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형식과 내용

신경애 화가

신경애 화가
신경애 화가

모두를 가질 수는 없다. 무언가를 선택하면 무언가를 버려야 한다. 시인은 어쩌면 이렇게 마음을 울리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일까. 시인이나 소설가는 언어를 가지고 삶의 깊은 통찰을 표현한다. 언어는 형식(수단)이라 할 수 있고 삶의 통찰은 내용(목적)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예술은 형식을 가지고 내용을 표현한다. 화가도 같은 일을 한다. 미술에서의 형식과 내용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는 그림에서 형식을 즐기는가 아니면 내용을 즐기는가. 그렇게 무 자르듯이 댕강 반을 자를 수는 없다. 내용과 형식 둘 다 즐긴다고 해야 맞다. 물론 그렇겠지만 나는 화가가 내용이 아니라 형식을 창작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미술에서 다루어지는 보편적인 내용(주제)은 이미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것은 모두 다를지라도 결국 미술은 인간, 자연, 사랑, 행복, 신화, 부조리 등을 다룬다. 이를 화가 개인이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나타낼 것인가가 문제이다. 즉 형식이 화가가 풀어야 할 문제다.

간단히 말해서 그림의 내용이란 화가가 색과 형태를 다루는 방식(형식)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다. 내용은 소재의 영향을 자주 받는다. 예컨대 나비를 그렸다면 나비라고 하는 대상의 상징적인 의미, 변화와 성장 그런 내용 말이다. 하지만 같은 소재의 나비라 할지라도 어떤 화가가 나비를 그릴 때, 비단실로 수를 놓은 듯이 그렸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자수의 '장식성'과 비단의 '윤택성(潤澤性)'이 시각적으로 만들어짐으로써 부귀함이나 넉넉함이 그림에서 표현된다. 그러므로 아무리 같은 소재라 할지라도 그것을 다루는 방식이 다르면 내용은 달라진다. 이처럼 예술 작품의 형식이 내용을 좌우한다.

모더니즘 미술에서는 화가의 개성적인 표현을 중시한다. 이 시기의 화가들은 대체로 자기만의 독특한 형식을 가지고 있다. 화가의 고유한 형식은 서명과 같은 역할을 한다. 예컨대 굳이 서명을 보지 않아도 누구의 그림인지 알 수 있다. 고흐는 물감을 두껍게 바르는 임파스토(impasto) 기법으로 사물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역동적인 화면을 만들어 냈다. 고흐의 시각에서 세상은, 그에게 실재는 그런 식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화가의 형식은 세상을 읽는 그의 관점이자 사고 양식(mode of thought)이다. 그래서 화가의 수만큼 다양한 세계가 존재하고 그것을 우리는 만날 수 있다.

한편, 포스트 모더니즘의 등장과 함께 미술의 독창적 형식은 이미 철 지난 화두가 되었다. 미술과 미술이 아닌 것의 경계는 벌써 무너졌고, 차용과 복제가 허용되는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앞에서 한 이야기는 시대에 역행하는 듯이 보인다. 그럴지라도 나는 여전히 화가가 형식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모순적이기는 하지만, 물감과 같은 손에 잡히는 것이거나 0과 1과 같은 손에 잡히지 않는 걸 가지고 자기만의 표현언어 제작에 종사한다는 것, 그보다 화가가 하는 일의 본질을 더 잘 설명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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