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리의 한 마디는 또 현실이 됐다. '서울체크인'에서 우연찮게 모인 김완선, 엄정화, 보아, 화사에게 "여가수 유랑단을 하면 어떻겠냐"고 했던 것이 실제 '댄스가수 유랑단'이라는 프로그램이 됐기 때문이다. 기대와 우려가 겹쳐지는 이 프로젝트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이효리가 김태호 PD를 만나면…
MBC '놀면 뭐하니?'에서 이른바 싹쓰리 프로젝트를 진행 중에 이효리가 엄정화, 제시, 화사와 함께 환불원정대를 만들고 유재석이 매니저를 하면 재밌겠다고 한 말은 곧바로 현실이 됐다. 어딘가 환불 요청하면 잘 해줄 것 같은 센 이미지의 이들 여가수들이 뭉쳐 '환불원정대'라는 프로젝트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싹쓰리 프로젝트에서 린다G라는 부캐로 활동했던 이효리는 환불원정대에서는 천옥이라는 부캐를 입었다. 그리고 이들은 2020년 10월 'Don't Touch Me'라는 곡을 발표해 음원차트와 음악방송을 휩쓸었다.
이런 일이 또다시 벌어졌다. 티빙 오리지널 예능 '서울체크인'에서 즉흥적으로 이뤄진 브런치 모임에서 이효리가 이 날 만난 김완선, 엄정화, 보아, 화사에게 "여가수 유랑단을 하면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꺼냈고, 이들이 김완선의 집에 모여 집들이를 하며 수다 꽃을 피우면서 어딘가 이 한 마디가 또 다시 현실이 될 거라는 예감을 갖게 만들었다. tvN '댄스가수 유랑단'은 그렇게 탄생했다.
사실 '서울체크인'이라는 프로그램 역시 이효리가 싹쓰리 프로젝트를 할 때, "나도 서울 가고 싶어"라고 했던 말 한 마디에서 비롯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제주도 소길댁으로 지내며 유기견 봉사를 하며 조용하고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이효리는, 때때로 그와는 정반대의 도시의 화려한 삶을 꿈꾼다는 걸 솔직하게 드러내곤 했다. 그래서 MAMA 행사에 맞춰 서울에 와서 활동하는 이효리의 화려한 모습을 리얼리티쇼로 담아낸 것이 '서울체크인'의 시작이었다. 물론 그 안에는 그런 화려함과는 또 상반되는 인간적인 면모들이 지인들을 찾아가 만나는 과정을 통해 담겨졌지만, 이러한 화려함과 소박함을 오가는 모습이 이효리의 매력이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놀면 뭐하니?'의 싹쓰리 프로젝트에서 환불원정대가 현실화됐고, 또 여기서 시작한 '서울체크인'에서 '댄스가수 유랑단'이 시작됐다. 이효리가 무심코 던진 한 마디가 현실이 되며 끊임없이 새끼를 치는(?) 이런 방식은 그 아이디어를 낸 장본인이 이효리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긴 하지만 동시에 이건 김태호 PD의 프로그램 제작 방식이기도 하다. 이미 '무한도전' 시절부터 누군가의 한 마디를 계기로 '일을 벌이는' 것이 그 방식이었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알래스카에서 김상덕씨 찾기' 프로젝트 같은 것이다. 유재석이 방송 도중 농담으로 해물칼국수 비법을 '알래스카의 김상덕씨'에게 전수 받았다고 언급한 것이 일이 커져 실제 알래스카로 가서 김상덕씨를 찾는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이처럼 김태호 PD는 누군가 툭 던진 한 마디를 허투루 보내지 않고 프로그램화하는 것으로 다소 황당하지만 그것을 통해 웃음과 감동까지 전하는 시도를 성공적으로 해온 바 있다. '무한도전'과 '놀면 뭐하니?'를 통해 유재석과 함께 했던 이러한 상상의 현실화를 이제 김태호 PD는 '서울체크인'이나 '댄스가수 유랑단' 등을 통해 이효리와 시도하고 있다.

