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동물·소동물 수의사의 하루…“크기는 달라도 소중함은 같아요!”

소 직장에 손 넣어 발정·임신 여부 감별…난산 겪는 어미소에게는 제왕절개 처치
소똥 튀고 덩치 큰 소 제압하다 보면 진땀…건강 되찾아 고맙다는 축주 인사엔 뿌듯
토끼 '부정교합' 고슴도치는 '생식기 질환' 동물마다 질병 상이 약물·치료법 다 달라

대동물 수의사 (왼쪽) 박식배 씨와 소동물 수의사 장윤호 씨.
대동물 수의사 (왼쪽) 박식배 씨와 소동물 수의사 장윤호 씨.

꺼꾸리와 장다리가 있다. 꺼꾸리에게는 밥을 잘 챙겨 먹으라는 잔소리가 항상 따라다닌다. 잠이라도 늦게 잤다가는 "그러니까 키가 작지" 라는 말이 비수로 날아든다. 그러다 가만있던 장다리에게도 불똥이 튄다. "너 꺼꾸리 밥 뺏어 먹었지? 어떻게 너 혼자만 크냐"

꺼꾸리와 장다리에게 쏟아지는 편견이 남일 같지 않은 두 사람이 있다. 바로 대동물 수의사 박식배 씨와 소동물 수의사 장윤호 씨다. 이 둘은 앞다투어 자신의 동물을 대변한다. "대동물이 둔할 것 같죠? 얼마나 예민한데요. 병치레가 참 많아요" "소동물은 작아서 치료비가 적을거라 생각 마세요. 시간과 노력이 더 들어간답니다" 그리고 이 둘은 한목소리로 외친다. "크기는 달라도 소중함은 똑같아요!". 대동물 수의사 박식배 씨와 소동물 수의사 장윤호 씨의 애환을 각각 들어본다.

박식배 대동물 수의사가 소의 직장에 손을 넣어 임신 여부를 감정하고 있다.
박식배 대동물 수의사가 소의 직장에 손을 넣어 임신 여부를 감정하고 있다.
박식배 대동물 수의사가 소의 직장에 초음파 기계를 넣어 임신 여부를 감정하고 있다.
박식배 대동물 수의사가 소의 직장에 초음파 기계를 넣어 임신 여부를 감정하고 있다.

◆ 대동물 수의사 박식배 씨

"OO이 또 설사해요? 아이고 금방 갈게요." 통화를 끝낸 박식배 씨가 서둘러 운전대를 잡는다. 현장에 도착하니 송아지가 풀썩 주저앉아 있다. 일교차가 심한 요즘 같은 때에는 송아지들 사이에 설사병이 유행이다. 송아지에게 수액을 맞히고 호흡기까지 진료하고 나서야 박 씨는 한숨을 돌린다. "이런 날씨에는 설사병 말고 호흡기 질병에도 잘 걸리거든요. 꼼꼼히 확인을 해야 해요"

박 씨는 청도현대동물병원 원장이자 대동물 수의사다. 대동물 수의사는 소·돼지·말 등 집안에서 키우기 힘든 동물들을 전문적으로 다룬다. "청도가 소싸움이 유명하잖아요. 제가 이 고장 토박이거든요. 그리고 예전 할아버지 댁에도 소를 키웠어서 아무래도 큰 동물을 다루는데 부담감이 덜했던 것 같아요"

박식배 대동물 수의사가 설사병에 감염된 송아지를 치료하고 있다.
박식배 대동물 수의사가 설사병에 감염된 송아지를 치료하고 있다.
박식배 대동물 수의사가 송아지의 깁스를 풀어주고 있다.
박식배 대동물 수의사가 송아지의 깁스를 풀어주고 있다. "이제 조심조심히 다녀야해"

