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전수전 토별가>로 '연대'와 인간세상의 '평화'를 말하다.
산전수전 인생 9단 토끼 간을 들고 남원 국립민속국악원으로 달려간 조광화 연출의 창극 <산전수전 토별가> (남원 국립 민속국악원 예원당) 은 역시 조광화였다. 영화'수리남'에서 " 강 프로! 식사는 잡쉈어?" 하며 국정원 요원 최창호로 분해 강렬한 연기를 보여주었던 배우 박해수도 조광화의 대표작품<남자충동>에서 주인공 장정으로 연극무대에 섰었다. 조광화는 문화일보 하계 신춘문예 <장마>(1992)가 당선된 뒤 <종로고양이>(1992), <황구도>(1993) <천상시인의 노래>(귀천,1993), <아,李箱!>(1994), <꽃뱀이 나더러 다리를 감안보자 하여>(1994), <오필리어>(1995),<여자의 적들>(1995), <남자 충동>(1997), <미친 키스>(1998), <철안 붓다>(1999)를 연달아 발표하면서 조광화는 30대 초반 90년대 한국연극계를 대표하는 작품들을 연출해 왔다. 이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2003), <달고나>(2004), <천사들의 발톱>(2007),<소리도둑>(2007),<내 마음의 풍금>(2008), <남한산성>(2009), <서편제>(2010), <모래시계>(2017), 오페라< 박하사탕>(2019),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021) 등 오페라와 창작뮤지컬을 쓰고 연출하면서 조광화는'한국연극'에서는 드물게 연극과 한국창작 뮤지컬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연출가다.
국립극단 창단 70주년 <파우스트 엔딩>(2020)을 재창작하고 연출한 작품에서는 신(神)에 대한 해석이 신선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희곡과 뮤지컬을 쓰고, 연극과 뮤지컬 장르를 넘어서 있는 조광화 연출의 장점을 창극<산전수전토별가>로 작정하고 무대로 살려냈다. 객원 연출이 지역의 관 단체를 융합시키기 어려운 현실을 감안했을 때 조광화의 연출적인 카리스마는 창극으로 살아있었고 출연자들은 무대에서 겉도는 것 없이 극으로 한 몸이 되었다. 프로시니엄 무대에서 표현된 산전수전토별가는 마당놀이, 뮤지컬, 연극성이 총체적으로 드러나 있으면서도 현대적 해석과 연출의 섬세함이 살아있었고 만석의 객석은 박수치고 몰입하고 웃으며 70여 명의 출연자는 150분 동안 (인터미션 15분) 질펀한 소리로, 기악으로, 우리 소리의 멜로디와 광대의 놀이성으로 무대를 채워냈다. 기존 창작은 현대적인 해석이 아쉬웠고, 판소리 계열 뮤지컬은 드라마가취약하고, 마당놀이를 보면 연극성과 뮤지컬적인 채색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점이 아쉬웠다. 그러나 남원 국립민속 국악원에서 공연된 <산전수전토별가>는 희곡과 연극, 뮤지컬 장르로 '산전수전' 겪은 조광화 연출의 핵심을 다 쏟아내고 총체적으로 융합시킨 무대였고 별주부와 토끼를 동시대 '연대'와 '평화'로 풀어낸 해석이 인상적이다.
◆조광화 연출 쉐프의 '우리 맛' 햄버거, 파스타를 섞고 된장 맛으로.
무대는 좌우로 길게 늘어져 있는 장방형이다. 광대들의 마당이 되고 꼭두퍼펫(동물의 특징을 장대위나 끝쪽에 꼭두로 형상화 한 것)보인다. 그 중앙위로는 팔란(飢渴寒暑水火刀病)의 글자가 걸개그림 8조각으로 걸려있다. 장방형의 무대는 배우들이 수궁과 산속 세상을 살아가는 호랑이, 독수리, 여우, 멧돼지, 뻘덕게, 오징어, 해마, 문어 등은 꼭두퍼펫 장대인형을 들고 질펀한 소리와 놀이로 달리는 개방적인 무대다. 담장으로 보이는 뒤편으로 기악단이 보이고 소리광대들은 작창의 멜로디로 창극단원 26명과 무용단원 6명, 연기자 1인 등 총 33명의 출연자가 소리와 연기, 광대놀이로 남원의 산전수전토별가의 세상을 한국 사회의 놀이판으로 달린다. 재장착된 개작(改作) 대본에는 새로 창작한 작창과, 작곡, 재구성한 대목들을 섬세하게 한자로구분 표기를 해놨고 재미로 보는 인물 풀이라고 쓴 등장인물은 앙상블까지 30여 명에 이른다.
