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섭, 빅아이디어의 가치는 1달러에 불과해"
미국 유학 시절 나의 광고 스승께서 해준 말씀이다. 무슨 의도일까 싶어 선생님을 응시했다. 아니 광고를 가르쳐 주는 학교에서 아이디어의 가치를 1달러에 불과하다니. 이게 무슨 해괴망측한 이야기인가 싶어 집중했다. 선생님의 다음 문장은 이러했다.
"그것을 실행하지 않는다면 말이야"
결국 아무리 멋진 아이디어라도 실행하지 않는다면 무의미하다는 뜻이다. 돌아보면 이 말은 광고에만 적용되는 말이 아닌 듯하다. 우리 인생의 모든 일이 그렇다. 요즘 유튜브를 열면 가장 많이 들려오는 문장이 무엇인가? '월 2,000만 원 벌기', '45세에 은퇴해 경제적 자유 누리기' 등과 같은 문장들이다. 파악해 보면 이런 영상의 조회 수 역시 엄청나다. 똑같이 영상을 보지만 그 영상을 대하는 태도는 모두 다르다. 누군가는 들은 대로 실천한다. 또 다른 누군가는 영상에 감동해 유튜브를 종료하며 동기부여까지 꺼버린다. 즉, 행하는 사람이 있고 행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광고 역시 그렇다. 끝없는 시장조사, 치열한 경쟁사 분석, 불꽃 튀기는 아이데이션을 거쳤어도 실행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사실, 광고 제작에 들어가기 전 모든 사용 설명서는 나와 있다. 디자인 팀에서 스케치한 콘티 안이 있다. 기획팀에서 작성한 광고의 톤 앤 매너 등이 말이다. 요리로 따지만 정확한 레시피가 나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제작이라는 것은 매우 예민한 영역의 일이다. 아무리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도, 아무리 콘티 속에 분명한 그림을 그려도 막상 제작에 들어가면 똑같을 수 없다. 이미지 광고의 경우, 어떤 이미지를 쓰느냐에 따라, 동영상 광고의 경우, 어떤 배우가 어떻게 연기하느냐에 따라 제작물의 깊이 확연히 차이 난다. 그러니 최대한 광고 제작 콘티를 디테일하게 작성해야 한다.
광고 제작은 광고 카테고리에 따라 성격이 달라진다. 이미지 광고이냐, 동영상 광고이냐, 아웃도어 설치형 광고이냐에 따라서 말이다. 이미지 광고의 경우, 어떤 이미지를 쓰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똑같은 책상 이미지를 쓴다고 해도 공부가 잘될 것 같은 느낌의 책상이 있고 그렇지 않은 책상이 있다. 또한 책상을 실제로 사진 찍어 쓰는 방법과 이미지 사이트에서 다운로드해 쓰는 방법이 있다. 후자는 기성품을 쓰는 것이고 전자는 수제 광고인 셈이다. 조금 번거롭더라도 실제로 원하는 대상을 사진 찍는 것이 이미지 광고의 퀄리티를 높이는 방법이다. 여기에 포토샵으로 아이디어를 돋보이게 만드는 후속 작업이 이어진다. 광고와 포토샵은 정말 땔 수 없는 존재인데 요즘은 과한 포토샵은 지양하는 편이다. 포토샵이 과할수록 사람을 과하게 설득하는 느낌이다. 무언가 상품의 본질이 매력적이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느낌이다. 그래서 요즘은 최대한 포토샵을 간략하게 하려 한다. 카피에 임팩트가 있다면 소비자들은 그 본질을 알아볼 만큼 똑똑해졌다.
문제는 동영상 광고이다. 동영상 광고의 퀄리티는 매우 다양하다. 이미지 광고의 경우 시간의 흐름이 없다. 멈추어져 있는 이미지 한 장이다. 동영상의 경우는 다르다. 동영상은 시간이 흘러간다. 그러니 허점이 드러나기 쉬운 영역이다. 배우의 동작, 카메라의 각도, 조명, 촬영 장소 등 자신만의 언어를 끊임없이 내뱉는다. 디렉터는 이 모든 것들이 고유한 통일된 목소리를 내도록 하는 것이 임무이다. 광고가 담은 단 하나의 메시지를 모두가 합창할 수 있어야 한다.
반면, 요즘은 힘을 주지 않은 동영상 광고의 형태가 트렌드이기도 하다. SNS의 대중화로 인해 인스타그램의 릴스라든지 유튜브의 쇼츠와 같은 장르가 그렇다. 이제는 누구나 광고인이 된 시대이기에 지금 당장 핸드폰을 들어 릴스나 쇼츠를 촬영하기 쉬워졌기 때문이다. 편집 프로그램 또한 대중화가 되었다. 실제로 온라인상에서 바이럴 되는 영상을 보면 퀄리티보다 컨텐츠의 요소가 더욱 강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튜브에서 영화 리뷰 컨텐츠를 자주 보는 편이다. 시청할 때마다 놀라운 것이 의외로 배우들의 대사에 애드리브가 많았다는 것이다. 광고는 애드리브는 아니지만 제작을 하면서 더 좋은 아이디어가 탄생하기도 한다. 광고를 선명한 이미지를 보여주자며 제작하는 도중 모자이크로 가려두는 게 더 임팩트 있겠다는 생각이 스치기도 한다. 광고에서 상품을 가감 없이 보여주자며 제작하다가 현수막을 접어서 감춰버리기도 한다. 묘하게도 모자이크 처리를 하거나 상품을 접어두면 사람들은 더 보고 싶어 한다. 그렇게 광고가 싫어 도망 다니면서도 광고에서 상품을 감춰버리면 더 보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래서 광고는 사람의 끝까지 공부하는 영역이라 생각한다. 심리학의 끝, 인문학의 끝이 광고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제작하는 과정 역시도 즐겼으면 좋겠다. 언젠가 개그 프로그램의 엄격한 선후배 관계에 대한 폭로가 이슈인 적이 있었다. 그 뉴스를 보며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본인들이 즐겁지 않은데 어떻게 남을 웃기지?' 디테일하게 집착하되 그 과정 역시도 즐겁게 해보라. 그렇다면 제작 과정에서도 즐거운 아이디어가 갑자기 불쑥하고 내 눈앞에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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