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그립습니다] 채홍호 전 대구시행정부시장의 어머니 고 권태련 씨

'잘 있나? 너들 잘 있는 게 내 행복이다'…"언제나 가족들 칭찬하고 세워주는 데 아낌이 없으셨던 분"

채홍호(사진 오른쪽) 전 대구시행정부시장이 어머니 고 권태련 씨와 함께 찍은 셀카. 채홍호 전 대구시행정부시장 제공.
채홍호(사진 오른쪽) 전 대구시행정부시장이 어머니 고 권태련 씨와 함께 찍은 셀카. 채홍호 전 대구시행정부시장 제공.

푸르던 신록이 어느덧 짙은 녹음으로 변해가고 있다. 세월이 빠르게 흘러가고 있는 것이 무상하게 느껴진다. 잠시 멈추거나 천천히 지나가지 않는 것이 다소 아쉽기도 하다. 어머니를 저 먼 천국에 보내드린 때가 엊그제 같은데, 아직도 그 슬픔과 아쉬움이 한껏 남아 있는데 벌써 네 달이나 지나갔다. 살아 계실 때는 잘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그리움이 아련하게 되살아 난다.

세상의 여느 어머니처럼 나의 어머니가 보여주신 자식과 가족에 대한 사랑과 헌신은 남다르시다. 마치 김혜자 선생님이 주연한 영화 "마더"에서 아들 도준(원빈 역)을 구하기 위해 모든 것을 거는 어머니를 생각나게 한다. 그 정도까지 절박한 사정은 아니었지만 어머니는 자신의 삶에 닥쳐온 모든 어려움을 묵묵히 견디시면서 주어진 모든 일을 감당하셨다.

어머니는 하루 종일 땡볕에서 일하시고 땔감을 구하기 위해 강을 건너기를 마다하지 않으셨다. 너무 일을 많이 하신 탓에 손마디와 발가락은 굵어지다 못해 휘어지셨다. 일하는 게 인이 박히셨는지 어머니는 몸 상태가 허락해서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으실 때까지 밭에 나가 일을 하셨다. 그렇게 일하시다 마지막엔 당신과 삶을 함께한 흙으로 돌아가신 것이다. 조기 은퇴의 시대에 어찌보면 누구보다 행복하게 사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집안의 화평을 지키기 위해 무던히 애쓰시던 어머니셨다. 언제나 가족들을 칭찬하고 세워주는데 아낌이 없으셨다. 며느리와 목욕탕에 같이 가시면 주위 사람들을 붙잡고 "야가 우리 며느리래요"라고 말씀하시며 며느리를 띄워 주셨다. 안부 전화를 드리면 언제나 "잘 있나? 너들 잘 있는 게 내 행복이다"라시면서 당신을 주장하지 않으셨다.

왜 못마땅한 일이 없었겠으며 불편한 일들이 없으셨겠는가? 왜 다른 시어머니처럼 이웃이나 친구들에게 가족의 불만을 말씀하고 싶지 않으셨겠는가? 그래도 끝까지 참고 또 참으셔서 한 집안의 화평을 일구어 나가셨다.

어머니는 침묵의 미덕을 잘 이해하시는 분이셨다. 여성이 하루 사용하는 어휘 수는 이만 오천 단어가 남성의 두배가 넘는다고 한다. 여성들의 관계 지향적인 특성이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겠지만, 아마도 유교적이고 남성 위주의 팍팍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꼭 필요했던 것일수도 있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말씀이 적으셨고 들어 주기를 좋아하셨다. 불편한 대화는 미소로 대신하시는 편이셨다. 약간은 어리숙하게 보여도 주위에는 친구분들이 많으셨다. 내 말 들어 주는 사람이 없다고 하소연하는 시대, 내 이야기 하고 싶어서 악을 쓰는 요즈음 어머니를 다시 생각나게 한다.

그런 어머니가 이제 우리 자식들 곁을 떠나 천국으로 가셨다. 가족을 위해 몸과 마음을 희생하신 어머니, 집안의 평화와 자식의 행복을 늘 생각하셨던 어머니, 말씀이 많지는 않으셨지만 늘 남의 말을 잘 들어주시던 어머니가 그립다. 이제는 우리 곁을 떠난 그 곳에서 힘든 일 없이, 마음 아프거나 불편한 일 없이 늘 즐거운 일만 가득하시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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