장면은 1막 5장과 2막 4장으로 장과 소리 대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무대는 1막 1장(판열기, 소리판)으로 시작되는데, 소리광대들의 '광대가'로 시작된다. 무대 앞까지 내려온 광대들은 광대(정민영 분)가" 광대, 너름, 득음과 사설, 아니리라고 허는 것은"하면 광대들이 말을 받아 사설을 늘어놓고 "광대라고 허는 것은 제일은 인물 치레 그 지차 득음이요 거드렁 거리고 놀아보세" 하면, 광대들이 " 오늘 판은 깔았으니, 멋 허고 놀까, 올해 토끼해니까, 토끼가 말해봐 토끼 어딨어?"받아친다. 토끼의 작창 사설은 산전수전 인생 9단이 '함부로 나서지 마라'는 세상을 향한 경고다. 토끼와 광대들이 나누는 사설 한 대목 들어보자. (토끼)" 함부로 나서지마라. 아무데서나 끼지마라. 눈은 크게 뜨고. 입은 오므려 닫어. 오물조물 쬐그많게 없는 듯이 가만히 있으라. 네가 꺼멓게 태어난 까닭은. 보이난 듯 희뜩 안보이도록 함부로 나서다간 안되면 동티만 클 터. 가만 가만 가만 가만 가만 가만 있으라."(광대들)" 그도 그럴 듯 하나 제아무리 조심해도 어디 오늘 토끼 보자 쉽게 함부로 나서나." 이쯤 인생을 말하면 토끼는 인간이요, <산전수전 토별가>는 수궁과 산속 세상이 아니라 인간 세상이다. 물속도 용왕의 상후(上候)를 두고 권력으로 아첨하고 정치적으로 줄을 서대고 약자(弱者)의 배를 갈라 간(肝)으로 정치권력의 생명을 유지하려는 세상이다. 이야기를 돌아보면, 고전소설 토끼전이나 판소리 수궁가만큼 정치풍자를 한 우화극은 없는 것 같다. 별천지 용궁만큼 살 수 없는 산속 세상은 간, 쓸개까지 위협받는 세상이고, 양극화와 불평등이 판치는 수궁과 산속이 갈라진 별천지 국가이다.
용왕의 특명을 받아 토끼 간을 산속으로 찾아다니는 별주부와 거친 인간 세상의 위기를 넘기는 토끼의 이야기는 2막 4장까지 한판 신나고 질펀하게 달리며 민속국악원 창극단원과 무용단, 기악단의 협업은 현대적이면서도 우리 창극(소리) 전통의 깊이와 그 맛을 유지했다. 마치 공연에 파스타와 햄버거를 얹어 놓으면서도 김치와 된장 맛이 강하게 느껴졌다. 퓨전보다는 현대적인 재료로 우리 맛을 살려냈다고 할까. 공연을 본 후에는 '오늘 된장찌개로 저녁 할래' 이런 느낌이다. 조광화 연출 쉐프의 맛은 그만큼 특별했다. 연극 '남자충동'의 연극적인 드라마성을 배우와 출연자, 기악단의 멜로디와 선율로 극을 템포감 있게 유지했고 뮤지컬 서편제의 웅장함도 보였다. 마당놀이 놀이성이 극에 재료로 뿌려대면서도 우리 것의 리듬감과 극적인 템포는 1막과 각 장면, 소리 대목처럼 흔들리지 않았다. 토끼 간을 찾아 산으로 달리고 수궁으로 뛰는 별주부와 산전수전, 공중전 인생을 겪으며 용왕 앞에서는 " 배를 잘라 없는 간을 확인해 보라며" '맞짱' 뜨는 토끼의 용맹함도 보이고 자신의 똥으로 환약을 만들어 간의 효능보다 더 효과를 볼 수 있다며 용왕을 시원하게 한방 먹이는 토끼의 '사이다' 소리 사설에서는 젊은 정치인을 연상하게 하며 웃음이 터졌고 마지막 '팔난풀이' 장에서 비로소 삶과 죽음의 인간 세상의 이치를 깨닫게 된다.