한숨 돌리나 싶었더니 박 씨의 휴대폰이 또 울려댄다. 이번에는 출산 중인 소가 힘들어한다는 축주의 전화다. 그러자 박 씨의 안색이 어두워진다. "이럴 때면 개업 초기가 꼭 생각나요. 당시 어미소 자궁안에서 송아지 자세가 잘못되어 긴급하게 제왕절개를 해야 했어요. 둘 중 하나도 살릴까 말까 한 상황이었죠. 그때 혼자 수술이 버거워 창녕에 있는 동기 수의사를 불러 새벽 내내 수술을 했던 기억이 나네요. 다행히 어미소도 살고 송아지도 살았어요"

박 씨는 대동물 수의사 중에서도 번식 전문이다. 암소의 임신과 출산 관리가 주된 업무다. 소의 직장에 손을 넣어서 발정과 임신 여부를 감별하고, 초음파를 이용해 인공 수정을 하거나 호르몬 처치를 한다. "좋은 송아지가 태어났다며 만날 때 마다 밥이나 커피를 사주시는 축주도 계세요.

삼신할매라고 부르는 분들도 많이 계시고요 (웃음) 그럴 때 참 힘이 나죠". 한 달에 한 번은 청도 우시장 경매에서 임신감정을 하고 있다. 봄 가을에는 구제역 백신 접종도 한다.

난산으로 힘들어하던 어미소는 결국 제왕절개를 했다.
난산으로 힘들어하던 어미소는 결국 제왕절개를 했다.
난산으로 힘들어하던 어미소는 결국 제왕절개를 했다.
난산으로 힘들어하던 어미소는 결국 제왕절개를 했다.

소도 하나의 생명체이며 하루 종일 주인과 붙어있기 때문에 소를 자신의 가족으로 여기는 축주들이 많다. 자식인 양 소마다 이름을 붙여주는 축주들이 대다수다. 강아지·고양이 같은 반려동물과 마찬가지로 소가 아픈 것도 축주들이 가장 먼저 알고 연락이 온다. 사료를 주면 득달같이 달라붙어야 하는데 먹는 게 시원찮거나, 구석에 처박혀 있거나, 움직임이 둔할 때 몸이 좋지 않음을 파악한다.

"소는 축주의 성향을 많이 따라가는 것 같아요. 축주가 소에 애정표현을 많이 해주면 온순하고 보정(진료를 하기 위해 잡는 행위) 하는 게 쉬워요. 하지만 주인이 성격이 급하고 소를 많이 때리면 소도 덩달아 예민하고 포악하더라고요"

순둥순둥한 소들도 조심해야 할 때가 있다. 바로 분만 직후다. 모성애가 강한 시기라 분만 후에 송아지를 챙기려 자칫 축사에 들어갔다가 다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저도 많이 다치고 넘어져요 인공수정을 시키다가 옷이 다 찢어져서 청테이프로 둘둘 감고 시술했던 적도 있답니다"

박식배 수의사가 염소에게 구제역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박식배 수의사가 염소에게 구제역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박식배 수의사가 소에게 구제역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박식배 수의사가 소에게 구제역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다만 소는 경제적인 동물이기 때문에 거기에서 오는 딜레마가 존재한다. "끝까지 살리려고 노력할수록 축주에게 치료비가 많이 들어가는데, 그렇게 되면 나중에 소를 팔 때나 그럴 때 자신들에게 손해가 어마어마해지죠. 수의사의 소명은 생명을 구하는 일인데, 현실적으로는 축주들의 주머니 사정도 고려해야 하는 것이 대동물수의사 만의 일이기도 해요. 안타깝게도 치료를 중단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그때마다 항상 속이 상합니다"

하지만 다 죽어가던 송아지가 기적적으로 살아날 때, 난산으로 생사를 넘나들던 어미소가 기운을 차릴 때, 박 씨는 이 일을 선택하길 잘했구나 보람을 느낀다. 의사 가운이 아니라 방역복을 입고, 하루에도 수십 군데의 축사를 돌아다녀야 한다. 게다가 툭하면 소똥이 튀고, 덩치 큰 소를 제압하자면 진이 빠지기 일쑤다. 그럼에도 감사하다며 차 한잔 건네는 축주들의 말 한마디에 박 씨의 고단함은 눈 녹듯 씻겨 내려간다.

