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윤석열과 기시다 후미오

조두진 논설위원
조두진 논설위원

우리 국민 상당수는 '일본이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는다'며 분노한다. '일본은 반성하지 않는데, 윤석열 대통령이 면죄부를 줬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 국민들이 간과하는 점도 있다. 일본 전후 세대들이 '과거사'를 잘 모른다는 사실이다.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을 방문한 일본 학생들 대부분은 '한국인이 왜 히로시마에 와서 죽었나?' 의아하게 생각한다. 일본의 한반도 식민 지배를 모르거나, 피상적으로 알기에 한국인의 피해와 반성 요구를 납득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구를 중심으로 태양이 도는 것을 매일 눈으로 본다. 반면 태양을 축으로 지구가 돌고 있음을 직접 보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 설명을 듣고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역사도 마찬가지다. 현대인의 눈에 과거사는 보이지 않는다. 과거사를 설명하고 알리려는 노력은 않고, 반성하라고 윽박만 지른다. 과거사를 모르는데, 한국인의 분노를 납득할 수 없는데, '죽창가'를 부르며 위협하는데, 반성하겠는가.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문제라면 즉각 항의함으로써 제지할 수 있겠지만 과거사는 다르다.

반성은 인간의 양심 영역이다. 강요한다고 진정한 반성이 생기지는 않는다. 강요에 못 이겨 내놓는 겉치레 반성과 사과가 무슨 의미가 있나. 한국 스스로 겉치레 반성을 요구하면서 진정한 반성을 안 한다며 분노하고, 또 반성을 요구하니 일본에서 '지겹다'는 반응이 나오는 것이다.

일본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다. 일본 국민 다수가 식민 지배를 반성하고, 한국인의 피해에 공감하면, 정치인들은 그 뜻을 따른다. 다수 일본 국민이 혐한 감정을 분출하면 정치인은 거기에 편승한다. 우리가 할 일은 '죽창가'로 '혐한 감정'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을 알림으로써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반일과 혐한이 지배하는 곳에 반성과 용서의 싹은 자라지 않는다.

TV로 중계된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히로시마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 참배를 보면서 한국인 원폭 피해를 처음 알게 된 일본인도 많을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일본의 한반도 식민 지배 작동 방식을 알아갈 것이다. 한·일 정상의 한국인 위령비 참배는 그래서 의미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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