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용관규천(用管闚天)…대롱으로 하늘 보기

김 병 욱 북한학박사동국대학교대학원 대우교수
김 병 욱 북한학박사동국대학교대학원 대우교수

보고 듣거나 배워서 얻은 지식과 견문을 식견(識見)이라 부른다

용관규천(用管闚天)은 관중규표(管中窺豹)로도 불리고, 혹은 이관규천(以管窺天)으로도 불리는 이 말은 대롱으로 표범을 보면 점 하나만 보일 뿐이라는 뜻으로 식견이 매우 좁은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모름지기 좁은 식견으로는 전체의 진상이나 참다운 진리를 제대로 알 수 없다는 뜻을 담고 있는 이 이야기는 사마천의 사기열전(史記列傳) "편작 창공열전"에 기록돼 있다.

춘추전국시대 일부 지역에서는 양의(良醫)를 흔히 '편작'으로 불렀는데, 그는 조(趙) 나라의 명의로 한의학 기초를 마련한 인물이며, 편작의 이름은 진월인(秦越人)이었지만 의술이 매우 뛰어나 그에 대한 호칭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한 번은 그가 괵(虢) 나라를 방문했을 때 그 나라의 태자가 병사했다는 말을 듣고 편작은 태자를 살려보겠다며, 극진히 치료하여 결국 살린 적이 있었다. 이후 편작은 하늘을 우러러보며 궁궐에서 태자의 진료를 맡았던 사람에게 "당신의 의술은 대롱으로 하늘을 보고(용관규천, 用管闚天), 좁은 틈사이로 모양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으므로 그 전모를 볼 수 없었습니다"라는 말에서 유래된 것으로 우물 안에 살면서 하늘의 작은 부분만 보는 개구리와 같이 제한된 시야를 벗어나 세계의 광대함을 보지 못한 결과를 초래한 것을 가리키고 있다.

대구는 팔공산을 비롯한 천혜의 자연을 중심으로 찬란한 문화를 이룩한 유서 깊은 도시이며, 국난을 극복하고 민족정기를 바로 세웠던 유구한 역사가 말해주듯 대구의 정체성은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불굴의 투지와 정의로운 혼으로 형성되어 이것이 소중한 지역정서로 자리매김된 채 유산이 되었다.

1907년 2월 21일 '국채보상운동'은 세계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일반평민, 상공인, 기생, 걸인 등이 참여한 우리나라 최초의 시민운동으로 일제의 경제적 주권침탈에 대항하여 외채상환을 통해 주권을 수호하려 했던 것은 독립운동의 서막이 되었다.

한편, 한국전쟁 당시 1950년 8월 1일부터 9월 24일까지 55일 동안 최후의 결전이 펼쳐진 '낙동강방어전투'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대구의 방어선으로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구국의 격전지였다. 또한, 1960년 대구시내 8개 고등학교 학생들이 자유당 정권에 항거하여 일어난 '2·28 대구학생의거'는 학생 민주화 운동으로 '3·15 마산의거'와 '4·19 혁명'으로 이어져 부패한 이승만정권의 몰락을 재촉한 횃불이 되었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 '4·19 혁명' 기념사에서 2·28일 대구학생의거가 4·19 혁명의 시작점이라고 규정했을 만큼 불의에 대해서는 홀연히 항거하고, 나라를 위해 분연히 일어서는 대구의 정체성을 보여주었다. 이렇듯 국채보상운동과 낙동강 전선 사수, 그리고 2·28 대구학생의거야말로 대한민국을 지켜낸 구국의 성지였으며, 지역인으로서 대구의 자랑이 아닐 수 없다.

역사를 모르는 민족에게 미래가 없듯이 우리 민족에게 주어진 한반도통일문제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었고, 오랫동안 분단의 고통 속에서도 반드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미래의 숙제물로 남아있다. 정부는 지역주민과 청소년들이 북한의 실상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통일정책과 남북관계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확립할 수 있도록 마련된 통일교육·전시 공간으로 현재 13개 시, 도에 '통일관'을 운영하고 있다.

전국에 운영되는 '통일관'은 통일부에서 위탁 운영하는 오두산 통일전망대를 비롯하여 서울통일관, 부산, 인천, 광주, 대전, 고양, 고성, 양구, 청주, 충남, 경남, 제주 등 전국 5대 도시는 물론 지방 중소도시까지 설치되어 있지만, 유독 구국의 성지라고 불리는 대구, 경북에만 없다는 것은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대구에 통일관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지금의 수성도서관 바로 옆 건물(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로 153)에 통일관이 버젓이 있었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지난 김범일 시장 재임기간(2010. 7.∼2014. 6.)에 없어졌고, 리모델링된 건물은 한동안 교회로 사용되더니 2021년부터 지금까지는 대구문화예술진흥원 산하 대구생활문화센터로 사용되고 있다.

정부는 '통일관'을 활용하여 통일교육의 활동을 넓히는 한편 평화통일의 기반조성을 위해 통일정책·남북관계·북한 실상 관련 등 다양한 통일교육 자료전시와 체험 장비 보급으로 통일교육의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디지털 체험형 전시에 관심이 증가함에 따라 민간 부문 통일교육 활성화를 위해 마련된 VR콘텐츠와 포토 키오스크 등이 지원됨에 따라 '통일관'의 작년 관람객 숫자는 2021년 70만여 명에 비해 무려 120만 명으로 괄목할 만큼 큰 관심을 보였다.

이렇게 새로운 전시 패널로 다양한 프로그램의 통일정책을 접할 수 있도록 학생·청소년·성인 등 지역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볼 수 있는 반면, 대구, 경북의 지역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하물며 제주도에까지 통일관을 조성해 지역주민과 청소년들이 통일문제를 쉽게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됨에도 불구하고 호국의 성지인 우리 고장에 '통일관'이 없다는 것은 대롱으로 하늘을 엿보고(以管窺天) 좁은 틈새로 무늬를 보는 것(狹隔目紋 협격목문)과 무엇이 다를 것이며, 이 어찌 우물 안의 개구리 식견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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