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이해찬의 단견(短見)

정경훈 논설위원
정경훈 논설위원

"에드바르트 베네시(체코슬로바키아 대통령)를 위해 프랑스인이 죽어야 하나?" 1938년 히틀러가 체코 서부의 독일인 다수 거주 지역인 주데텐란트를 합병하겠다며 체코와 그 동맹국 프랑스를 위협했을 때 프랑스의 좌파 평화주의자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구호다.

히틀러가 발트해에 면한 폴란드 항구도시로, 원래는 독일 영토였으나 1차 대전 후 베르사유 조약에서 '자유도시'로 지정된 뒤 폴란드의 영향력하에 있던 단치히(폴란드 지명은 그단스크)의 독일 합병을 요구했을 때도 비슷한 구호가 나왔다. "왜 단치히를 위해 죽어야 하나?"

당시 프랑스 지식 분자들은 이런 비겁함을 지식인다운 것으로 여겼다. 이를 미국의 경제학자인 토머스 소웰은 '하루 단위 합리주의'라고 비판했다.('지식인의 역할은 무엇인가') '단기적으로는 타당할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예상하지 못한 파국적 결과를 초래할 단견'이란 의미이다.

이런 '하루 단위 합리주의'에 따라 프랑스는 영국과 함께 주데텐란트를 독일에 넘겨주는 '뮌헨 늑약'에 합의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전쟁을 피하는 최선책으로 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착각이었다. 히틀러는 주데텐란트는 물론 체코슬로바키아 전체를 점령해 버렸다. 그리고 이듬해인 1939년 폴란드를 침공해 2차 대전에 불을 댕겼다. 그다음 타깃은 프랑스였다. 프랑스는 6주 만에 항복했다. 그 과정에서 프랑스는 체코를 버린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독일은 체코 점령으로 체코제 무기를 대거 획득했는데 프랑스 침공에 투입한 체코제 탱크는 독일이 동원한 탱크 전체의 10%에 달했던 것이다.

"왜 우리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말려들어 가야 하나"라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의 발언은 이런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26일 당원 대상 강연에서 "우크라이나는 우리가 신세 질 게 아무것도 없는 나라"라며 이같이 말했다. 러시아가 보복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우크라이나에 포탄 지원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러시아가 보복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게 무서워 포탄 지원을 하지 않으면 우리는 '이기주의에 매몰돼 침략 전쟁을 못 본 체하는 국가'로 찍히는 더 큰 손실을 예약할 수도 있다. 우리도 70년 전 '우리에게 신세 질 게 없는' 우방국의 도움으로 적화(赤化) 위기를 벗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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