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비혼, 한부모, 미혼부도….
한국 사회에서 가족의 개념이 점차 변하고 있다. 꼭 배우자나 혈족이 아니더라도 원가족보다 짙은 정서적 유대감을 나누며 서로를 돌보는 관계들이다. 전통적인 가족 개념으로는 구분 지을 수 없는 관계들이 늘어나는데, 법이 정의한 '가족'이 아니다보니 이들은 '비정상'으로 도태되며 차별받는다.
낙인과 차별에 대한 서러움도 클 텐데, 이들은 일상생활에서조차 그들의 관계를 지킬 수 없다는 무력감도 맞닥뜨려야 한다. 대표적인 곳이 병원이다. 한국에서 의료결정권은 배우자와 혈족 등 가족에게만 있다. 그래서 상대가 아파 함께 병원을 찾아도 보호자가 될 수 없어 그들의 원가족을 불러야하는 일이 빈번해진다.
그래도 세상은 조금씩 변한다. 지난달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혼인이나 혈연관계가 아닌 성인 두 사람을 가족으로 인정하는 내용의 '생활동반자법'을 국내 최초로 발의했다. 새로운 가족 유형이 등장하는 시대 변화에 따라 현행법상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이들을 법적으로 동등하게 보호하자는 것이다.
법안은 성인 두 사람이 상호 합의에 따라 일상생활과 가사 등을 공유하며 서로 돌보는 관계를 '생활동반자관계'로 규정하고 이들에게 동거 및 부양·협조의 의무, 가사로 인한 채무의 연대책임, 친양자 입양 및 공동입양 등 혼인에 준하는 권리와 의무를 부여했다.
변화를 위한 첫걸음이지만 속도는 더딜듯하다. 정부도 법 취지에 부정적인 데다 이미 그동안 수차례 비슷한 법안 발의가 되거나 의견들이 오갔지만 반대에 부딪히기 일쑤였다. 보수 종교계도 '동성혼을 합법화시킨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그럼에도 세상은 꾸준히 목소리를 내는 이들에 의해 아주 조금씩 변화된다. 고착화된 사회 시스템을 타파할 드라마틱할 변화는 선뜻 만들어내긴 어렵지만, 낙숫물이 댓돌을 뚫듯 관계의 다양성을 계속 보여주고 말한다면 사회도 '다양성'에 대한 포용을 점차 시작할테다.
이 책도 댓돌을 뚫기 위한 또 하나의 힘이다. 일하고 사랑하며 함께 살아가는 여성과 퀴어의 삶을 그려온 조우리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다.
"50년을 함께 산 두 여자가 지금 당장 부부로 인정받기 위해 필요한 게 뭔지 아세요"
내용은 이렇다. 작은 도시 하주시에서 일하는 레즈비언 공무원 도선미는 신규 레즈비언 공무원 이가경으로부터, 가경의 고모 커플에게 혼인관계증명서를 발급하자는 계획을 제안 받는다. 선미는 고민 끝에 제안을 받아들이고 동성 간 혼인신고는 아무 문제없이 법원에까지 접수되고 만다.
그 후로 선미는 사회에 혼란을 일으켜보고자 가경의 퀴어 동아리 선후배를 중심으로 레즈비언들이 혼인신고를 승인하기 시작하는데 그렇게 도시 하주시는 어느새 레즈비언들에게 가장 핫한 지역으로 떠오른다.
혼인신고를 마친 레즈비언 부부만 101쌍에 다다른다. 이들 역시 모두 각각의 사연을 안고 있다. 가족이나 친구에게도 자신의 성적지향을 쉽게 밝히지 못하고 연인을 가까운 친구나 언니, 동생으로 소개한다. 동성이라는 이유로 배우자가 입원해도 법적 보호자가 될 수 없다.
조 작가는 그럼에도 이들이 무기력하게 있지 않게 그려낸다. 서로를 거울처럼 바라보고 "계속 쏘다 보면 언젠가 죽겠지" 하는 호기로운 마음으로 신나지만 또 너무 비장하지 않게 싸움을 이어나간다.
올해 2월 서울고등법원에서 동성 부부를 국민건강보험법상 피부양자로 인정하는 판결이 내려졌다. 법원이 동성 배우자의 권리를 인정한 첫 판결인 셈이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필요한 건 이미 다 준비돼 있을 지도 모른다. 다만 우리가 보지 못하고 있을 뿐.
<오늘의 세레머니>처럼 이 같은 작은 힘들이 모이고 모여 목소리를 내다보면 세상은 좀 더 다채로워질지 모른다. 252쪽, 1만4천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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