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너무 환한 세상이라서

박경혜 수필가

박경혜 수필가
박경혜 수필가

너무 환해서 숨을 곳이 없는 세상이다. 낮같이 환한 밤이 그렇고 SNS가 그렇다. 숨겨야 할 마음마저 까발리면서 들키지 말아야 할 것까지 다 들키고 만다. 어쩌면 들키기로 작정했을 법한 사연도 부지기수다.

비밀 같은 건 없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일까. 원통한 일, 속상한 일, 별것 아닌 투정까지도 죄다 세상에 드러내고 싶어 안달이다. 사소한 개인사마저도 타인에게 묻고, 댓글에 답글을 달며 조언하고 비난하며 설전을 벌이기도 한다. 그런 문화가 신기하고 이해되지 않는 건 사고가 굳어진 기성세대여서인가 싶기도 하다.

그렇게 다 공유하고 나면 숨겨야 할 마음은 어쩌나. 뼈와 내장까지 들여다보이는 투명 물고기처럼 제 슬픔을, 깊은 울음을 어떻게 하나.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도 더러는 있을 터인데 저렇게 다 드러내고 나면 허전한 마음을 감당할 수나 있으려나. 함께해서 좋은 일도 있겠지만, 홀로 삭여야 하는 문제도 있는 법이지 않은가.

세상과 공유한다고 시원한 해결책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대부분은 재미나 치기로 고민 없이 달아놓은 댓글이지 않은가. 때때로 진지하거나 재치 있는 글이 눈길을 끌기도 한다. 그럴 때면 슬며시 스며들어 혼자 고개를 주억거리거나 미소를 짓게 된다. 다른 사람들도 그런 마음으로 기웃대는 걸까.

그러나 그건 역시 내 상황이 아니기 때문일 터이다. 어떤 댓글을 보면서 내게 닥친 일이라면 저 말들이 와닿거나 도움이 될까 생각해보면 그건 아닐 듯싶다. 가볍게 문제의 언저리를 기웃대는 사람들에게서 진심이 느껴지기나 할까. 타인의 삶에 또 다른 타인의 개입이 어이없으면서도 자꾸 들여다보게 되는 심리는 뭐라 해야 하나.

물론 비밀을 묻어둔다고 잘 지켜지는 건 아니다. '이건 비밀인데…' 라고 말하는 순간 이미 비밀이 아니게 된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가서도 그렇게 말할 것이기 때문에 내가 퍼트리지 않아도 바람결에 알려질 소문인 것이다. 그래서 귀엣말을 속삭이는 사람에게는 믿음이 잘 가지 않는다.

이해하지는 못해도 궁금한 건 또 참기 어려워 기웃대는 마음도 일종의 관음증이 아닐까. 글을 쓰다가도, 자료를 찾다가도, 심심해져도 무심코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곤 한다. 인터넷을 통해 세상을 염탐하고 SNS를 뒤지며 끈을 놓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기도 하는 걸 보면 분명 일종의 병이지 싶다. 본능을 제어하지 못하는 이성은 무력하기 그지없다.

내용의 진위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애초에 참과 거짓을 구분할 마음은 없었던 듯 자극적 단어들로 관심 끌기에 급급해 보이는 사연들에 더 많은 댓글이 쌓이는 걸 보면 우려스럽다. '거짓말이 지구를 반 바퀴 돌 동안 진실은 아직 신발 끈을 매는 중이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진실은 늘 늦은 저녁에나 당도하는 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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