◆유재석과는 다른 이효리 스타일
그렇다면 김태호 PD가 선택한 이효리의 예능 스타일은 유재석과는 뭐가 다를까. 유재석은 우리가 흔히 '유느님'이라고 부를 정도로 출연자들의 특성을 정확히 파악하고 짧은 시간에도 그들을 캐릭터화해 주목하게 만드는 능력의 소유자다. 그래서 그와 함께 예능 프로그램에 들어온 이들은 대부분 저마다의 캐릭터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인다. 물론 이효리 역시 함께 하는 출연자들에 대한 배려가 몸에 배어있는 인물이다. 그래서 '댄스가수 유랑단'에서도 언니들인 김완선, 엄정화와 동생들인 보아, 화사의 중간에 서서 단장을 맡은 이효리는 위아래에 맞는 배려를 선보인다. 언니들을 여전히 멋진 레전드로 세우면서, 어린 나이에 함께 활동했던 보아의 모습을 보면서는 뭉클함에 눈물을 숨기지 않는다. 또 화사에게는 지금 걸어가는 길들이 저 언니들이 만들어내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그런 순간들임을 환기하며 현재를 충분히 즐기라고 얘기해준다. 이처럼 유재석만큼 프로그램을 이끌어가며 출연자들을 하나하나 배려하는 모습은, 이제 지방을 다니며 그들에게 공연을 요청하는 곳에서 무대에 서야 하는 '유랑단'이 준비해야 하는 많은 것들에 자신만이 아닌 다른 무대들까지 세심하게 챙기는 모습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유재석과 확연히 차별화되는 이효리만의 스타일은 리얼리티쇼에 최적화된 솔직한 모습이다. 이효리는 보다 자연스러운 자신의 일상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편이다. 가족이나 친지 혹은 친구들도 함께 방송에 나오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 게다가 때론 대담하게 느껴지는 토크들도 피하지 않고 꺼내놓는다. 흥미로운 건 그러면서도 이효리는 대중들의 호감과 공감대를 얻는다는 점이다. 바로 이러한 기운(?)은 '댄스가수 유랑단'에서도 여지없이 발휘된다.
본격 유랑단 출격을 하기 전 포스터를 제작할 때 보아가 자신의 레전드곡인 'No.1'이 흐르며 포즈를 취할 때 이효리가 뭉클하다며 눈물을 보이는 장면이 그렇다. 이 장면은 감정에 솔직한 이효리의 면모를 드러내는 것이면서, 동시에 보아가 'No.1'을 부르던 시절에 대한 추억을 몽글몽글 피워 올린다. '댄스가수 유랑단'이 앞으로 펼칠 무대들이 이러한 시대의 추억을 소환할 거라는 걸 이효리의 이 솔직함이 단박에 꺼내 보여준 것이다.

◆기대만큼 큰 차별점에 대한 우려
하지만 기대감이 큰 만큼 우려도 적지 않다. 가장 큰 우려는 최근 MBC를 나온 후 TEO라는 스튜디오를 차려 독립한 김태호 PD가 내놓은 예능 프로그램들이 생각만큼 성공을 거두지 못한 상황에서 이 프로그램이 결국 '이효리 카드'를 꺼낸 것 아니냐는 시선에서 비롯된다. 안타깝지만 곽튜브, 빠니보틀, 원지가 함께 했던 '지구마불 세계여행'은 그다지 큰 화제성을 만들지 못했고, 이어 내놓은 여성 아이돌들이 함께 했던 '혜미리예채파'도 '지구오락실'과의 유사성이 거론되며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한 채 종영했다. 새로운 스튜디오를 꾸린 김태호 PD로서는 '댄스가수 유랑단'의 성공이 무엇보다 중요해지는 이유다.
하지만 앞서도 말한 것처럼 '댄스가수 유랑단'은 이효리라는 독보적인 인물의 힘이 중요한 프로그램이다. 게다가 인물 구성에 있어서도 새롭게 김완선과 보아가 합류했지만, '환불원정대'의 엄정화, 화사가 이 프로젝트에도 함께 하고 있어 어딘가 유사한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결국 '댄스가수 유랑단'이 갖게 된 숙제는 '환불원정대'와는 확연히 다른 스토리를 보여줘야 한다는 점이다.
이처럼 우려 지점은 분명히 있지만, 이제 시작한 '댄스가수 유랑단'은 이미 그 '유랑'이라는 콘셉트가 말해주는 것처럼 전국을 돌며 '팬들을 찾아가는 공연'이라는 차별점을 내놓았다. 또 그 방식에서는 마치 '스쿨어택' 같은 추억의 예능을 떠올리게 하는 레트로적인 연출요소들도 선보였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효리를 비롯한 출연자들의 진심이다. 이들은 서로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을 드러냈고 또한 팬들 앞에 서는 것만으로 에너지를 얻는다며 기뻐하는 모습을 진심으로 보여줬다. 이 진심은 향후 이 프로그램이 갖는 레전드 가수들과 팬들의 접촉과 소통에 화력을 만들어줄 것으로 보인다. 과연 이 프로그램은 김태호 PD와 이효리라는 새로운 조합의 단단한 예능 세계를 열어주는 출사표가 되어줄 수 있을까.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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