8천여만 원을 받은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던 민주노총 건설노조 간부 양 모 씨가 이달 1일 분신했다. 이에 민노총은 '건설 현장 폭력 수사'를 규탄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었고, 윤석열 정권 퇴진 구호도 외쳤다. 노동운동도, 민주화운동도 모두 사람이 사람답게 살자는 데 목적이 있다. 그런데 사람이 죽어간다. 죽음이 결코 노동운동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노동운동뿐만 아니라 어떤 분야, 어떤 경우에라도 사람의 생명이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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