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라언덕] 횡단보도 앞 일시정지 못하는 병

아이들이 횡단보도에서 뛰고 있다. 초록색 보행 신호에 뛰는 게 뭐가 문제인가? 차는 횡단보도를 침범하지 않고 정지선 앞에 꼼짝 않고 멈춰 다음 신호를 기다리면 된다. 혹시나 횡단보도 밖으로 뛰쳐나가거나 무단횡단을 하는 등 정상적인 교통 흐름을 방해하는 보행자가 있다면? 법을 준수하는 가운데 당당하게 꾸짖고 필요시 신고도 하면 된다. 매일신문DB
아이들이 횡단보도에서 뛰고 있다. 초록색 보행 신호에 뛰는 게 뭐가 문제인가? 차는 횡단보도를 침범하지 않고 정지선 앞에 꼼짝 않고 멈춰 다음 신호를 기다리면 된다. 혹시나 횡단보도 밖으로 뛰쳐나가거나 무단횡단을 하는 등 정상적인 교통 흐름을 방해하는 보행자가 있다면? 법을 준수하는 가운데 당당하게 꾸짖고 필요시 신고도 하면 된다. 매일신문DB
황희진 디지털국 기자
황희진 디지털국 기자

요즘 부쩍 늘어난 마약 기사만큼 자주 보이는 기사가 있다. 운전자가 횡단보도 앞 우회전 일시정지 의무를 위반해 차로 사람을 치어 숨지게 했다는 기사다.

심지어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 횡단보도에서도 말이다. '스쿨존'과 '횡단보도'라는 법적 이중 보호 장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계속 죽는다.

지난 5월 10일 낮 12시 30분쯤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호매실동 스쿨존 횡단보도를 건너던 9세 조은결 군이 신호를 어기고 우회전을 한 시내버스에 치여 사망했다.

우회전 차량의 일시정지 의무는 올해 1월 22일부터 도로교통법 개정에 따라 시행되고 있다. 3개월간 계도 및 홍보가 이뤄졌고, 4월 22일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됐다.

조은결 군은 그 직후 죽었다. 조은결 군 아버지는 "우리 아이가 죽은 그 자리에 여전히 차들이 신호 위반을 하며 달리고 있다"며 제도 개선을 촉구하는 국회 국민동의청원을 올렸다. 6월 11일까지 5만 명 동의를 채우면 국회 본회의까지 갈 수 있는 이 청원은 5월 18일 오후 5시 기준 절반에 불과한 2만6천124명이 동의한 상황이다.

국회 국민청원 홈페이지
국회 국민청원 홈페이지

수많은 사고의 기저에는 횡단보도를 '같잖게' 여기는 운전자들이 있는 것 같다. 대구 도심에서도 횡단보도를 건널 때 '슬금슬금' 다가오는 차들을 적잖게 본다.

이런 심보일까? 길에서 보행자끼리 마주치면 서로 비스듬히 좌우로 피해 지나치듯이, 자기(차)는 횡단보도 좌측을 점유해 지나갈 테니 보행자는 나머지 우측으로 건너가라는 걸까? 횡단보도에서는 보행자가 갑이고 차는 을이다. 애초 차는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걷고 있거나 걸으려 할 땐 수m 뒤 정지선에 멈춰 꼼짝도 않고 기다려야 한다. 정지선이 없더라도 횡단보도엔 얼씬도 해선 안 된다. 을 주제에 감히.

이처럼 횡단보도에선 보행자가 갑이기에 우회전 일시정지 의무를 두고 일부 운전자들이 요구하는 횡단보도 위치 변경도 설득력을 잃는다. 우회전 사망 사고 기사에 참 많이 달리는 댓글 내용이 '횡단보도를 네거리 모퉁이에서 10~20m 뒤로 떨어뜨려라. 그러면 운전자 시야의 사각지대가 줄어든다'이다.

본말전도다. 보행자의 보행 편의를 위해 설치한 게 횡단보도다. 그런 횡단보도가 모퉁이에서 10~20m 멀어지면, 2개 이상 횡단보도를 건너야 하는 보행자는 그만큼 더 걸어야 한다. 아무 죄 없는 아이들, 할머니, 할아버지, 장애인들이 왜 더 힘들어야 하나?

결국 사람의 문제다. 일본과 미국 등 선진국의 선진 운전자들은 우리와 비슷하거나 더 좁고 낡은 횡단보도 앞에서 일시정지 의무를 잘만 지킨다. 당신들은 후진국의 후지고 후진 운전자들인가?

관련 기사에는 '보행자 무단횡단부터 해결하라'는 댓글도 달린다. 정당 대변인들도 아니고 물타기 좀 하지 말자. 그리고 그런 구도로 따지면 무단횡단하는 사람보다 횡단보도 앞에서 운전을 '개판으로' 하는 운전자가 더 많다. 아울러 불법을 저지른 보행자에 대해선 내(운전자)가 법을 준수한 후 당당히 꾸짖으면 될 일이다.

보행자 보호를 위한 우회전 방법. 경찰청
보행자 보호를 위한 우회전 방법. 경찰청

한국인의 후천적 유전자 '빨리빨리'가 유발한 질환 중 하나가 '횡단보도 앞 일시정지 못하는 병'이 아닌가도 싶다. 치료가 필요한 운전자가 여전히 많다.

법적으로 횡단보도가 지금보다 더 무서워지면 좋겠다. 일시정지 의무 미준수도 문제고, 스쿨존과 골목길 횡단보도에 불법주정차를 하는 차들만 봐도 운전자들이 횡단보도를 얼마나 무시하는지 잘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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