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화요 초대석] 강해지는 것 말고 선택은 없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일본 히로시마 G7 정상회담 이후 미국의 대중 전략에 묘한 스탠스 변화가 있다. 그간의 대중국 정책이었던 탈중국 정책을 디커플링(Decoupling)이 아니라 디리스킹(De-risking)이라고 말 바꾸기를 하면서 바이든 대통령, 설리반 안보담당, 그리고 레이몬드 상무장관까지 나서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언급하고 나섰다.

중국은 미국이 일본과 네덜란드까지 동원해 첨단 반도체 장비와 기술에 대해 봉쇄를 실시하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5월 26일 미국 APEC 상무장관회담에 참석한 중국 상무장관이 chip4 동맹의 일원인 한국에 반도체 산업망과 공급망 영역에서의 대화와 협력을 요청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중국의 긴박감의 표현이다. 한국은 외견상으로는 미중 양쪽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았지만 뒤로는 강한 압박을 받는 형국이 벌어졌다. 미국을 따르면 돈이 울고, 중국을 따르면 주먹이 두렵다.

지금 한국 경제에서 대중 무역적자와 반도체 수출 감소가 가장 큰 문제다. 최대 무역흑자를 보던 지역에서 적자가 나면 적자를 흑자로 반전시킬 전략이나 적자폭을 줄이는 노력이나 정책이 나오는 것이 정상인데 한국에서는 중국은 끝났다는 얘기만 하고 있다.

중국의 리오프닝 이후에도 한국의 대중 적자가 지속되자 한국에서는 유럽 유명 매체인 FT를 인용해 중국이 뿌리부터 썩었다는 얘기부터 중국의 미래는 암울하다는 전망이 넘쳐난다. 그러나 경제는 감정을 배제하고 냉정하게 봐야 한다.

뿌리부터 썩은 나라 중국과 경제협력과 대규모 투자를 하겠다고 유럽의 맹주 독일과 프랑스의 총리와 대통령은 대규모 기업인 사절단을 끌고 중국으로 날아갔다. 유럽의 경제성장률은 0.8%로 예상되는데 중국은 경기 부진이라는데도 1분기에 4.5% 성장했다. 4.5% 성장하는 나라가 앞날이 암흑이라면 1.5% 성장하는 한국이나 0.8% 성장하는 유럽은 어떻게 봐야 할까? 296%에 달하는 중국의 부채비율이 문제라고도 하지만 416%인 일본, 340%인 프랑스, 307%인 캐나다는 문제없을까?

국제사회에는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 돈 되면 동맹이고 돈 안 되면 친구도 버리고 필요하면 동맹도 죽인다. G7이라고 하지만 지도자에 대한 지지율이 반대보다 높은 나라는 이태리 단 하나밖에 없다. GDP 성장률은 평균 0.8%, 부채비율은 288%나 되는 나라들의 모임이다 보니 제 앞가림이 급해 맨날 결의만 했지 실행이 없다.

G7이 중국을 공급망에서 배제시켜 좌초시키자는 결의를 했지만 독일과 프랑스는 딴짓하고 있다. 미국도 중국을 완전히 배제시키자는 것이 아니고 리스크만 줄이는 것이라고 앞뒤 안 맞는 얘기를 한다. 병 주고 약 주고는 미국 맘대로다.

한국은 미국의 공급망 동맹에 줄 서라는 미국의 요구에 반도체, 배터리 동맹에서 앞장섰고 미국의 대만 정책에 동조했다가 중국으로부터 거센 반발을 받았다. 중국이 미국 마이크론 반도체칩에 대한 제재를 했다. 미국에서 한국이 마이크론의 공백을 메우면 안 된다는 요구까지 하자 한국은 당황스럽다. 미국은 이제 America First도 아닌 'America Only'다.

미·중과 경제 문제에 있어서 한국은 냉정함이 필요하다. 코로나 이후 기술이 갑(甲)이었던 시대는 가고 공장과 장비 소재가 갑인 시대가 왔다. 시장과 원재료는 중국에 있고 기술은 미국에서 온 한국, 중국에서 하차하고 미국의 공급망에 올라타는 것이 반드시 능사가 아니다. 반도체 원재료의 43%, 리튬 배터리 소재의 64%가 중국으로부터 온다. 반도체 수출의 40%가 중국이기 때문이다.

미·중이 절절히 원하는데 갖지 못하는 것을 가지고 있으면 당당할 수 있다. 반도체에서 미국은 기술은 있지만 공장이 없고 중국은 공장만 있고 기술이 없다. 대미 수출 흑자가 커지고 있지만 대중국 배터리 소재 수입이 막히면 사상누각이다. 한국, 미중 관계에서 반도체와 배터리의 기술과 생산에서 더 강해지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다.

그리고 국가의 이익에 따라 쉽게 말 바꾸기를 하는 강대국들에 대해 신중하게 대할 필요가 있다. 상대가 내 말을 듣게 하려면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닌 상대가 듣고 싶은 말을 하면 직방이다. 막말하는 나라는 속으로 아프기 때문이다. 속이 아픈 나라와 같이 말싸움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큰 실익이 없다면 굳이 아픈 곳을 건드릴 필요는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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