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윤광섭의 자명고 (自鳴鼓)] 서해 NLL은 평화보장선이다

2010년 11월 23일 오후 2시 34분부터 한반도의 서해 5도 중 하나인 대한민국령 연평도를 북한군이 선전포고 없이 포격했다.
2010년 11월 23일 오후 2시 34분부터 한반도의 서해 5도 중 하나인 대한민국령 연평도를 북한군이 선전포고 없이 포격했다.

6월은 꽃게 성어기라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는 황금어장이 된다. 이곳은 합의된 해상경계선이 아니라는 이유로 중국의 불법 어선까지 대거 침범하여 긴장을 고조시킨다. 그러나 이 일대에 군사 긴장이 높아지는 까닭은 정작 이러한 조업 행위에 있지 않다. 한때 정치권에서는 2007년 남북 정상회담에서 북측에 'NLL을 포기하겠다'는 발언 여부를 놓고 진실 공방이 벌어졌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NLL 포기 발언은 사실로 드러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인식을 같이하는 만큼 앞으로 NLL을 바꾸어야 한다"고 했다. 이 일대의 군사 긴장이라는 것은 NLL을 '우리 스스로 분쟁지역화'하려는 데 문제의 본질이 있다. 왜냐하면 북한 노동당으로서는 내심 바라는 것이며 무모한 군사도발의 빌미까지 거머쥘 수 있기 때문이다. 2010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과 같은 천인공노할 도발이 그것이다.

◆NLL은 해상경계선이자 평화보장선

최근 북한이 우크라이나와 대만 사태 등 지역 분쟁·갈등을 국면전환의 호기로 여길 소지가 다분하여 위험성은 배가되고 있다. NLL은 분쟁지역이 아니라 '해상경계선이자 평화보장선'이라는 확고한 국민적 합의가 요구되는 때다. 우리는 NLL에 관해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는지, 그 배경부터 알아보자.

NLL은 정전 당시 유엔군 측이 압도적인 해상 우세에도 불구하고 이를 양도하면서 무력 충돌을 막기 위해 일방적으로 설정한 선이다. 일방적으로 설정했다는 것은 정전 당시 해상은 지상과 달리 경계선 합의를 못 하였기 때문이다. 즉 당시 유엔군 측은 클라크 라인을 설치하여 한반도 해역 전체를 봉쇄하고 있었으며, 함선은 평양 앞 남포 일대와 원산 앞바다까지 배치되어 해역을 완전하게 장악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협정이 체결되면서 서해의 경우 38도선을 기준으로 그 이북 해역을 모두 양도한 것이다. 왜 38도선인가. 협상 당시 경계선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놓고, 38도선으로 원상복귀하자는 안과 군사접촉선을 기준으로 하자는 안이 대립하였는데 결국 군사접촉선으로 합의하게 된다. 반면 해상에서는 군사접촉선이 부재하여 '봉쇄 해제'가 주된 관심이었다.

따라서 유엔군 측은 클라크 라인을 폐지하고 1950년 6월 24일 이전 상대방의 통제수역과 도서에서 철수하겠다는 원칙을 제시했으며, 이에 따라 38선 이북 해역과 백령도를 비롯한 서해 5도를 제외한 황해도 연안에 인접해 있는 도서까지 양도하겠다고 한 것이다. 공산군 측으로서는 큰 이득이기에 수용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양도에도 불구하고 해상경계선을 설정하는 데는 3해리냐 12해리냐, 지상군사분계선 또는 도계선을 연장하자는 등으로 합의에 이르지 못하였다.

서해북방한계선.연합뉴스
서해북방한계선.연합뉴스

◆북, NLL 존재를 이미 알고 있고 묵인

해상경계선 합의에 실패한 유엔군 측은 부득이 정전협정의 취지에 따라 무력충돌을 방지하고 군의 작전행동을 통제할 목적으로 쌍방 수역의 대략 중간선을 연결하여 북방한계선(NLL)을 설정한 것이다. 당시 공산군 측은 이를 알고도 묵인하였다. 유엔군의 실효적 통제는 서해 방어에 대한 부담을 줄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은 줄곧 NLL이라는 존재를 몰랐으며 통고받은 적도 없으므로 NLL을 인정할 수 없다고 강변해 왔고 여기에 일부 국내 학자가 동조하였다.

