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 소설가의 마감식: 내일은 완성할 거라는 착각

염승숙 ·윤고은 지음/세미콜론 펴냄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염승숙 , 윤고은 지음/세미콜론 펴냄
염승숙 , 윤고은 지음/세미콜론 펴냄

'다른 원고 노동자는 마감 앞에서 어떨지 늘 궁금했다.'

백수린 소설가가 쓴 이 책의 추천사 서두인데, 기자가 이 책을 덥석 집은 것도 저 한 문장 때문이었다. 책의 제목 또한 매력적이다. '내일은 완성할 거라는 착각'. 기자가 몸담고 있는 언론 세계에서 이 단 두 문장을 보고 키득거리지 않을 이가 있을까.

예상대로 늘 마감에 쫓기며 사는 두 소설가의 이야기다. 여기에 '먹을거리'라는 장치를 통해 소설가의 마감 풍경을 담았다. 출판사 세미콜론에서 선보이는 음식 에세이 시리즈 '띵'의 스물두 번째 주제인 이 책은 '소설가의 마감식'이다.

주인공은 두 명. 소설가이자 문학평론가 염승숙 작가와 소설가와 라디오 DJ로 활동하고 있는 윤고은 작가다. 소설가라는 같은 본업을 가졌으나 전혀 다른 생활 반경에 놓인 두 사람의 마감 풍경이 엇갈리게 전개된다. 같은 단어를 놓고도 완벽히 새롭게 펼쳐지는 두 방향의 사건 전개를 비교하며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한 편의 소설이 완성돼 가는 동안 여러 영감과 먹을거리에 대한 이야기들이 면밀하게 담겼다.

달걀, 초콜릿, 포도, 보이차, 홍차, 밀키트, 고구마, 바나나, 냉이, 대파…. 책에서 언급되는 먹을거리는 미처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소설의 원료가 돼 주는 것은 때로 고자극 탄수화물을 넣어야 소설을 계속 쓸 힘이 생기기도 하지만 마감이 절박할 때는 커피조차 입에 넣기 쉽지 않다. 배 속을 비우고 아무것도 먹지 않는 '공복' 상태 역시 집필을 위한 준비단계가 된다.

먹는 행위뿐만 아니라 소설가의 일상도 모든 순간이 사건으로 이어진다. 차를 우릴 물을 끓일 때, 밀키트를 레시피 순서에 따라 조리할 때, 세발자전거 페달을 굴리는 아이의 모습을 바라볼 때, 횡단보도 앞에서 초록불을 기다릴 때, 줄이 긴 맛집 앞에 서 있을 때, 심지어 매일 무심결에 냉장고 문을 열 때조차 사건들이 모여 소설가의 삶이 되고 소설 그 자체가 된다. 이런 소소한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찾아오는 각종 사건이 웃프다. 가슴 찡한 순간도 있지만 두 작가의 이야기는 시종일관 유쾌하게 이어진다.

먹고 삶을 살아내는 과정에서 독자는 자연스럽게 두 소설가가 각각 소설을 집필하는 방식, 이들이 삶을 운용하는 방식까지 엿볼 수 있다. 언제 어디서 영감이 떠오르는지, 창작의 고통이 어떤지 등 소설 뒤 소설가를 보는 셈이다. 많은 독자들이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세계를 간접 경험해보기에 충분한 책이다.

'마감이란 결국 다시 쓰고 고쳐 쓰면서, 자기 작품에 확신을 갖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므로 마감을 끝낸다는 건 완성된 초고를 몇 번이고 가다듬고 매만지는 행위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통해 거짓 없는 아름다움과 직면하려는 태세와 같다고 생각해본다.'

그렇다고 소설 창작의 고통과 기쁨만 엿보는 건 아니다. 소설가들은 마감 앞에서 '딱 하루만 더 있다면 세상 완벽한 원고를 만들 수 있을텐데'라고 생각하는데 이들처럼 일을 하는 우리 모두도 '딱 하루만 더 있다면'하는 아쉬움과 후회를 안고 산다. 그렇지만 소설가나 우리나 모두 안다. 늘 아쉬움이 남지만 소설가와 우리는 모두 최선을 다해 이미 훌륭한 소설을 혹은 일을 준비했음을 말이다. 이 책은 자신에게 주어진 책무를 부여잡고 전문성을 발휘해 조금이라도 더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내고자 고군분투하고 있는 모두에게 위로를 건네기도 한다.

백 소설가가 추천사에서 "이 책은 일을 하며 매일 회의와 보람, 불안과 자부를 오가는 모두에게 풍성한 만찬이 돼 줄 것이다'라고 말한 이유도 이와 같다. 이 추천말처럼 누구에게나 적용 가능한 인생의 진리가 이 작은 책에 담겼다. 180쪽, 1만2천원.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