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윤희숙 칼럼] 독극물 정치에 보내는 국민 고지

전 국회의원

윤희숙 전 국회의원
윤희숙 전 국회의원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투기는 방사능 테러다.'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발언할 때 보이는 배경막 문구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한술 더 떠 '우물에 독극물을 퍼 넣는 것'이라 했다. 주변국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더라도 우리만 '독극물론'을 고집해 방류를 막을 수 있다는 걸까? 독극물이란 증거를 대라고 국제사회가 요구하면 이재명 대표는 내놓을 증거들이 준비돼 있는 걸까? 절대 아닐 것이다. 그저 돈 봉투와 코인 사태로 궁지에 몰린 자신과 민주당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선 친일 몰이 선동밖에 길이 없다고 생각할 뿐이다.

문제는 이 대표의 독극물론이 미칠 해악이다. 곧 발표될 국제원자력기구(IAEA) 보고서가 오염수 안전성을 뒷받침할 경우 우리를 포함한 주변국들의 입장이 확정될 것이고, 방류가 시작될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매우 높다. 그런데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마음이 받아들이는 것은 다른 문제다. 이 대표가 쏘아 올린 독극물론이 우리 뇌리 어딘가에 상당 기간 박혀 있을 것이라는 뜻이다.

비록 찜찜해도 방류는 우리만으로 어쩔 수 없는 문제이지만 수산물을 사 먹을지 말지는 온전히 개인의 선택이다. 저 많은 민주당 정치인이 독극물 바다라 외치는데 굳이 회를 사 먹을까? 기억이 희미해질 때까지 적어도 몇 달 아니 몇 년은 수산물 소비가 급감할 게 불을 보듯 뻔하다. "반일 감정을 이용해 괴담과 가짜 뉴스로 재미를 보려는 정치인들이나 사기꾼들, 이들 말대로라면 오염수가 방류되는 6월부터 한일 횟집은 모두 문닫아야 할 것"이라는 게 군산의 횟집 사장 함운경 씨의 한탄이다.

민주당의 '독극물론'은 그래서 악질이다. 과학적 증거를 확보해 주변국들 입장을 바꾸고 방류를 막지도 못할 꺼면서 애꿎은 우리 어민만 잡게 될 말들을 남발하기 때문이다. 오염수가 방류될 경우 불필요한 피해를 최대한 줄이는 게 정치인의 임무일 텐데 왜 이들은 피해를 오히려 증폭시킬 언행을 하고 있을까? 그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기 때문이다. 죽창가를 부르고 한일전을 외쳤던 것도 마찬가지다. 과거 운동권 시절 외치던 반미·반일의 가락을 지금의 급변하는 국제정치와 경제질서 속에서 어떻게 바꿔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기 때문이다.

그런 데다 과거 민주화 투쟁으로 쌓은 도덕적 우위도 스스로 다 허물었다.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돈 봉투를 돌리며 매표를 하고, 고위 공직자가 24시간 돌아가는 코인 시장에 눈을 박은 채 상임위에 앉아 투자를 한단 말인가. 공직자 윤리는커녕 보통의 국민이 상식적으로 지키며 살아가는 도리마저 엿 바꿔 먹었다. 그러니 '세계를 내다보고 미래를 그리는 작업?' '현재를 돌아보고 굳은살을 잘라내 미래를 준비하는 작업?' 이들은 그럴 능력도 없고 의지도 없다.

분명한 것은 이렇게 무능하고 부도덕한 정치세력이 더 이상 지속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도덕적 파산을 맞은 이들 민주당 주도층이 쓸려 나간 새판 위에서 민주당의 내부 혁신이 됐든, 분당과 창당이 됐든, 더 나은 정치세력들이 경쟁하는 모습을 고대한다.

그런데 이쯤에서 많은 이들의 머리에 떠오르는 질문은 '여당은? 국민의힘은 뭐라도 달라?'일 것이다. 바닥까지 무너진 민주당과 거의 같은 수준의 지지율로 엎치락뒤치락한다는 사실이 말해 주는 바는 무엇일까? 여당 역시 국민의 기대와 신뢰를 받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이고, 지금 우리 정치의 위기가 단지 민주당 사망 선고만으로 해소될 수 없다는 것이다.

책임 있는 정치세력이라면, 왜 우리나라가 IAEA 보고서의 검토 결과에 따라 다른 주변국들과 방류 의견을 같이할 수밖에 없는지, 왜 이재명식 생떼를 부리는 것보다 그것이 나은 결정인지를 국민에게 차분히 설득해야 한다. 역량이 있는 정치세력이라면, 지난 30여 년간의 세계 질서가 새로이 재편되는 지금, 우리가 누려 왔던 기회 중 무엇을 잃었고 무엇을 새로 찾아야 할지 그림을 그려 국민에게 희망을 줘야 한다. 정직한 정치세력이라면, 그동안 우리가 무엇을 게을리해 스스로의 발등을 찍었는지 솔직히 털어놓고 미래를 향해 국민의 마음을 모아내야 한다. 진정성 있는 정치세력이라면 정치인의 윤리가 무엇이어야 하는지 밝히고, 자기 당내 썩은 곳부터 도려내겠다는 헌신의 맹세를 바쳐야 한다.

이게 바로 국민만 바라보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여야의 정치에 국민이 보내는 고지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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