소동물 수의사 장윤호 씨가 혈뇨로 내원한 햄스터 환자의 방광을 복강 초음파로 살펴보고 있다.
소동물 수의사 장윤호 씨가 혈뇨로 내원한 햄스터 환자의 방광을 복강 초음파로 살펴보고 있다.

◆ 소동물 수의사 장윤호 씨

"무서우시면 잠깐 나가 계셔도 돼요" 기자의 표정을 읽었는지 장윤호 수의사가 한마디 건넨다. 그도 그럴 것이 시지 동물병원에 무시무시한 손님이 찾아왔다. 바로 왕뱀류에 속하는 '킹 스네이크'다. 3일 전에 알을 1개 낳고 그 이후로는 기다려도 나오지가 않아 배가 불룩 한 채로 병원을 찾았다.

장 씨는 먼저 X-Ray와 초음파를 찍어 알의 크기와 개수를 확인했다. 조류와는 달리 뱀의 알은 몰랑몰랑 하기 때문에 손으로 만져보는 촉진도 이뤄졌다. 알은 총 5개. 서둘러 마취를 시키고 알을 빼는 개복 수술에 들어갔다. "남아있는 알이 있으면 안 되니 확인을 여러 번 해줘야 해요. 뱃속에서 알이 터지지 않아 참 다행이죠."

소동물 수의사 장윤호 씨가 호흡기 증상으로 내원한 뱀을 엑스레이로 살펴보고 있다.
소동물 수의사 장윤호 씨가 호흡기 증상으로 내원한 뱀을 엑스레이로 살펴보고 있다.
알을 제대로 산란하지 못해 알이 막힌 상태로 병원을 찾은 뱀손님. 뱀의 배에서 알이 5개나 나왔다.
알을 제대로 산란하지 못해 알이 막힌 상태로 병원을 찾은 뱀손님. 뱀의 배에서 알이 5개나 나왔다.

장 씨는 대구 시지동물병원 원장이자 소동물(특수동물) 수의사다. 수의 임상분야에서 소동물은 개·고양이로 분류하고 있지만 일반에서는 그보다 작은 특수동물까지 소동물로 칭하기도 한다. 소동물병원의 손님은 매우 다양하다. 설치류(햄스터·기니피그·다람쥐 등), 파충류(도마뱀·거북이·뱀 등), 포유류(페럿·미어캣·라쿤·고슴도치·토끼 등), 조류가 있다.

"조금전 수술했던 뱀 같은 경우는 교배를 하지 않더라도 닭처럼 알을 낳거든요. 이런 알을 낳는 파충류나 조류의 경우 알을 제대로 산란하지 못해 알이 막힌 상태(에그 바인딩)로 내원하는 경우가 많아요. 빨리 치료를 하지 않으면 기력저하, 순환장애, 후지 마비가 동반될 수도 있어요" 손님 별로 앓는 병도 다르다. 토끼나 기니피그의 경우 치아가 계속 자라며 부정교합이 오는 경우가 잦다.

그렇게 되면 정상적인 식사가 어려운 경우도 있어 치아를 정기적으로 갈아 주어야 한다. 또 초식동물은 수시로 식사를 하는 특성이 있어 소화장애에 관련된 질병으로 자주 내원한다. 그리고 고슴도치는 생식기 질환이 많이 발병한다. 자궁축농증이나 자궁종양이 대표적 사례다. "고슴도치는 아시다시피 가시를 세우고 있잖아요. 그래서 병을 찾는 과정 자체부터가 꽤 힘들어요"

장윤호 수의사가 앵무새 외관 검사를 하고 있다. 모니터에 앵무새의 눈이 확대되어 있다.
장윤호 수의사가 앵무새 외관 검사를 하고 있다. 모니터에 앵무새의 눈이 확대되어 있다.
고슴도치는 대부분 겁이 많고 예민하기 때문에 병원에 오면 몸을 말고 있어 검사나 처치가 어렵다.
"아프게 하지 말아달라 짹짹" 스트레스에 취약한 십자매, 문조 같은 조류들은 보정만 해도 심한 스트레스가 발생한다.

