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화요 초대석] 감사·감찰 없는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전 한국선거학회 회장)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전 한국선거학회장)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전 한국선거학회장)

공직사회의 도덕과 윤리가 파탄 지경에 이르렀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전·현직 간부 자녀들이 이른바 '아빠 찬스'로 선관위에 특혜 채용됐다는 의혹 파문이 커지고 있다. 선관위는 자녀 특혜 채용 의혹이 불거진 박찬진 전 사무총장 등 간부 4명에 대해서는 경찰청에 수사 의뢰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선관위는 '위원 전원의 일치된 의견'이라며 자녀 특혜 채용 의혹과 관련한 감사원의 직무감찰에 대해 수용 불가 입장을 밝혔다. "그동안 국가 간 견제와 균형으로 선관위가 직무감찰을 받지 않았던 것이 헌법적 관행이었고, 헌법 97조에 따라 행정기관이 아닌 선관위는 감사원 직무감찰 대상이 아니다"라는 주장을 폈다.

선관위의 이런 태도는 착각이고 오만이며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다. 헌법 제97조는 감사원의 업무 범위로 회계검사와 함께 '행정기관 및 공무원의 직무에 관한 감찰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감사원법 제24조에는 국회·법원·헌법재판소 3곳만 감사 제외 대상으로 삼고 있다. 감사원은 "지난해 대선 사전투표 때 '소쿠리 투표' 논란으로 불거진 사전투표 부실 관리에 관한 사항도 감사원 감사의 대상으로 선관위로부터 자체 감사 결과를 제출받아 그 감사 결과의 적정성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선관위가 담당하는 선거 관련 관리·집행 사무 등은 기본적으로 행정 사무에 해당하고 선관위는 선거 등에 관한 행정기관이므로 감사 대상에 해당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하물며 선거 사무와 관련이 없는 채용 비리 감사는 선관위의 독립성과 중립성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기 때문에 당연히 감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왜 공명과 공정을 부르짖던 선관위가 비리의 온상이 됐을까? 무엇보다 선관위가 헌법상의 독립기구이기 때문에 외부 감사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허황된 믿음 속에서 '부패의 성역'을 쌓고 제 식구 감싸기로 자정 기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선관위의 채용 비리 사태는 예일대 에이미 추아 교수가 주장한 '정치적 부족주의'와 맥을 같이한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집단에 속하고 싶은 '부족 본능'이 있는데, 이 부족이란 개인에게 소속감과 애착 및 충성심을 갖게 한다.

반면 이 집단에 속하지 않은 외부인들은 무조건 배제하려는 속성도 함께 갖는다. 최근에 선관위가 국정원의 보안 점검을 거부한 이유도 이런 배제 본능 때문이다. 결국 선관위가 독립적인 헌법기관이라는 지위를 너무 오랫동안 누리며 고립되고 '비도덕적 가족주의'(amoral familism)로 전락했다. 선관위 구성원들은 모두 가족이고, 가족을 위한 것이라면 비록 비도덕적인 것이라도 용인될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이 지배하고 있는 것 같다. 선관위는 이런 비정상적인 행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구조와 운영에 대한 획기적인 개혁 없이는 정상화될 수 없다. 지금 선관위원장은 대법관이 겸임을 하도록 돼 있다. 그리고 상근도 아니고 비상근 체제다. 그래서 실질적인 실무는 중앙선관위 상임위원, 사무총장, 사무차장 등 실무 책임을 총괄하는 직책에 있는 사람들의 영향력이 크게 미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들 모두 선관위 출신들이 차지하고 있다. 조직 내부에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은 없다. "감사·감찰 없는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말이 선관위에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이제 선관위가 환골탈태해야 한다. 무엇보다, 노태악 위원장은 사태의 최종 책임자로서 사퇴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또한 감사원 감사를 즉각 수용해 환부를 모조리 도려내야 한다. 이것이 부패의 온상으로 전락한 선관위가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해결책이다. 선관위원장도 상근직으로 바꾸어야 한다. 더 이상 대법관이 선관위원장이 되는 잘못된 관행도 고쳐야 한다. '선관위 순혈주의'에서 벗어나 사무총장 등 고위직도 외부 인사로 충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직원들에 대한 직무감찰과 비리 예방 업무를 담당하는 제도적 장치로 윤리위원회의 기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위원회는 외부 인사가 과반 이상을 차지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비리를 감찰하기 위해 '특별감찰관제' 신설도 검토해 볼 만하다. 특별감찰관은 그 자체로 비리와 범죄의 예방 기능이 충분히 있다고 본다. 필요하면 감찰관에게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거나 감사원에 감사를 요청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조치도 필요하다. 단언컨대, 선관위에 대한 특단의 개혁 없이 선거의 중립성과 공정성은 기대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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