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수성구 수성동1가의 한 상가 건물 4층에 들어서자 탁 트인 개방감에 탄성이 터져나온다. 이곳은 차규선(55) 작가가 20여 년간 머문 작업실. 물감이 겹겹이 쌓인 바닥과 그가 새들을 위해 창틀에 놓아둔 사과, 손때가 묻은 붓과 책 등에서 푸근함이 느껴졌다.
1995년 이후 매년 전시를 쉬지 않았지만, 올해는 그에게 유독 바쁜 한 해다. 부산 신세계센텀시티갤러리에서의 전시가 1월 마무리된 데 이어 대전신세계갤러리, 봉산문화회관, 윤선갤러리까지 상반기에만 3개의 전시가 잇따랐고 화랑미술제와 아트부산에서도 그의 작품이 빛을 발했다.
작가는 "전시를 많이 잡은 건 내 우유부단함의 소치"라며 무심하게, 겸손한 농담을 건넸다. "다 같은 작품으로 그림을 거는 게 아니라, 전시마다 컨셉이 다릅니다. 전시 준비에 시간이 촉박해 힘들었죠. 특히 우연성 등 변수가 많은 작품이기에 심적으로도 많은 부담이 됐었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전시들은 매번 관람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는다. 미술의 형식이 어떻든, 내용이 뭐든 관람객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 즉 '좋은 전시를 보여주는 것'이 그가 생각하는 최우선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나를 먼저 냉정하게 바라봐야 한다. 내 그림을 보면서 스스로 끊임없이 물어보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전시가 많고 바쁜 가운데에 작업을 하다보면 태작이 나올 수 있기에 늘 그것을 경계하고, 냉정하게 내 작품을 바라보는 시각을 유지하려 한다"고 말했다.
그가 6월 12일까지 윤선갤러리(수성구 용학로 92-2)에서 선보이고 있는 전시의 주제가 '대화(對·畵)'인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이전 작품보다 좀 더 구체적 풍경을 뭉갠 표현이 눈에 띈다.
그는 "추상성을 더했다고 하지만, 그보단 좀 더 본질을 들여다보고자 한 것"이라며 "추상이라는 건 구상보다 더 나아간 형식도 아니고, 사실 껍데기일 뿐"이라고 했다.
이어 "재료든, 형식이든, 색이든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찾을 뿐이다. 바탕이 되는 요소들의 활용 가능성을 다 열어놓고 무엇이든 다 그려보고 싶다. 무엇을 보고 그리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아름답게 표현해내고 얼마나 감동을 줄 수 있는가가 바로 작가의 역량"이라고 덧붙였다.
관람객들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 그는 사진, 서적, 조각 등 다양한 분야의 텍스트와 이미지를 내면에 차곡차곡 쌓아나간다. 그것들을 침잠하고 사유하는 시간도 필수다.
작가는 "최소한 화가라면 세상의 모든 자연과 인간 군상, 느낌들을 흡수하고 내 것으로 녹여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분야의 작품들을 감상하고, 후배 작가들의 작품에서 배울 부분은 배우기도 한다"며 "더 나아가고, 깊어지고 싶다. 끊임없이 변용되고 확장되길 원한다"고 했다.
작업실 한 켠에 붙여진 그의 은사, 정점식 화가의 사진이 눈에 띄었다. "선생님의 저서 '화가의 수적'에 '기성 화가들의 능숙함이 아마추어들의 간절함, 절실함보다 못할 때도 있다'는 말이 나옵니다. 항상 안주하려는 마음을 경계하고, 냉정하게 스스로를 바라보고 정직하게 예술하려는 태도를 지켜나가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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