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평생 이런 날이 있을까 싶었습니다. '빨갱이'라는 이름에 갇힌 우리 아버지의 유해를 수습할 생각도 못 하고 살았습니다."
24일 오후 2시 대구 달성군 가창면 용계리에 있는 '10월 항쟁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위령탑'. 10월 항쟁 민간인 희생자 유족회장인 채영희 씨는 절을 올리면서 연신 눈물을 닦았다. 26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과 이별한 아버지의 한을 이제야 달랜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대구 가창골 유해발굴 개토제'는 이렇게 시작됐다.
위령탑이 세워진 용계리 일대는 '가창골 학살' 피해자들의 유해가 묻혀있을 가능성이 높은 곳이다. 1950년 7월에 두 차례에 걸쳐 벌어진 가창골 학살은 당시 대구형무소에 상주하던 대구경북지구 CIC(방첩대)와 3사단 22연대 소속 헌병대, 경찰 등이 최소 1천400명 이상의 대구형무소 재소자와 보도연맹원 및 예비검속자들을 살해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건이다.
이날 개토제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화위)가 가창골 학살 민간인 피해자 유해 발굴을 시작하기 전 피해자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마련했다. 10월 항쟁 유족회원과 시민 등 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일본군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도 유족회 회원으로 함께해 눈길을 끌었다.
채영희 유족회 회장은 "우리 아버지들은 역사의 현장 속 목숨을 뒤로하고 민주평화를 외치셨던 분들이다. 대구의 자랑스러운 역사이기도 하다"며 "후손들에게 정확하고 진실한 역사를 전달하는 게 우리 유가족들의 바람"이라고 말했다.
임나혁 진화위 법무·화해팀 전문위원은 "이곳은 73년 전 적법한 절차 없이 재소자들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는 비극적인 사건의 현장이자 화해와 미래를 위한 토대가 돼야 할 장소"라며 "유해 발굴은 진실 규명과 희생자의 넋을 기리는 목적에서 진행된다"고 했다.
진화위는 인근 마을주민들과 과거 가창댐 건설에 투입된 인부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가창댐 바로 아래에 위치한 가창면 용계리 토지(225㎡)를 유해 30여 구가 매장된 장소로 특정했다. 본격적인 발굴 작업은 25일부터 시작돼 2~3주간 이어질 예정이다.
발굴 담당 기관인 한국선사문화연구원의 우종윤 원장은 "현지 여건이 썩 좋은 편은 아니지만, 하나의 유품, 하나의 뼛조각이라도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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