북한이 NLL이라는 존재를 이미 알고 있고 묵인해 왔다는 증거는 충분하다. 1959년 북한 관영통신인 조선중앙통신사가 발행한 《조선중앙년감》에는 NLL을 '군사분계선'이라고 분명하게 표기하고 있다. 북한은 담당자의 실수로 처벌했다고 변명하지만 그렇다고 그 사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1963년 간첩선이 침투한 것을 두고 따지자 '우리는 NLL을 월선하지 않고 북쪽 해상에 있었다'고 은연중 실토한 점, 1984년 북한이 수해물자를 인수할 때 남북 함정 간 상봉점을 NLL로 정하였고, 무엇보다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 불가침조약 부속합의서 제3장에서 '해상불가침경계선 구역은 해상불가침경계선이 확정될 때까지 쌍방이 지금까지 관할하여 온 구역으로 한다'고 합의한 점,

이후 1997년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가 남북한 비행정보구역(FIR)을 NLL에 맞추어 조정할 당시에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점 등은 북한이 NLL을 알고 있었으며 묵인해 왔다는 충분한 방증이다. 이 외에도 북한은 민간 어선이 NLL을 넘어갈 경우 경비정을 보내어 북측 항구로 예선하는 사례도 있다.

◆북한 주장은 국제법과도 불일치

국내 학자 중에는 북한의 간헐적인 월선행위나 군사도발을 NLL에 대한 이의 제기 차원이라고 하지만, 이의를 제기한다는 것은 합당한 절차와 대안이 함께 제시되어야 대외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고의적인 월선이나 무력도발과 같은 행위는 이의 제기가 아니라 국제법의 안정성을 해치고 질서를 문란시키는 불법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북한은 1973년에 들어 해군력이 신장되면서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하여 1999년 황해도와 경기도 도계선을 기준으로 하는 해상경계선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도계선 연장이란 근거가 없으며 서해 5도민의 안전을 크게 위협하고, 수도권과 영종도 국제공항의 안전 위험을 노출시키는 불순한 의도를 내포하는 것이어서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이었다. 북한도 이를 의식하여 2004년 계선 간 완충수역을 설정할 것을 따로이 제안하였으나 이 역시 분쟁지역화를 노리는 적반하장에 불과하다.

북한의 주장은 국제법과도 전혀 합치되지 않는다. 즉 협상의 기준은 당시 정황에 따른다는 시제법(時際法)의 원칙, 묵인 후에는 다른 의사표시를 인정 않는 반금언(反禁言)의 원칙에 위배된다. 반면, NLL은 연안 수역의 대략 중간선을 따른 공정성의 원칙, 최소 20~70년간 지켜 온 응고의 원칙, 무엇보다 해상 안전을 실질적으로 담보해 온 실효성의 원칙 등 해상경계선으로서의 법적 지위는 공고하다. 더욱이 NLL 이북은 외해로 연결되어 봉쇄선과도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서해 5도 관할권은 수도권 안전

한 가지 덧붙인다면 협상의 전략적 관점이다. 중공군의 전력은 협상이 시작되는 1951년 7월 이미 한계에 이르렀으나 유엔군 측은 이를 과대평가하였고 조기 종전이 최대 관심이었으며 때마침 미 대선이 겹쳐 군사적 성과를 협상에 반영하지 못한 나머지 결국 개성이라는 전략 요충지를 넘겨주었다.

반면 서해 5도에 대한 관할권을 유지한 것은 수도권 안전을 위해 그나마 다행한 일이었다. 만약 원점에서 문제를 제기한다면 최초 합의대로 1950년 6월 24일 이전 우리가 관할하고 있던 황해도 연안의 도서와 해역에서 철수해야 마땅함을 상기시켜야 할 것이다.

우리는 독도를 분쟁지역화하려는 일본에 대해 매우 단호하다. 독도 문제를 잠재적 갈등이라고 한다면, 핵무기를 앞세운 북한의 군사위협은 당장의 현실 위협이다. 국면전환에 부심하고 있는 북한 노동당이 몰고 올 먹구름은 예측불허이다. 6월을 맞아 정치권은 물론 우리 모두 'NLL은 분쟁지역이 아니라 해상경계선이자 평화보장선'이라는 확고한 신념으로 재무장하여 군의 헌신에 발 맞추자.

윤광섭 예비역 육군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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