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명예의 거리(Hollywood Walk of Fame)에서
2017년 2월,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린다는 할리우드 돌비 극장(Dolby Theatre) 근처에서 조디 포스터 플레이트를 발견했을 때 나는 봉준호 감독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2003년 동성로에서 밤늦도록 술잔을 기울이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가 '살인의 추억' 흥행 감독답지 않게 겸손한 그에게 나는 '봉감독님을 분명히 할리우드 아카데미 시상식장에서 뵐 수 있을 듯해요.'라고 말했다.
지금은 없어진 아세아극장에서 진행한 작가콜로퀴엄 영화특강 뒤풀이 자리였다. 내 그 예측은 적중했고, 낮은 목소리로 그때 그가 말한 자신의 영화에 조디 포스터를 픽업하고 싶다던 바램도 아마 지금은 어렵지 않게 이룰 수 있을 것이다.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Hollywood Walk of Fame)에서 봉준호 감독의 이름이 새겨진 별 플레이트를 보는 날도 머지않을 듯하고.
이렇게 섬광처럼 스쳐가며 예측이 되는 일도 있지만 간혹 어떤 일은 시간이 지나서 찬찬히 돌이켜보면 인과(因果)가 선명해지는 경우가 있는데 지금이 그렇다. 당시 LA 게티 미술관에 가기 전 특강과 책, 인터넷 등을 통해 미술관이 세워진 내력을 알고 가긴 했지만, 이 글을 쓰기 위해 기억의 오류라도 있을까 싶어 자료를 찾다가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올 더 머니(All the Money in the World)를 한 번 더 보면서였다.
내가 할리우드 관광을 하고 있던 그즈음 장 폴 게티(J. Paul Getty, 1892~1976)가 미술관을 구상하던 시절을 그린 영화(실제로는 그의 손자 납치사건을 다룬 영화)가 그곳에서 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장 폴 게티는 회개한 스크루지일까
영화 제목 그대로 세상의 모든 돈을 가졌던 세계 최고 재벌 게티가 손자를 납치한 유괴범들과 냉혹한 거래로 시간을 끌면서 손자는 귀가 잘리고 마는데, 그 와중에 그가 출처가 불분명한 라파엘로의 성(聖)모자상을 사들이던 그 장면은 다시 봐도 섬뜩하다.
납치범들에게 줄 손자의 석방금을 깎고 또 깎다가 세금 혜택을 받기 위해 아들에게 연 4%의 이자로 빌려주기까지 한 일이나, 역시 경비 절감을 위해 영국에서 사들인 대저택(서튼 플레이스, 핸리 8세가 엘리자베스 1세의 어머니 앤 불린을 처음 만난 곳)에 놓인 공중전화기 등을 다시 본 것은 영화 다시 보기의 묘미였으나 말이다.
이해할 수 없는 그의 이러한 수전노 행태는 사후 그가 설계해둔 미술관을 위한 거의 모든 재산 신탁과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양의 수집품들, 주차장을 제외한 트램까지 포함한 모든 시설의 일체 무료 개방 등으로 복잡다면한 그의 면모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기증과 후원 없이 개인 소장품과 설립된 게티재단의 작품 구입으로 무료 개방, 운영되는 미술관을 보며 자린고비로 고착된 그의 이미지는 잊게 되고 '돈은 이렇게 써야 한다.'란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LA 말리부에는 그가 살던 저택을 개조해 고대 미술품들을 전시한 정원이 아름다운 '게티 빌라'와 그 넘쳐나는 수집품들을 전시하기 위해 재단이 새로 지어 작품을 이관한 '게티 미술관(The Getty, Getty Center)'은 차로 30분 거리에 있다. 역시 무료로 운영되는 트램에서 내려 건장한 안내원들의 안내를 받아 들어선 게티 미술관은 이탈리아 티볼리산 트래버틴 대리석 외관으로 눈부시게 빛난다.
'백색의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프리츠커상 수상자, 강릉 씨마크호텔, 솔올미술관도 설계)가 설계한 여섯 동의 건물이 'LA 파르테논'이란 별칭으로 불린다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밤이면 건물이 온통 은색으로 보인다.
