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서구 평리동에 거주하는 학부모 유모(37) 씨는 최근 초등학생 1학년 자녀를 위해 수성구와 달서구로 원정 체험학습을 다니고 있다. 캠핑이나 요리 수업 등 자녀와 함께 학습할 수 있는 강좌를 찾아봤지만, 서구에는 마땅한 문화시설이 없었던 탓이다.
유 씨는 "서구 안에서도 재개발이 이뤄지는 평리동 일대만 학원가가 좀 더 있는 수준이고, 전반적으로 어린이집과 유치원 같은 보육시설이나 문화시설이 턱 없이 부족하다"며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꼭 수성구가 아니더라도 지금보다 더 나은 환경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고 말했다.
저출생 고령화가 가속화하며 인구 감소 문제가 심화하는 가운데, 대구 안에서도 구‧군별 인프라 격차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여러 지표에서 가장 낙후한 서구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각종 지표로 드러난 가장 낮은 선호도
대구시의회의 용역을 받아 지난해 12월부터 '저출생 정책 벤치마킹을 통한 대구지역 초저출생 대응방안'을 연구하고 있는 대구시행복진흥사회서비스원은 지난 3월 27일부터 지난달 7일까지 지역의 20~30대 청년 400명에게 '자녀 양육 희망 지역'을 물었다. 온라인으로 이뤄진 이번 설문 조사 결과 수성구(36.0%)가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달서구(17.0%)와 서울·수도권(11.5%)이 그 뒤를 이었다.
반면 서구를 희망한 청년은 2.8%에 불과해 지역 내에서 가장 낮은 선호도를 보였다. 서구에 대한 낮은 선호도는 합계 출산율 등 각종 지표로도 드러난다. 대구의 합계출산율은 달성군(1.14명)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 1명 미만인데, 그중에서도 서구가 0.47명으로 최하위였다. 지난 1월 발표된 '2020년 대구시 구·군별 지역총생산(GRDP)'에서도 서구의 실질총생산이 3조6천억원으로 남구(2조8천억원) 다음으로 가장 낮았다.
학부모들은 서구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지 않은 이유로 의료와 교육문화 등 인프라 부족을 꼽았다. 서구 비산동에서 미취학 아동 삼남매를 키우고 있는 권모(32) 씨는 "출산 가능한 산부인과가 없어서 아이를 낳으러 달서구에 가야 했다"며 "첫째 아이가 다섯 살인데 미술은 중구에서, 발레는 수성구에서 배우고 있다. 서구에는 초등학생이 다닐 학원은 있어도 유아를 보낼 수 있는 학원이 아예 없다"고 하소연했다.
서구에 살고 있는 청년들도 지역에 남아있을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서구 평리동에 있는 한국폴리텍대학 대구캠퍼스 학생 A(22) 씨는 "창원에서 올라와 1년 반 정도 생활했는데 서구는 기본적으로 놀거리가 많이 없고 문화생활을 즐길 만한 곳이 별로 없다"며 "교통도 불편하고 정착할 이유가 없어 졸업하면 다른 지역으로 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같은 학교 1학년 학생 B(20) 씨도 "친구들이나 선배들 중 서구에 살려고 하는 사람은 없다"며 "서구엔 이렇다 할 기업도 없고, 또래 청년들을 찾아보기도 힘들다. 졸업 후에 서구에 남아 있을 생각은 없다"고 했다.
◆"주거환경 개선사업 시급"
전문가들은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하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도시 환경 개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재원 대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문화, 교육 여건, 생활 인프라 여건이 다른 지역보다 낙후하면 사람들이 떠날 수밖에 없다"며 "편의시설, 주민시설, 교육 여건을 충분히 확충하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신형진 경북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역시 "서구가 소위말해 학군이 안 좋다보니 대학 진학을 앞둔 학부모들이 다른 곳으로 이사 간다. 청년들도 지역을 떠나가면서 악순환이 반복된다"며 "서구 안에서도 낙후한 동네를 대상으로 한 핀포인트 주거환경개선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서구청은 교육문화 인프라 확충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최근에는 실내 수영장과 어린이 놀이터, 장난감 도서관 등을 갖춘 복합 여가 시설인 '헬스&키즈 드림센터'를 짓기 위해 사업 계획을 마련하고 있다.
서구청 관계자는 "교육 인프라를 마련하고 문화 공연을 유치하는 등 다방면으로 정주 환경 개선에 신경 쓰고 있다"며 "앞으로도 취약계층 주거 환경을 개선하는 등 적극적인 정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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