◆ 수궁(水宮)과 산속 세상의 국가(國家)
"토끼 양혜원과 별주부 강길원은 익살스러운 연기와 질펀한 소리를 내고, 방수미 명창의 독창은 이야기되네"
간을 구하지 못한 죄, 토끼 똥을 갈아 환약을 용왕한테 먹인 죄로 수궁 대신들 한테 쫓기는 별주부와 가족들도 구해내고 위기에서 지혜를 맞대는 토 선생과 별주부의 '연대정신'은 한국 사회 산으로 수궁으로 돌며 팔난(八難, 배고픔, 목마름, 추위, 더위 물, 불, 칼, 질병 )을 겪는 이야기는 전쟁과 핵무기로 무장하고 있는 현재이고, 불평등과 양극화가 살아지지 않는 오늘의 이야기이다. 신종 바이러스와 지구온난화로 인간을 위협하는 공포의 시대를 지혜와 연대로 목숨까지 내놔야 하는 수궁세상에서 탈출하는 것은, 어찌 보면 삶의 토양과 국토가 다른 별주부 가족을 인종(人種)도 초월해 구해내는 것 같다. 수궁과 토끼가 사는 산속 세상은 다른 나라이고 넓은 해수면 별난 국가와 세상을 지켜온 수궁은 패권국가의 강대국들로 읽힌다. 토끼가 사는 국토 날짐승들의 세상은 간을 빼앗겨야 하는 세상 아닌가.
연출은 이 지점에서 수궁에서 탈출한 별주부와 토끼를 '이 시대의 연대 정신'으로 풀어내고 함께 살아가는 세상으로 해석한 것은 산전수전 겪은 연출이 바라보는 세상일 것 같다. 특히 수궁가의 우화성을 '등나무 라탄'으로 엮어 꼭두형태 장대인형으로 형상화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라탄 재료로 쓴 것이 특별했는데, 수궁의 용왕과 산속의 호랑이, 토끼와 별주부, 독수리들을 극의 오브제로 입체적으로 표현하는 상징들은 성격들로 구체화하면서도 섬세한 감정들로 표현되었고 그로테스크한 움직임의 역동성으로 그려졌다. 라탄으로 엮은 오브제들은 질감처럼 우리의 전통성을 형태와 하는데 겉돌지 않으면서도 연출의 시선이 섬세하게 살아있었다. 한 장면이다. 수궁세상 용왕의 형상을 여덟 마디로 구분해 앙상블(무용단)들은 그 움직임과 용왕의 행동과 감정을 드러냈고 호랑이는 얼굴과 꼬리, 앞발로만 형상화했다. 보길도와 수궁가에 등장하는 역사 지형과 섬들은 마차(馬車)에 조형물을 세워 인상적인 장면으로 연출했다.
마지막 장면에는 한방(韓方)에서 흔히 보는 인간의 혈 자리와 형체를 나타내는 인간 육체의 형상(종이,사람퍼펫 형상)을 등장시킨 것은 산전수전토별가가 팔란을 극복하며 살아가는 별주부와 토끼의 이야기이면서도 지금 우리 인간들이 살아가는 세계의 형상이며 한국 사회의 이야기이다. 특히 우리 소리로 다져진 창극단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는데, 토끼의 양혜원은 소리의 정점으로 사설의 장면마다 감정을 자유자재로 쏟아내면서 익살스러운 연기로 산전수전 겪은 인생 9단의 토끼를 보여주었다. 자라 별주부(강길원), 용왕(정민영) 그리고 독수리들과 전체 창극단 배우들의 앙상블이 조화로웠고 무대 밖 귀명창들의 장단 배치도 흥미로웠다. 특히, 방수미(별주부 처)의 독창은 명창다운 소리였다. 무용단과 기악단들이 이번 '산전수전토별가'을 위해 극으로 응집되면서도 전통을 현대적으로 우리의 색과 맛으로 지켜낸 것은 남원으로 달려간 조광화의 섬세한 힘이다. 마지막 토끼와 별주부의 연대는 인간 세상에 일침을 가하는 '평화'의 메시지로 읽힐 만하다. 아쉬운 것은 프로시니엄에서 마당구조로 내려오면 어떨까. 광화문 광장에서 공연해도 좋을 것 같다.
조광화 연출은 마지막 인간의 형상을 묻는 말에 이렇게 답했다. "호랑이 용왕 독수리 등도 다 우리 백성들을 잡아먹으려 하지만 그중 젤 무서운 게 사람이지. 꼬맹이 시절 어딘가 먼 산길을 걷다 늦어져 어스름에 무서워 걷는데 혼자 걷는 할머니 만나 너무 반가워 따라붙었지. 할머니께 묻기를 '할머닌 산에 혼자 걷는 게 안무서워요?'할머니 말씀하시길'하나도 안무섭다 그런데 사람 만나면 그기 무섭다'" 조광화의 산전수전 인생 구단의 토별가는 부제처럼 '토끼와 별주부의 난세 생존기'는 수궁과 산속의 국가가 정치로, 전쟁으로 시장바구니 경제로 허덕이며 살아가는 우리가 사는 난세의 세상 이야기요, 부조리한 인간의 이야기다.
김건표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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