◆게티 미술관(The Getty, Getty Center)
게티 미술관은 브렌트우드 언덕에 자리해 저 멀리 산타모니카 해변과 어제 다녀온 비벌리 힐스를 비롯한 도심이 내려다보인다. 1997년 개관한 미술관은 총면적 304㎢(92만평)의 광대한 부지에 공사기간 14년, 총비용이 당시 환산으로 1조원이 넘게 들었다니 폴 게티의 30조가 넘었다는 재산이 그의 자손들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관람객인 나로서는 다시 생광스럽게 여겨진다.
줄지어 선 사이프러스 사이로 분수가 물을 뿜고 연못과 미로, 꽃들이 함께 어우러진 중앙정원은 로버트 어윈이 설계했다. 2층 원형 테라스에서 바라본 산중턱의 선인장 정원과 수많은 나무와 꽃들은 압권이다. 역시 세계 어느 곳을 가더라도 건축과 조경은 미술관, 엄밀히 말하자면 소장품들과도 떼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 같다.
젠틸레스키의 '다나에와 황금 소나기',터너의 '모던 로마 캄포바치오', 보우츠의 '수태고지', 메서슈미트의 '찌푸린 남자' 흉상, 루벤스의 '한복 입은 남자'가 거기 있었다. 세잔, 르누아르, 모네, 고갱, 밀레, 로트렉, 드가 등의 인상파 작품들과 18세기 유럽 장식품들이 미술관에 넘쳐났다. 특히 600만 달러로 게티재단이 구입했다는 고흐의 '아이리스' 앞에는 사람들이 끊이질 않는다.
그 중에서도 나는 렘브란트의 '웃는 자화상'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보면 볼수록 서글픈 웃음이다. 죽기 한 해 전 아내와 자식들을 잃고 빚더미에 앉은 사내의 자화상. 그러다가 문득 미술관 입구에 놓였던 폴 게티의 흉상이 오버 랩된다. 부유하였으나 가족들에게도 경멸받은 남자, 어쨌든 쓸쓸한 남자들이다.
모네의 '눈 오는 날의 건초 더미' 앞에서 또 한참 서성인다. 보는 각도에 따라 자꾸 그림이 달라진다. 단순한 붓 터치로 툭 건든 지푸라기들이 저마다의 빛깔로 말을 걸어온다. 시인 김춘수의 이름을 불러주면 하나의 의미가 된다는 시 '꽃'을 알 듯도 하다. 모네의 또다른 그림 '루앙 대성당'도 그렇다. 노르망디의 노랗고, 푸르고, 짙고 연한 보라와 회색이 어렴풋한 성당의 형체에 일렁거린다.
인생의 모든 것이 일렁거리는 일루전이라는 건가. '물감으로 빛을 창조해낸 자'라는 별명이 이보다 어울릴 수 없다. 파리 오랑주리에서의 그 감동만큼이나 소품이지만 여운이 크다.
수많은 동유럽풍 이콘화들과 곳곳의 고대 조각들부터 자코메티, 드브리스의 작품들, 은공예, 유리공예 그리고 유럽식 궁전을 재현한 방들을 비롯해 루이 14세의 초상화까지 며칠을 드나들며 보아도 다 볼 수 없을 것 같은 작품들에 멍해져 바깥으로 나온다. 곳곳이 환상적 풍경들이다.
1세기 로마식 기둥이 서 있는 테라스엔 유리지붕을 얹은 카페가, 눈길을 무심코 쌓아올린 듯한 거대한 벽 아래로 돌리면 탁자와 의자가 놓인 비스트로가 있다. 물이 흐르는 시내와 푸른 하늘, 엽록색 잎을 단 나무들 다시 그 너머 해안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물론 그 풍광이 보이는 곳마다 풀밭과 틈새 정원들이 있어 각양각색의 외국인들이 누워서 일광욕을 즐기거나 사진을 찍어대기 여념 없다.
전시관과 정보 연구, 미술품 복원 및 보존과학연구소, 예술교육센터, 게티 장학금 프로그램, 미술사와 인문과학연구센터 등 여섯 동 모두 통로와 테라스로 연결되어 어느 곳에서든 연속적으로 통한다. 그러다가 문득 사무실 연필깎이까지 불필요하다며 물어오게 했다는 생전의 폴 게티가 지금의 이 미술관을 봤다면 과연 어떤 평가를 했을까 우스운 궁금증이 들더라는 것이다.
시인 박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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