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학 속 호모 에스테티쿠스] <10> 파우스트, 회춘한 학자의 서투른 탐미(1)

이경규 계명대 교수

괴테. 게티이미지뱅크
괴테. 게티이미지뱅크
이경규 계명대 교수.
이경규 계명대 교수.

연극의 러닝 타임은 90분 내외가 정석이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중 가장 긴 <햄릿>이 3시간 걸린다. 전부 공연하면 21시간이 소요되는 희곡이 있다. 괴테의 <파우스트>다. 작품이 출간된 후 전편이 무대에 오른 것은 딱 한 번 있었다. 2000년 하노버 엑스포 때다.

대체 괴테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 저리도 긴 드라마를 썼을까? 뭐가 그를 60년 동안 붙잡아뒀을까? 드라마에 대한 수많은 해석과 비평이 있지만 필자는 간단히 '진미선의 순례'로 이해한다. 眞(학문)을 추구하다 절망하여 美(여자)에 빠졌다가 善(사회사업)으로 선회하는 한 인간의 휴머니즘 여정이라는 것. 가장 문학적이고 흥미로운 부분은 역시 미 부분이다. 두 명의 미녀가 미를 대변한다. 먼저 나오는 미녀가 그레트헨이다.

노학자 파우스트가 미의 샛길로 빠져드는 것은 진(학문)이 철벽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아래 인용은 그 현장의 목소리다.

아! 이제껏 나는 철학과 법학과 의학을,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신학마저도 뜨거운 열정으로 공부해왔다. 그러나 나는 가련한 멍청이, 아무것도 아는 게 없다. 기쁨은 모두 사라졌다. 재물도 돈도 없고 명예도 영광도 없다. 개새끼라도 더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을 것이다.

이리하여 知의 최고 경지에 올랐다고 하는 대학자가 절망하여 자살을 시도한다. 절망을 가장 반기는 자는 악마(메피스토)다. 절망에 빠지면 무슨 짓이라도 하기 때문이다. 파우스트 앞에 나타난 메피스토는 제안한다. 당신을 청년으로 회춘시켜 온갖 환락을 제공할 테니 죽을 때 영혼을 내게 주겠느냐고. 파우스트는 기꺼이 수락하고 조건을 단순화한다. 자신이 어느 날 "순간이여 멈춰라. 너는 너무도 아름답구나!"라는 한마디를 하게 되면 자신의 영혼을 가져가도 좋다는 것이다. 미를 조건의 최종 준거로 둔다. 이 땅의 삶에서 시간이 멈춰도 좋을 만큼 아름다운 순간이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뜻이다.

남자의 속성을 너무나 잘 아는 메피스토가 쓰는 전략은 역시 미인계다. 그는 파우스트에게 마녀의 거울을 통해 한 미녀의 모습을 보여준다. 파우스트는 넋을 잃고 외친다. "여자가 저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가? 지상에 어떻게 저런 게 존재한단 말인가?" 미에 깊이 감염된 파우스트의 가슴은 요동친다. 불타는 가슴을 안고 거리로 나가니 한 처녀가 눈에 띈다. 15세의 꽃다운 소녀 그레트헨, <파우스트> 1부의 여주인공이다. "붉은 입술에 빛나는 볼, 다소곳이 내리깐 눈"이 파우스트를 황홀경으로 몰고 간다.

파우스트의 학덕은 미의 현전에 무용지물이 된다. 옆에 있던 악마조차 "예쁜 꽃은 다 꺾으려는 바람둥이일 줄이야"라며 놀란다. 석학 파우스트가 고백한다. "당신의 눈길 한번이 세상의 그 어떤 지혜보다 즐겁소." 그간 쌓은 知의 성은 모래성처럼 무너진다. 여자의 반응도 다르지 않다. 신심이 깊어서 악마조차 유혹하기 어렵다고 했던 그레트헨이 "고귀한 이마를 가진" 파우스트에게 가차 없이 빠져든다. "그이의 키스에 내가 파멸한다 해도 마음껏 키스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오히려 파우스트가 두려워 숲속으로 도망가 가슴을 식혀야 할 지경이다.

물론 그레트헨은 단순히 아름답고 매력적이기만 한 여자는 아니다. 영혼이 너무나 순수하고 고결하다. 메피스토가 가장 싫어하는 부분이고 파우스트를 끊임없이 갈등하게 하는 요소다. 그러나 파우스트는 "그녀의 운명이 내 위로 쓰러져 함께 파멸한들 어쩌겠는가!"라며 고삐를 놓는다. 먼저 파멸하는 것은 그레트헨이다. 파우스트는 도망가버리고 그레트헨은 미혼인 상태에서 아이를 낳아 죽게 함으로써 영아 살해자가 된다. 사형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그런데도 파우스트에 대한 사랑은 끝까지 철회하지 않는다. 현대인들이 수용하기 어려운 지고지순한 고전적 사랑이다.

메피스토는 다시 절망한 파우스트를 안고 2부로 넘어간다. 아직 "순간이여, 머물러라. 너는 너무나 아름답구나!"라는 한 마디가 그의 입에서 발설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파우스트> 1부는 통상 '그레트헨 비극'이라고 한다. 知의 한계에 부딪힌 학자의 서투른 탐미가 초래한 미의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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