그 말이 채 끝나기가 무섭게 삐죽삐죽 가시를 돋은 손님이 병원 문을 열고 들어온다. 고슴도치는 대부분 겁이 많고 예민하기 때문에 병원에 오면 몸을 말고 있어 검사나 처치가 어렵다. "이 녀석은 오늘 상처 부위를 소독해야 하는데, 핸들링(손으로 제어하는 행위)이 잘 안 돼서 호흡 마취가 필요할 것 같네요" 대부분 소동물들은 보정 단계에서부터 스트레스를 받는다. 특수동물은 강아지나 고양이와 다르게 반려인과 교감이 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평소에 핸들링을 하지 않고 물과 식사만 주고 밖에서 보기만 했다면 보정은 더 어렵다

온순하더라도 의도치 않게 치료가 어려운 손님도 있다. 펜더마우스나 로보로브스키 햄스터처럼 잡을 곳이 없을 정도로 몸집이 작은 아이들이다. 체구가 작을수록 눈, 코, 구강 등 모든 신체 부위도 작다. 그럴 때면 몸을 고정시켜 진료를 보거나 호흡 마취를 해야 한다. "하지만 또 체구가 작기 때문에 마취 위험성이 강아지, 고양이보다는 높은 편이거든요. 그래서 마취 중에도 호흡을 안정적으로 하는 지 항상 주의깊게 살펴봐야하고, 가능한 최대한 마취시간이 길어지지 않도록 신속하게 검사나 처치를 해요. 소동물은 여러모로 다른 동물들보다 손이 많이 가는 녀석들이죠"

거북이 환자가 병원을 찾았다. 동물마다 기본적인 습성이나 호벌하는 질병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사용하는 약물도 다르고 진료법도 다르다.
고슴도치는 대부분 겁이 많고 예민하기 때문에 병원에 오면 몸을 말고 있어 검사나 처치가 어렵다.
다람쥐가 깁스를 했다. 체구가 작을수록 눈, 코, 구강 등 모든 신체부위도 작다. 소동물의 치료 과정은 극도의 섬세함을 요구한다.
거북이 환자가 병원을 찾았다. 동물마다 기본적인 습성이나 호벌하는 질병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사용하는 약물도 다르고 진료법도 다르다.
다람쥐가 깁스를 했다. 체구가 작을수록 눈, 코, 구강 등 모든 신체부위도 작다. 소동물의 치료 과정은 극도의 섬세함을 요구한다.

동물마다 습성이나 호발하는 질병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사용하는 약물이나 진료법도 다르다. "특수동물 진료를 하려면 항상 새로운 이론이나 기술을 연마해야 해요. 하물며 강아지도 견종마다 성격이 다른데, 특수동물은 그 숫자부터가 강아지에 비할 것이 못되게 엄청 많잖아요" 하지만 머리 쓰는 일보다는 마음 써야 하는 일이 생길 때 장 씨는 더욱더 힘이 든다.

소동물은 수명이 짧은 경우가 많다. 햄스터는 2~3년, 고슴도치는 5년, 토끼도 10년 내외다. 물론 거북이(최소 20~30년에서 50년 이상)나 앵무새(평균 10년~30년 이상)처럼 예외는 있지만 수명이 짧은 손님들이 대부분이다. "몸집이 작고, 케이지 안에서 키우는 경우가 많다 보니 병세가 악화되고 나서야 병원에 찾아오는 경우가 부지기수에요.

그러면 손 쓸 수도 없이 하늘나라로 보내야 할 때가 많죠.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몰라요. 이 기사를 보시는 독자님들 집에 동물이 있다면 특히나 더 작고 다른 특수동물이라면 건강검진을 한번씩 해보셔야 해요. 또한 평소와 다른 모습이 보인다면 가까운 병원이라도 데려가보시길 꼭 부탁드립니다. 작지만 똑같이 소중한 반려동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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