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과 전망] 히로시마와 후쿠시마, 그리고 동해안

모현철 신문국 부국장

모현철 신문국 부국장
모현철 신문국 부국장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21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참배했다. 한일 정상이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공동 참배한 것은 최초이고, 한국 대통령의 참배도 처음이다. 윤 대통령의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일정 중 가장 눈길을 끈 장면이었다.

1945년 8월 6일 미국은 히로시마에 역사상 최초로 원자폭탄 '리틀보이'를 투하했다. 히로시마에는 일제강점기에 강제 동원된 이들을 포함해 약 14만 명의 조선인이 살고 있었는데 이 가운데 5만 명이 원폭 피해를 봤다. 이 위령비는 희생된 2만~3만 명의 한국인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됐다. 피폭된 한국인들의 고통을 잊지 않기 위해 세워진 평화의 상징이다.

두 정상이 위령비를 참배하며 훈훈한 장면을 연출했지만 국내에선 여전히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문제로 논란이 거세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처리 과정을 점검하기 위한 한국 정부 시찰단이 22일 일본에서 공식 일정에 들어갔지만 실효성 여부를 두고도 말이 많다. 일본 정부는 방류할 오염수가 인체에 무해하다고 주장하지만 위험성에 대한 국민적 의구심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국내 정치권은 찬성과 반대 양쪽으로 갈려 극한 대치 중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오염수 방류의 위험성을 강조한 반면 국민의힘은 야당이 근거 없는 선동으로 공포감을 조성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문제는 오염수 방류가 강행될 경우 영향·강도에 대한 분석이 제각각이고, 전문가 의견도 엇갈린다는 점이다. 국민들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국민의 건강권은 일부 학자나 정치인의 자극적인 선동으로 지켜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철저하게 과학적인 검증과 데이터 제시를 통해 국민을 납득시켜야 한다.

윤 대통령은 23일 국무회의에서 "과학적으로 안전하게 활용하기만 하면, 원자력은 가장 강력하고 효율적인 그린 에너지"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지만 모든 사물에는 양면성이 있다. 원자력은 강력하고 효율적이지만 위험하기도 하다. 히로시마 원폭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 등을 겪으면서 원자력의 공포를 충분히 목격했기 때문이다.

뉴스의 중심에 떠오른 히로시마와 후쿠시마를 보면서 동해안의 원전에도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최근 동해안에 지진이 잇따르고 있어서다.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지진해일(쓰나미)이 밀려올 정도의 강력한 지진이 발생할 경우 동해안을 따라 모여 있는 원전의 안전이다. 동해안에는 무려 18개의 원전이 밀집해 있다. 동해안 인접 도시인 경주, 포항에서는 수년 전 유례가 드문 지진을 경험한 바 있다. 한반도가 더 이상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주면서 충격을 줬다.

쓰나미 피해를 당한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원전의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원전 안전은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다. 국내 원전 안전 기준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잦은 지진 빈도와 역사적으로 밝혀진 위험 신호를 보면서 지나칠 정도로 치밀하게 재난 대비를 해야 한다. 탈원전에서 벗어나 친원전 정책을 표방한 만큼 정부는 동해안 주민들의 안전에 더욱 신경을 기울여야 한다. 원전 사고는 한 번 발생하면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다. 일본 후쿠시마 방류수 논란을 거울 삼아 다시 한번 더 원전의 안전을 되새겨야 할 때다. 원자력은 장점과 단점이 분명한 에너지이다. 장점은 극대화하고 단점은 최소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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